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서 명심보감도 읽고 추억에도 잠겼다

한여름에 오른 영천동의 영천악

등록 2020.08.14 08:45수정 2020.08.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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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금요일마다 오름 올라가는 금오름 나그네가 자배봉 다음으로 영천악을 올랐다. 오후 4시 20분 경 자배봉을 출발하여 5시 경에 서귀포 산업과학고 부근에 있는 영천악에 도착하였다.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따라 영천악 입구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도의 길은 찻길이 아니었다. 차를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걷는다. 
 

영천악 대숲 오름 입구를 찾아가는 길에 있다. ⓒ 신병철

 
대나무 숲이 나타났다. 숲이 제법 길다.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이 곳에 영천관이란 관사가 있었단다. 조선시대에 대정에 있었던 대정현과 성읍에 있었던 정의현 중간에 세운 관리의 휴식처였다. 그래서 오름도 영천악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오름 안내판에 적힌 또 다른 유래가 있다. 주변의 하천 이름이 영천천이라서 오름이름이 그렇게 되었고, 또 거꾸로 오름 이름이 영천악이어서 내(川)이름이 영천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악(岳)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으니 영천오름이라고 하는게 좋겠다.
  

영천악 올라가는 길 거대한 나무로 덮힌 올라가는 길 ⓒ 신병철

 
대나무숲을 지나서 숲길을 더 걷는다. 갑자기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다시 방향을 틀어 산으로 들어간다. 오름 올라가는 길과 둘레를 도는 길로 나뉘어지는 삼거리가 드디어 나타났다. 안내판이 있는 입구다. 다행의 한숨을 쉰다.

올라간다. 나무가 예사롭지 않게 거대하다. 제주에서 나무가 거대하고 높다는 것은 산에 흙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무가 뿌리를 깊이 박을 수 있고, 또 그러면 태풍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높이 자랄 수 있다. 

올라가는 길도 그래서 흙길이다.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요즘은 계단으로 된 산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단을 지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오름의 길은 조성한 지 좀 오래된 모양이다.
 

영천악 전망대 오름 정상 숲속에 세워놓았다. ⓒ 신병철

 
어느 듯 정상에 도달했다. 어느 안내판과 여행글에도 비고가 나타나 있지 않다. 대강 짐작컨대 100m쯤 되는 것 같다. 별로 힘들지 않게 올라왔기 때문이다. 둥그런 분화구가 없고 능선따라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 그러니 정상 능선길이 길다. 벤치가 있는 적당한 쉼터가 있어 쉬면서 간식을 먹는다. 

능선길 따라 더 걷는다. 오르내리지 않아서 힘이 안 든다. 하늘 한번 보고 나무 한 번 보고 땅 한 번 보고 그냥 걷는다. 이럴 때가 참 좋다. 전망대가 나타난다. 숲속에 잘 지은 전망대다. 이게 있는 줄 알았으면 간식을 여기서 먹는 건데 하며 아쉬워 한다. 전망은 나무에 가려 시원찮다. 우리는 올라 가 보곤 곧 간다.
 

영천악 명심보감 광장 또 하나의 정상에 명심보감판을 세워 놓았다. ⓒ 신병철

 
또 조그만 정상이자 광장이 나타났다. 이정표가 있고, 글판이 있다. 명심보감 글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은 고려대 추적이라는 사람이 고전의 금언과 명구를 모아 역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마음에 새기는 보배로운 글이다.

누가 세워 놓았을까? 영천 마을 사람들이 세웠을까? 명심보감 중에서 또 최고 좋은 것을 뽑아, 이 오름 꼭대기에 세워 놓았다니. 숲속에서 덜컥 나타나는 명심보감 글귀가 심금을 울린다. 그저 감탄할 뿐이다. 지나가면서 보곤 생활지침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한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
"가능하면 참고 또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참지도 않고 경계도 않으면 작은 일이 크게 될 것이다."

명심보감 한 편을 읽고 지나간다. 너무 조심스런 태도를 지향하는 글이라 별로 탐탁치 않아진다. 흥부의 소심함보다는 놀부의 진취성을 더 높이 사는 요즘의 세상에 진부한 경귀인 듯하다. 하기사 진부하지 않으면 그게 보감이 될 수 있을까?  
 

영천악 나무 전봇대 오름 아랫자락 길가에 서 있다. ⓒ 신병철

 
능선길이 끝나고 내려간다. 금방이다. 이젠 오른쪽으로 돌아 오름 입구로 갔다가 다시 대나무숲을 지나 주차한 곳으로 가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정자를 비롯한 편의시설을 많이 구비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오름과 그 주변을 휴식의 공간으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길 옆에 나무전봇대가 서 있다. 안내판도 있다. 좀 길지만 적어 본다.

나무전봇대(1950~1960년대 사용)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50년 전 아니 60년 전에도 오늘이 있었겠지요. 이 전봇대는 5~60년 전 오늘을 살던 이곳 영천동 사람들의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놀이터와 쉼터였습니다. 술래가 나무전봇대에 얼굴을 묻고 열을 셀 때 꼭꼭 숨었던 이야기와 전봇대 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을 담고 있겠지요. 지금의 콘크리트 전봇대에 비하면 왜소하고 단단하지 않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연과 함께하고, 추억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문맥이 약간 어눌하고 내용이 비약적이지만, 감동적이다. 1960년 이전이라면 이곳에 전기가 들어오진 않았을 것 같고, 그렇다면 이것은 전화와 전신을 위한 기둥이었다. 마을 아이들이 전봇대 주변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다망구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싸우기도 했던 놀이터이자 쉼터였던가 보다.

그런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하나 남은 당시의 나무전봇대를 간직하고 추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저 글에서 옛날 같이 놀았던 친구를 떠올리고 또 순진무구했던 그때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모습이다. 과거를 되새겨 현재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아름다운 현장이다.  

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두 개의 오름을 올랐던 금오름나그네들이 오늘은 거나하게 먹잔다. 그래서 남원에서 표선에는 없는 염소 요리를 먹기로 했다. 요리를 코스별로 먹으면서 우리끼리도 술을 정인양 찰찰 넘치게 따라 마셨다. 몸도 마음도 모두 거나해진 멋진 하루였다.
#영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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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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