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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컵→크리스탈 잔... 와인 맛이 이렇게 다릅니다

[아츄의 와인앤라이프] 잔이 와인 마시는 데 미치는 영향

등록 2020.08.17 11:16수정 2020.08.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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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좋아하는 회사원 아츄의 와인 일기입니다. 인천지역 소모임 모임장으로 6년 동안 와인모임을 운영하며 발생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냅니다.[기자말]
동기 형들과 와인을 처음 마시게 된 이후로 우리는 보다 본격적으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정말 뭐에 홀린 듯이 거의 매주 한 번 아니면 두 번, 많게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퇴근 후 매일 모여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나보다는 오히려 영훈이형이 더 와인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훈이 형은 와인을 보다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알아오지 않나, 인천지역 와인 동호회에도 가입하며 활발한 와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알고 봤더니 이 형 뭔가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내가 구매한 단 돈 8,000원짜리 와인이 마치 봉인되었던 형의 와인 본능을 일깨운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우리를 이끌어주는 와인 리더가 생긴 덕분에 상민이 형과 나도 덩달아 와인에 빠지게 되었다. 영훈이 형 덕분에 다른 주종은 손도 대보지 못하고 반 강제적으로 와인만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형이 드디어 와인 도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취미를 시작할 때 '장비병'이 있다고 했던가? 그 시작은 바로 와인잔이었다. 유난이 더웠던 어느 여름날, 퇴근길에 영훈이 형으로부터 소집 문자가 왔다.

"오후 8시 내 자취방, 와인 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터였다. 마침 그냥 퇴근하기도 적적하고 혼자 맥주나 한 잔 할까 하는 찰나였기에 나는 바로 동의 메시지를 보냈다. 시의적절하게 상민이 형도 회신이 들어왔다. 

"콜"
"콜 X 2"


우리는 퇴근하자마자 한 달음으로 형의 방으로 달려갔다. 영훈이 형은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어서 앉아, 와인 마실 거니까 안주 시키고."
"아니 형 뭐가 이리 급해? 안주는 이미 시켜놨지. 아마 10분 내로 올 거야. 그런데 왜이리 들떠 있어?"


형은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며 격양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기대해! 드디어 주문했던 와인 잔이 도착했어."
"와인 잔을 주문했었어? 오! 안 그래도 다이소에서 3천원짜리 와인 잔을 살까 고민하고 있던 터였는데..."

"다이소 와인 잔도 좋겠지만 이 와인 잔 무려 슈피겔라우 와인 잔이라고!"

와인 초보가 슈피겔라우 와인 잔을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형이 꺼낸 와인 잔을 보니 딱 봐도 가벼워 보이고 시원하게 생겼다. 

"이 와인 잔에다 와인을 마시면 말이야, 스월링을 하기도 쉽고 더 맛있어."
"아니 더 맛있다고? 고작 잔인데?"

"그렇다니까?! 일단 마셔봐."
   
와인 잔은 술자리의 질을 바꾸었다
 

와인을 많이 따르면 따를수록 좋은건 줄 알았다. ⓒ Pixabay

 
형은 우리에게 와인을 따라 주었다. 농익은 와인이 와인 잔에 채워지기 시작했고, 와인이 와인 잔에 1/3 가량 채워지자 형은 와인을 따르는 것을 멈추었다.

"아니 형님, 와인을 주다 말면 어떡합니까?"
"와인을 주다 말았다니, 이게 적정량이야. 와인은 많이 따른다고 좋은 게 아니야. 와인이 채워지는 부분을 보올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가장 널찍한 부분까지 채우는 게 가장 좋아."
"아니 왜? 와인 여러 번 따르기 번거롭잖아. 그냥 많이 따라줘. 소주처럼 표면장력 유지하면서 좀 많이 채워줘~"
"음... 아니 내 말을 들어봐."


형은 굉장히 당황해 하며 말을 이어 갔다. 

"와인은 스월링이 매우 중요한 술이야. 바로 오픈한 와인은 산화 되지 않은 젊은 상태이기 때문에 스월링 즉 와인을 돌리는 것으로 마시기 좋은 상태로 만들며 마셔야 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많이 와인을 따르게 되면 스월링 하기가 힘들어. 와인이 쉽게 넘치기도 하고."
"아! 영화나 드라마 보면 주인공들이 와인을 받고 와인 잔을 돌리는 게 바로 그런 이유 였구나!"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따라준 만큼 와인을 받고 일단 마셔. 또 따라줄테니까."


형은 흥분한 나를 진정시키며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렇게 와인 한 모금 마시려는 찰나, 와인잔을 보니 다른 와인잔들과 다르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문득 가격이 궁금했다.

"오늘도 와인 상식 하나 배웠네? 그런데 이 와인 잔 좀 비싸 보이는데 얼마나 하는 거야?"
"아! 가격은 3만 원 정도 해."


나는 잘못 들었나 했다. 와인 잔 하나에 3만원 씩이나 한다고? 보아하니 4잔은 산 것 같은데 다하면 12만 원이다. 와인 잔의 가격을 듣는 순간 와인 잔을 들고 있는 손이 조심스러워졌다.

"아니 뭔데 이리 비싸? 와인 잔이? 다이소 와인 잔은 3천원밖에 안 하던데, 이렇게 비싼 와인 잔은 도대체 왜 샀어?"

