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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수 싸움 유치... 단지 '쪽수' 문제 아니다"

[이슈] 의협 주도 의사 파업 바라보는 두 의사의 시각... 이왕준 이사장·정현준 정책위원장

등록 2020.08.14 08:08수정 2020.08.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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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24시간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단체행동 집회를 열고 있다. ⓒ 유성호

 
14일 의협이 결국 파업을 시작했다. 이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아직 미지수다.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카드를 꺼내들자 대한의사협회(아래 의협)는 '의사 수는 모자라지 않다'며 즉각 반발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의협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의료계 내부에서 이들을 향한 쓴소리도 있다. 핵심적으로는 논쟁의 포인트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외과의사인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정부와 의협이 '의대 증원', 즉 의사 수를 두고 이견을 내는 것을 "유치하다"라고 평했다. 의료 상황, 조건의 문제를 의사인력이라는 양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원진 녹색병원 재활의학과 의사인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협이 내부정치용으로 일방적인 파업을 하고 있다"라고 의협 주도의 파업을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정부안을 두고도 "중요한 건 공공의료병원과 국공립의과대학(아래 공공의대) 설립"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왕준 이사장, 정형준 정책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왜 필수과에 사람 안 가는지부터 살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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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안에 의료계 집단휴진 추진을 하루 앞둔 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 정부와 의협이 의사 수가 부족하다 vs. 충분하다로 의견이 나뉘었다.

"논의 프레임 자체가 너무 유치하다. 의사인력 문제를 단지 의사 수라는 양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없는데, 정부와 의협 모두 이를 단순화했다."

- 의사가 충분하긴 한가?

"의사인력이라는 게 어느 측면에서는 부족하다. 그런데 이게 절대 수의 문제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의료계에서 어느 인력이 어디에 어떻게 필요한지에 대한 실질적인 추산이 필요하다. 먼저 이 부분이 이야기되어야 어떻게 의료인력을 준비해서 배출할 수 있는지 논의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안은 이런 논의 과정이 생략됐다."


- 의사 수 문제 말고도 이야기할 게 많다?

"맞다. 의대 정원이나 의사 수를 이야기하기 전에 살펴볼 문제들이 많다. 왜 필수과에 사람이 가지 않는지, 외과 등 험한 과에 왜 제대로 인력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의사들은 왜 지역에 가지 않는지,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전공의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논의하지 않고 무조건 '쪽수'(사람 수의 속어)의 문제로 돌리니 답답하다.

사실 의료계에서는 의료인력이 필요한 과에 가지 않는다면서 방안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여러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부와 논의하는 등 그다음 단계가 없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문제라 금기시됐던 부분도 있다. 그러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의료 인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갑작스럽게 이런 정책이 나왔다."

-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가 정책을 서둘러 발표했다고 보는 건가?

"일정 부분은 그렇다. 코로나 상황에서 의료계가 느끼는 중요한 현안이 과연 의료인력 문제였나? 앞서 말한 핵심 아젠다가 있는데, 이런 부분을 제끼고 의료인력 문제만 내세우면 의료계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의료인력은 현안을 해결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나와야 할 문제다. 코로나 상황을 정리하면서야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지금 코로나19 상황이 정리됐나?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의 한복판에 있다. 지금 (의료계) 정책 문제를 수립해도 결과는 10년 후에야 나온다. 의사는 교육하는 데만 6년 이상 걸리는 직종 아닌가. 정부가 너무 서둘렀다."

- 하지만 코로나19 때 공공의료와 관련한 여러 문제제기가 있었다.

