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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고맙고 두렵다

더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리지 않기를, 숲과 들이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오기를

등록 2020.08.10 13:17수정 2020.08.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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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시민신문


올 여름은 더위가 늦더니, 장마도 늦었다. 코로나19로 자연도 정상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우리는 말복을 향해 달리는 이 더위에도 마스크를 쓰고 잘 버티고 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오랜 가뭄, 홍수, 산불, 지진은 예측 가능했고 감당할 만했다. 하지만 현대에 일어나는 자연 사건들은 그 원인이 모두 사람에게 있고,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막연한 두려움과 다가올 자연의 변화를 회피하려는 생각이 마음 한쪽을 누른다. 지금은 마스크를 쓰며 그 죗값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벌을 받을지 걱정이 된다.

며칠 비가 내렸다. 오락가락하다가 천둥, 번개가 치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잠시 조용하다가 바람이 함께 불어 닥치니 정신이 쏙 나갈 지경이다. 그냥 오고 가는 비를 기다려 줄 만하다. 날씨가 이렇게 오락가락 알 수 없어 가까운 길에도 우산을 꼭 챙긴다. 분명 점심까지 비가 내렸는데, 오후에 파란하늘이 보여 반갑다.

뛰어 노는 것이 그리웠던 아이들과 잠시 산책을 했다. 습도가 높아 옷을 한 겹 걸치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는데, 숲을 따라 걸으니 거짓말같이 산뜻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가 오는 중에도 도시의 공기는 계속 뜨겁기 때문일 것이다. 마스크도 잠시 내리고 바람을 맞으니 얼굴에 고였던 땀이 금방 날아간다. 개구리, 매미, 새들 소리 그리고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도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장마에 축축 쳐지는 것은 사람뿐인 것 같다. 숲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넓어지고, 꽉 들어찼다. 쏟아지는 비도 묵묵히 맞아줄 수 있는 믿는 구석이 있다. 숲을 이루는 모든 나무들이 그 많은 비를 함께 맞아주고 서로를 버티게 해준다.


나뭇가지는 한 나무 안에서도 겹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물며 다른 나무와는 어떨까? 서로 경계를 지키면서 남의 자리를 절대 침범하지 않는다. 빽빽한 가로수들은 이웃한 나무쪽으로 가지를 내지 않고 도로 쪽으로 가지를 내기 때문에 고유한 자기의 모습과 많이 다른 모양새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무의 가지와 달리, 땅 속 뿌리는 서로 엉키면서 제 역할을 다 한다. 지상에서 가지가 얽히면 바람이 통하지 않아 가지가 죽고 동물들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땅속에선 뿌리가 넓게 퍼져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비가 많이 와도 오래된 숲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 공원을 조성할 때도 나무들의 생태를 잘 살펴 뿌리가 무리 지을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인공숲이라고 불리더라도 분명 풍성하고 좋은 숲이 될 것이다. 

초등학교가 한가한 틈을 타 아이들 대신 매일 등교한다는 우리 동네 고라니 가족은 사람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더 분주하게 다니는 듯 자주 큰 소리로 짖는다.

고라니의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수컷끼리 싸우는 소리일까, 엄마를 부르는 소리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신나게 노는 소리일까? 까치와 먹이를 두고 싸우는 소리라는 기발한 아이의 발상을 어른은 따라갈 수 없다. 자연은 참 고맙지만 또 두렵다. 더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숲과 들이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홍은전 생태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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