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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사건에 무더기 기소... 검찰 결정의 두 가지 의미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12] 위험의 외주화 근절 시발점이 되길

등록 2020.08.11 11:04수정 2020.08.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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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김용균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재판을 시작합니다! 기자회견 ⓒ 김용균재단

 
2018년 12월 10일 김용균 청년노동자가 사망한 지 20개월만인 지난 8월 3일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주) 대표이사 등 임직원 9명, 하청업체 대표이사 등 임직원 5명, 그리고 원·하청 각 회사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위반 혐의로 정식기소하였다.   

검찰은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안전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부문을 하청업체에 도급·위탁하는 방식인 소위 '위험의 외주화'의 구조하에서 원청과 하청 소속 근로자 사이의 실질적인 지휘·감독 관계를 규명하여 원청 역시 안전사고에 있어 책임자임을 확인"하였고, "특히 원·하청의 대표이사들이 유사한 안전사고가 빈발하여 안전사고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대표이사의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 속에서 사고 발생의 위험성을 인식하였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사실 규명"을 하였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서는 노동자의 신체 일부가 말려들어갈 수 있는 회전체에는 덮개나 울 등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청소·검사작업시 위험 우려가 있는 경우 기계운전을 정지해야 하며, 작업장의 조도는 150럭스 이상 또는 75럭스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덧붙여 작업자에 대한 위험 우려가 있는 작업시 노동자 배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작업위치를 이동하지 아니하고 조작할 수 있는 동력차단장치를 설치하고 유지·점검해야한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용균 청년노동자가 일하다 사망을 한 작업현장은 컨베이어벨트 점검구의 크기도 작고, 주변 조명은 어두웠으며, 다량의 분진과 소음으로 점검구 바깥쪽에서 육안으로만 설비를 점검하기 어려웠다.

점검구에 설치되어 있던 덮개도 작업편의를 이유로 제거된 상태에서, 운전원들의 팔 또는 머리 등 신체의 일부가 컨베이어벨트와 아이들러의 물림점에 협착되어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었다. 사고가 나는 경우 다른 근무자가 비정정지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2인 1조 작업지침은 지켜질 수 없는 조건에서 혼자 일하다 끔찍한 사고를 당하였다.  

원청과 상급관리자, 책임 있다
 

기자회견 발언 중인 송영섭 변호사 ⓒ 김용균재단

 
검찰의 이번 기소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하청 노동자의 사망에 대하여 '원청'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가 난 ABC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하여 9, 10호기를 구성하는 모든 설비는 원청 소유이다. 한국서부발전 주식회사는 설비의 소유자로서 설비에 대한 운전, 정비, 보수, 개선 등에 관한 권한을 바탕으로 설비에 대한 운영 전반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였다.


검찰은 원청 소속 임직원들에 대하여 "한국발전기술에 9, 10호기의 상하탄설비 운전 등의 업무를 위임함에 있어 피해자 등 한국발전기술 소속 운전원들이 안전하게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설비에 대한 방호조치, 작업시 안전을 고려한 적절한 인원의 근로자 배치, 안전점검 등을 통해 상하탄설비 운전 등의 전반적인 업무와 관련하여 한국발전기술 소속 근로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했다.

그래서 방호설비 미설치, 2인 1조 작업배치 여부에 대한 관리·감독 미실시, 비상정지장치 작동불량, 설비가동 중인 상태에서의 점검작업 지시, 작업장 조도 불량 등에 대한 원청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였다.  

둘째, 사고 현장의 실무책임자를 넘어 원·하청 대표이사, 기술전무 등 '상급관리자'의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원청의 대표이사는 작업장에서 유사한 협착사고가 수차례 발생하여 작업공정 개선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태안화력본부에 방문하여 근무자들의 작업현장이 방호울·덮개 등 방호설비가 전혀 설치되지 않은 채 운전 중인 것을 확인하고 그 위험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안발전본부의 안전관리를 현장 실무책임자에게 맡겨두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이 인정됐다.

하청 대표이사도 분기별로 태안사업소장 등 각 사업소장들로부터 사업소의 인력 현황 및 계약 관련 사항 등을 보고받았고, 직접 태안사업소를 방문하여 현장을 둘러보았다는 점이 인정되었다. 검찰은 대표이사 등 상급관리자들이 작업현장의 안전관리를 현장관리자들에게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근로자가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는 물림점 등에 대한 방호설비를 설치하도록 지시하거나, 주요 위험 설비에 대한 점검 및 2인 1조 실시여부 등 작업 매뉴얼 준수 여부 등에 대한 점검을 실효적이고 철저하게 실시하여 개선하도록 관리·감독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결국 원·하청 대표이사부터 현장관리자들까지 석탄설비시설에 대한 유지·관리 및 운영에 대한 책임자들이 각자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고, 그러한 의무위반이 경합하여 김용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인정되어 관련자들에 대한 무더기 기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근본적 원인과 책임자 규명

한국의 산업재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매우 높고 그 중 사망재해는 최고 수준이다. 지금까지 많은 경우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하여 원청은 직접적인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하고 하청의 경우에도 사업주가 아닌 현장 관리감독자 정도로 처벌대상이 한정되고 처벌수위도 매우 낮았다.

사망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뒤로한 채 현장책임자 몇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로 처리되곤 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실무책임자 몇 사람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익은 위로 향하고 위험은 계속해서 아래로 향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지 못하면 지금도 계속되는 제2, 제3의 김용균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검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피고인들에게 책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앞으로도 산업재해에 대한 적극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고의 근본적 원인과 책임자를 규명함으로써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문화의 정착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진행될 법원의 형사재판을 통해 김용균 노동자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과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자가 처벌됨으로써 본 사건이 위험의 외주화 근절의 시발점 되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용균시민대책위 법률지원단 송영섭 변호사입니다.
#김용균 #김용균재단 #위험의 외주화금지 #책임자처벌 #진상규명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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