"대구, 경북의 위기 상황을 생각해보자. 일반 의사, 간호사가 다 뛰어가서 일하며 희생했다. 조직적인 체계가 아니라 개별 의병이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찬찬히 되짚을 시간은 있었나? 코로나19가 여전한 상황에서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전체적인 플랜이 세워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와중에 정부가 이곳저곳 다 몰아서 공공의료 인력 키워야 한다고만 나오는 건 너무나 단순한 논리다. 여기에 의협은 정확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의대 정원 늘리지 말라, 의사 수는 충분하다'라고만 이야기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 의사들의 휴진과 집회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충분한 사회적 여론,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의사 수를 둘러싼 프레임 싸움으로 가면서 갈등을 키우는 건 옳지 않다. 그런데 의협은 정확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만 하고 있다. 아젠다를 설정해 끌고 가면서 국민의 공감을 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 그렇다면 정부와 의협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정책은 합리적인 구조 하에서 탄생해야 한다. 의료계가 휴진 등 모든 걸 내놓고 일방적으로 반대해서도 안되고, 정부가 밀어붙여서도 안된다. 실질적인 리더십이 있고, 제대로 된 대화를 하려면, 정부와 의협이 협의체를 만들고 의료구조 개편을 위한 논의를 해야한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의협 주도 파업, 내부정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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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 휴진 응원 나선 최대집 “우리의 요구 반드시 관철시키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24시간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단체행동 집회를 열었다. ⓒ 유성호

 
- 의협이 14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인터뷰는 파업 시작 전에 이루어졌다.)

"의사들이 파업까지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명분이 약하다. 우리도(보건의료단체연합) 필요할 때는 의사들 편에 섰다. 국민건강에 영향을 주는 문제나 의료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문제, 박근혜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 같은 때는 의협과 함께 싸웠다. 그런데 의사 수 증대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의료계의 시스템, 구조적 문제다."

- 의사들의 파업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건가.

"파업을 하기 전, 대안을 제시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정부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의협은 파업만을 주장한다. 이는 내부정치의 영향도 있다."

- 내부 정치라면?

"의협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구성원 대부분이 개원의이다. 이들은 진료도 하지만 스스로 사업도 하는 사람들이다. 자기들에게 임박한 문제가 국민건강, 의료환경이라기보다는 이익문제일 수 있다. 의협은 여기에 편승해 자극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의사 수가 늘어나 추가 경쟁자가 생기는 걸 막아준다는 프레임이다. 의사정원만은 무조건 막겠다는 건데, (의협) 내부적으로는 이런 주장이 먹힐 수 있다. 현 지도부는 지금까지 무능함을 보이고, 정치적인 것만을 추구해왔다. 협회가 객관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니 국민을 설득할 수가 없다. 의협이 주도하는 파업에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다."

- 의사 수가 부족한 건 맞나?

"일단 의사 수가 중요한지 여부를 이야기해봐야 한다. 보건 의료지표에서 의사 수는 마지막 변수다. 가장 먼저 개선하고 논의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지역 주민과 환자에게는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하며 지역주민건강에 힘쓰고 감염병 위기상황을 지역사회와 함께 극복할 의사가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현재 정부안은 민간 주도로 의사를 양성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의사 수가 늘어나는 건 공공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역 복무기간인 10년만 지나 봐라. 다 나와서 피부과, 성형외과 하지 않겠나."

- 현재 시점에서 어떤 논의가 필요한가?

"정부가 지역 의사를 확충하고 싶었다면, 지방의료원의 시설 노후화와 만성적 인력 부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에 절실했던 건 국가위기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 공공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의사인력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해결한다면서 정부가 발표한 안은 사립의대 충원에 치우쳐 있다. 정부가 의사 정원을 늘리겠다는 의과대학의 기준인 50명 이하 학교는 전국에 총 15개인데, 이 중 12곳이 사립의대다. 사립의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원 증가는 의료공공성 강화나 지역 필수 의사인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안에서 의과학자라는 이름의 의료산업 인력을 양성한다는 것도 문제가 많다. 의과학자는 화장품회사·제약회사 등 영리자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국가 의료체계에 필요한 인력인가? 그렇지 않다. 정부가 의과학자를 지역의사보다도 3년 먼저인 2025년부터 배출할 수 있도록 단기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현재 의전원이나 의대편입 정원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다."

- 결국 공공의료병원과 공공의대가 필요하다는 건가?

"맞다. 둘은 연결되어 있다. 공공의대를 설립해도 훈련을 책임질 수 있는 양질의 공공의료기관이 없고, 배출 후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지역 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려면 증원 숫자만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공의대와 공공병원을 함께 늘려야 한다."
 
#의대정원 #코로나19 #의대 #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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