나는 경악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형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3만 원이면 딱 보통인 가격대야. 물론 와인을 처음 마시는 분들은 비싸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와인의 세계에서는 가장 보통의 가격대로 보면 돼. 그리고 이 와인 잔 한 번 볼래? 와인 잔에서 막대기처럼 길쭉한 부분 즉, 손으로 잡게되는 이 부분을 스템이라고 부르거든? 어때 보여?"
"아! 다이소 와인 잔보다 얇다. 이렇게 얇으면 쉽게 부러지지 않아?"

"와인 잔들은 다 조심해서 마셔야지. 하지만 와인 마시기에 내구성은 충분해. 와인 스템을 얇게 만드는 것도 기술력이고, 무엇보다도 와인이 담겨지는 바디와 스템 그리고 바닥 부분을 끊어지지 않고 한번에 뽑아내는 게 더 비싼 거야.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저렴한 와인 잔들은 보올, 스템, 베이스 이렇게 3개의 부분을 각각 대량 생산한 다음 최종적으로 용접하듯 접합해서 만들어. 이 슈피겔라우 와인 잔은 각부분을 접합한 와인들과 다르게 보올, 스템, 베이스 각 부분을 나누지 않고 한번에 생산해냈기 때문에 더 가볍고 그만큼 비싸지. 사실 장비가 중요한 건 아냐. 3천원 짜리 와인 잔이라도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는 것처럼 장비에 너무 연연해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조금 더 갖추어 두면 와인을 보다 재미있게 마실 수 있을 거야."
"오! 좋은 말이네, 그럼 우리 일단 건배부터 할까."


좀 더 좋은 와인 잔을 사게 되는 이유
 

컵으로 건배를 했을 때 '틱!' 하고 끝나던 것이 와인 잔끼리 서로 공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 최은경

 
우리는 형이 구매한 와인 잔으로 첫 건배를 했다.

'띵~~잉~~'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 펴젔다. 컵으로 건배를 했을 때 '틱!' 하고 끝나던 것이 와인 잔끼리 서로 공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츄야! 와인 잔 소리 들려? 이게 바로 좀 더 좋은 와인 잔을 사려는 이유야."
"왜? 차이가 있어?"

"보다 저렴한 잔들은 건배를 할 때 틱! 하면서 맥 빠진 소리를 내지만, 좀 더 좋은 와인 잔들은 공명을 하며 울리거든. 와인은 감각이 매우 중요한 술이기 때문에 이러한 공명음도 와인을 즐기는 데 한몫 해!"
 

형은 유난히도 감각을 중요시 했다. 그때 당시는 아직 감각을 활용하여 와인을 즐길 레벨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형에게 많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경험을 통해 알게 되지만 와인은 보다 분위기를 탈 수 있는 술이고, 소리와 색 그리고 맛 등은 이런 분위기를 보다 더 즐겁게 만든다는 걸 모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역시 어떠한 활동을 함에 있어 경험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무엇이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훗날 깨닫게 되었다. 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형에게 질문을 던졌다. 

"형! 근데 이거 와인 잔이 다른 와인 잔들과 다르게 좀 얇은 것 같은데?"
"오! 맞아, 그걸 설명 안 했네. 와인 잔들과 다르게 좀 얇지? 이게 유리가 아니라 크리스탈이라 그래."

"크리스탈? 우리네 장식장에 보면 크리스탈로 만든 컵들 있는데 그런 거 말하는 건가? 그건 두꺼 웠는데."
"네가 무슨 크리스탈 잔을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유리와 크리스탈은 좀 차이가 있어. 크리스탈에는 납 성분을 굉장히 조금 추가해서 제작자가 원하는 다양한 형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거든. 유리보다 더 얇게 모양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그래서 크리스탈 잔에는 크리스탈이라고 명기 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
"근데 이거 너무 얇으니까 깨질까봐 건배도 못하겠다."


나는 와인을 조심스레 입에 털어 넣으며 형에게 말했다. 형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몸통으로 건배하면 쉽게 깨지지 않으니까. 입이 닿는 부분 즉 림이라고 부르는 부분으로 건배를 하면 깨지기 쉬우니까 거기만 주의하면 되. 그 부분은 설거지 할 때도 조심해야 해.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
"생각 외로 와인 잔에 대해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배울 점도 많구나? 지금 짧은 순간에도 많은 내용들이 오간 것 같아."


"그치? 그래서 재미있어. 와인 잔만 알아도 아니 와인 잔만 바꿔도 와인의 맛이 바뀌는 것 같아. 그래서 심오하지."
"동의해. 일반 컵으로 마시는 것보다 와인 잔으로 마시는 게 더 분위기 있고 맛있는 것 같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야."

"사실 와인 잔으로만으로도 1~2시간 설명을 할 수 있지만 다음에 더 많은 설명을 해줄게. 와인 잔이 왜 투명한지, 각 와인 별로 왜 와인 잔이 구분되어 있는지, 와인 잔 각 부분이 어떻게 명명하는지, 스월링을 어떻게 하는지, 와인 잔에 와인을 얼마만 따라야 하는지, 와인 잔에 와인을 언제 따라야 하는지 등등 와인 잔으로만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해."


와인을 그냥 마시는 것보다 알아가면서 마시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이렇게 우리 세 남자의 와인 라이프에 도구라는 것이 개입되기 시작하였다. 도구는 우리의 와인 생활을 더욱 더 풍족하게 해주었고, 더욱 와인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이러다 와인 중독 되는 거 아닐까? 문득 두려웠지만 걱정은 그때 가서 하고 지금은 일단 이 순간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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