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소 가업 이은 셋째딸 "아버지 신용과 기술 지켜갈 것"

서산의 신혜정씨 "무거운 인쇄물 납품할 때 힘들지만, 보람 느껴'

등록 2020.08.14 20:43수정 2020.08.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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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정 씨는 "여성의 장점을 살려 경쟁하고 높은 품질을 목표로 더욱 노력할 것"이라면서 "아버지가 쌓아놓은 신용과 믿음, 기술력에 더해,더 나은 인쇄장인이 되는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신영근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는 일을 보고 자란 자식들이 그 일을 이어받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부모님이 하던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충남 서산시에서 셋째딸로 태어난 신혜정(44)씨는 대를 이어 아버지가 하던 인쇄소를 경영하고 있다. 인쇄소 일이 편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무거운 인쇄물을 직접 배달도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업 활동을 해야 하는 등 고된 직업 중 하나다.

여성으로서는 힘들 법도 한 인쇄업에 5년 전부터 뛰어든 신혜정씨를 지난 10일 서산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다음은 신혜정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아버님은 인쇄업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1970년 옛 서산군청 신축 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50년째다. 제가 태어나기 7년 전으로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오래됐다. 서산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소로 기억한다. 당시 어렴풋이 아버지가 매일 야근하면서 힘들게 일을 한 기억이 난다. 그런 모습에 어린 마음에도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 어떤 이유로 아버지 사업을 이어가게 됐는지?
"지인들도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다. 제 대답은 '형제들 중 적성에 맞는 사람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시작됐다'이다. 사실 막냇동생(신씨는 2남2녀 중 셋째딸)과 아버지 일을 도와주다가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인쇄소를 하기 전 자동차 영업사원과 PC방 등을 운영했지만 여의치 않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 인쇄업을 이어받을 팔자였나 보다(웃음)."


- 인쇄업뿐만 아니라 모든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 인쇄업도 예전만 못하다. 아버님이 운영하실 때는 당연히 컴퓨터가 없던 시기로 직접 손으로 쓰거나 활자를 하나하나 맞춰 작업했어도 정말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경쟁업체가 생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올초부터 발생한 코로나19로 거래하던 기관이나 업체의 회의와 행사 등이 없다 보니 예년보다 무척 힘든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전자매체가 발달할수록 종이가 필요 없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솔직히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럼에도 발로 열심히 뛰어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는 올 초보다 다소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 사업을 하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아버님이 워낙 오래 인쇄업을 해오셨기에 그동안 거래 해왔던 고객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이 소중한 자산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디자인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삼고, 이를 위해 부지런히 발로 뛰고 고객의 눈높이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 자동차 영업을 한 경험이 있어 나만의 고객리스트를 작성해, 적재적소에 영업하고 있는 것도 노하우다."
  

인쇄소를 하기 전 자동차 영업사원과 PC방 등을 운영했지만 여의치 않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인쇄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신혜정 씨는 "아마, 인쇄업을 이어받을 팔자였나보다"라는 웃어보였다. ⓒ 신영근


- 그동안 힘든 점은 없었나?
"여성으로서 무거운 책자나 인쇄물을 납품할 때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다. (인쇄업이 예전만 못해 배달 직원 채용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고 씩씩하게 이야기하지만, 여성이라고 은근히 (고객들에게) 무시당할 때는 속상해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엄마의 어려움을 알고 전화나 문자로 항상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있어 다시 힘을 내곤 한다. 아버지 뒤를 이어 인쇄업에 뛰어든 지 5년이 됐지만, 아직도 대표라는 직함이 어색하다."

- 인쇄소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이 들 때는?
"여담이지만 요즘 이 나이에 어디가서 취직할 수 있나. (아버지 사업을) 하기 잘했다. 과거 아버지의 신용과 기술, 인맥 등을 고객이 인정해주면 힘이 나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아버지의 자산이 나의 자산이 되는 것 같아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다.

학창 시절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지만, 지금은 철이 들어 효도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할 때도 있다. 아버지가 특별히 당부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노력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고객을 대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를 제외하고 인쇄소 직원 5명이 모두 여성이라, 예전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여성의 장점을 살려 경쟁하고 높은 품질을 목표로 더욱 노력할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쌓아놓은 신용과 믿음, 기술력에 더해 더 나은 인쇄장인이 되는 것이 목표다. 또,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더 성장 시키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아울러,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 어머님 그리고 소중한 내 아이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대를잇는셋째딸 #서산시 #코로나19 #인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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