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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측과 결별, 김구와 갈라선 배경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40회] 이시영은 시국에 대한 견해 차이로 김구와 결별하고, 단독정부 수립노선에 합류하였다

등록 2020.08.16 17:25수정 2020.08.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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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요인 2진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2진이 환국할 당시의 사진 (두 번째 줄 네 번째 인물이 김성숙 선생)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이시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47년 9월 2일 일체의 공직을 떠난데 이어 26일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국무회의 의원을 사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9월 1일에 열렸던 비상국민회의 제43차회의 결의가 비법적이라고 주장하면서 탈퇴한 것이다. 국민회는 9월 1일부터 창덕궁 인정전에서 제43차 임시대회를 열고 미국 제안의 절대지지와 남한단독정부 노선의 반대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승만은 이날 회의에 참석치 않고 대신 보통선거법에 의한 총선거의 단행을 요망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시영이 국민회는 몰라도 임시정부 국무위원까지 사퇴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사퇴 성명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기미년 3천만 민족의 혈박(血搏)에서 탄생되었다. 해방 후 정부 책임자들은 국제의 무리 압박으로 부득이 사인(私人) 자격이라는 수치스런 걸음으로 귀국하여 떳떳치 못한 형태도 불무하였으나 지켜온 법통 정신만은 그다지 손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금회(今會)에 소위 43차 의회의 자의추진은 경거망단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차에 대하여 호법에 소(訴)할 수도 없고 은인묵과할 수도 없다. 이에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국의(國議-의정원의원) 의원을 다 탈피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직무에 불충실한 천오(舛誤)를 일반 동포 앞에 사과할 뿐이다. 본래 국가 독립은 멸사적, 헌신적이 아니면 달성키 어려우니, 정신 단결하여 대의정로(大義正路)로 매진하기를 빌 뿐이다.

이시영이 임시정부측과 결별하게 된 과정을 한 연구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사퇴의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43차 의회의 자의 추진'이었다. 임시정부 주석의 경력을 가진 김구는 1947년 2월 14~17일에 우익 단체를 통합 단일화하기 위해 국민의회를 새로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의회는 좌익은 물론 이승만 측으로부터도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김구는 9월에 이승만과의 합류를 시도하였다. 이시영은 김구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크게 불만을 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위원장을 맡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깨는 결과가 불 보듯 하면서 우익세력 결집으로서는 이중적인 것이고 명분을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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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백범 김구 주석 ⓒ 독립기념관

 
해방정국에서 임시정부의 큰 축이었던 김구와 이시영의 결별은 비극이었다. 김구의 혁명가적인 철학과 이시영의 실용주의적인 철학이 결별을 불러온 것이다. 김구가 주자학적인 명분과 의리론적인 가치관이라면, 이시영은 명분도 중요하지만 보다 현실에 바탕을 두는 양명학적 가치관이었다고 할까.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백범과 성재 사이에 또다시 이견이 생겼다. 백범은 단독정부가 수립되면 조국이 영원히 분단될 것이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북협상의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성재는 이승만의 노선이 냉전 상황에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문제를 놓고도 성재는 백범을 만류했으나, 백범은 오히려 "형님만은 나를 이해할 줄 알았는데" 하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때 백범 추종자 중에도 성재를 원망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남북협상이 실패로 끝난 뒤, 성재는 백범과 단독정부 수립 반대 세력에게 냉전 체제와 북한 일당독재 체제의 현실을 주지시키면서 현실정치 참여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이에 일부는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범까지 설득하려던 성재의 노력이 관철되기 전에 친일 군부 극우 세력에게 백범이 암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주석 6)


이시영과 김구는 이 시점에서 갈라서게 되었다. 이시영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 후 정국은 급속히 변하고 있었다.

미국측은 한반도문제를 유엔에 넘기고 유엔총회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여 그 감시하에 1948년 3월 말까지 자유선거를 실시, 국회 및 정부수립 후 미ㆍ소 양군이 철수한다"는 결의안을 처리하였다.  소련측은 이것이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위반하는 것이며, 한국문제는 미ㆍ소 양군이 철수한 후 조선인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이를 반대하였다.

당시 유엔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던 관계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설치, 신탁통치를 거치지 않는 독립, 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안"을 가결하였다. 이에 따라 캐나다, 인도 등 8개국으로 구성된 위원단이 입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소련측이 38도선 이북지역의 입국을 거부하자 유엔은 다시 소총회를 열어 "가능한 지역안의 총선거"를 가결함으로써 분단 정권 수립이 가시화되었다.

이승만은 이에 앞서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 처음으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12월부터 1947년 4월까지 미국에 건너가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촉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

1946년 5월 1차 미ㆍ소 공동위원회가 휴회로 들어가고 좌우익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일부 우익세력의 단독정부 수립계획이 본격화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여운형ㆍ김규식 등은 좌우합작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여기에는 두 사람 외에 좌우, 중도파 인사들과 임시정부 계열의 최동오ㆍ김붕준이 참여하고 신탁통치, 토지개혁, 친일파처리 문제 등에서 〈좌우합작 7원칙〉에 합의했으나, 한민당의 토지무상분배 반대와 합작위원회 자체의 반대, 좌익측의 반대 노선으로 좌우합작운동은 점차 정체 상태로 빠지고, 미국의  정책이 좌우합작 지지에서 단독정부 수립쪽으로 바뀌면서 이 운동은 종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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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9. 23. 우천 조완구 동암 차리석 선생 회갑기념(앞줄 왼편부터 조성환 김구 이시영 선생, 뒷줄 왼편부터 송병조 차리석 조완구 선생) 중경 우리촌에서. 1941. 9. 23. 우천 조완구 동암 차리석 선생 회갑기념(앞줄 왼편부터 조성환 김구 이시영 선생, 뒷줄 왼편부터 송병조 차리석 조완구 선생) 중경 우리촌에서. ⓒ 역사공간

 
단독정부수립 문제가 제기되고 유엔한국감시위원단이 내한하는 등 정세가 급변하면서 이시영은 고민을 많이 하였다. 김구와 김규식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분단정부는 안 된다는 주장 아래 남북협상을 주창하였다.

김구와 김규식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1948년 4월 평양을 방문, 남북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와 '4김회담'에 참석한 후 서울로 돌아왔다. 이시영은 6월 10일 경교장으로 김구를  찾아갔다.

"그는 김구에게 남북, 좌우 관계는 미온적으로 종결점이 나올 수 없는 것인데, 남북협상 같은 것은 되풀이 할 수 없는 것이니 더는 추진하지 말 것을 종용하였다. 계속하다가는 허물이 모두 당신에게 돌아오고 말 것이라고 간절하게 타이르기까지 하였다." (주석 7)


이시영은 시국에 대한 견해 차이로 김구와 결별하고, 단독정부 수립노선에 합류하였다. 김구와 결별했다기보다 그의 노선에서 벗어났다고 할 것이다. 그는 뒷날 김구 암살에 가장 분개하고, 시신 앞에서 통곡하였다.


주석
5> 이태진, 「이시영, 대한민국 초대부통령」, 『한국사시민강좌』 43권, 36쪽, 일조각, 2008.
6> 이종찬 회고록, 『숲은 고요하지 않다(1)』, 74~75쪽, 한울, 2015.
7> 이태진, 앞의 책, 37~38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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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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