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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한국판 뉴딜, 기본소득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한국판 뉴딜, 문제점과 대안 모색 4] 한국판 뉴딜, 복지 분야 평가

등록 2020.08.24 18:23수정 2020.08.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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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전국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조치가 시행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 설치된 광고판에 코로나19 예방수칙 안내문이 띄워져 있다. ⓒ 유성호

 
"제발 집에 가게 해 주세요."

코로나 관련 토론회에서 한 노인복지시설 종사자가 전한 목소리였다. 코호트 격리로 인하여 봉쇄된 채 생활한 지 두 달이 넘어가자, 외부로부터 어떠한 면회도 프로그램도 없이 종일 방에만 갇혀 지내던 노인의 말이었다. 삶을 비관한 노인이 자해까지 시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러한 비극이 보고되던 즈음,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판의 지점은 한국판 뉴딜이 현재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고통과 불안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는 측면, 재난이 가져온 체제 전환 국면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이윤 축적의 기회만 살피는 재난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인다는 측면, 또한 제시된 구체적 사업들이 전혀 혁신적이지 않고 기존에 각 부처가 가지고 있던 숙원 사업에 불과하다는 점 등이다. 

기재부가 서랍 속에 가지고 있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그대로 포장 바꿔치기만 한, 그리고 이를 그대로 발표한 현 정부에 허망함을 느낄 뿐이다. 재난적 상황이든 종말적 상황이든, 그야말로 기승전, 성장이다.

사회안전망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한국판 뉴딜에서 사회안전망은 디지털 뉴딜(58조 4000억 원)과 그린 뉴딜(73조 4000억 원)을 뒷받침하는 보완적인 안전장치(28조 4000억 원)로만 설계되었다. 그마저도 사회안전망에 소득, 고용, 건강, 주거, 돌봄 영역의 빅딜은 포함되지 않았고, 기존 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 해소만 일부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예산 규모 내에서' 일부 집단을 포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한국형 뉴딜이 제시한 대표적인 고용사회안전망 전략은 전 국민 고용보험, 한국형 상병수당, 생계 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국민취업 지원제도이다. 이름만으로는 적극 환영할 만하다. 드디어 고용 관계를 떠나 모든 국민이 실업급여 자격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되거나, 아프면 쉴 수 있는 노동 권리가 보장된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형 뉴딜은 이러한 기대와 전혀 거리가 멀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예술인과 특수형태근로 종사자만을 포괄하고 있고, 상병수당은 타당성 연구 후에 저소득층 지원사업과 같은 매우 협소한 시범사업만 제안됐으며,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존속되며, 국민취업 지원제도는 한국형 실업 부조에서 한참을 후퇴한 모습 그대로다. 

더 나아가 한국형 뉴딜의 사람투자 전략에는 사회안전망이 아닌 대학과 기업에 신기술 인재양성 투자만 제시되어 있어 사회안전망과는 전혀 맥락에도 맞지 않다. 재난 상황에서조차 사회보장 확충에는 관심이 없는 정부라는 비판이 타당한 이유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다

최근 실시된 각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코로나의 피해가 누구보다 기존 취약계층에게 집중되고 있고 이들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급성을 인식하고 있다. 감염병 고위험군인 노인과 장애인, 사회적 고립 가구, 가정폭력/학대 피해자, 긴급돌봄이 필요한 한부모 가정, 우울과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 위험집단 등 기존 복지 대상자 집단뿐 아니라 경기침체로 인하여 실업에 빠지거나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감염병에 노출되는 저소득 불안정 노동계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 인식은 코로나 희생자가 상당수 요양원과 요양병원 그리고 콜센터와 물류센터 등에서 발생하였으며, 실업은 여성, 청년, 임시직, 그리고 불안정 노동계층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사회복지 현장은 코로나와 함께 거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코호트 격리된 사회복지 생활 시설 경우 종사자들이 24시간 묶여 복도나 사무실에서 자야 했고, 늘 감염의 상황을 대비해 소독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지역아동센터는 등교를 못 하는 아동들이 대거 몰리면서 급식 예산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면 서비스가 필수적인 곳에서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은 없었고, 오히려 코로나 3차 추경을 위한 지출구조조정에는 장애인 활동 보조 등 국고보조 사회복지사업이 대거 예산 삭감 대상에 포함되었다. 물론 그 어디에도 디지털 뉴딜이나 스마트 그린을 통한 유망산업 육성이 코로나의 취약계층을 구제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위기를 촉발한 이들은 이번에도 그 피해를 사회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넘기고, 그 비극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활로를 찾고 있었다.

한국판 뉴딜의 사회안전망은 최소한 돌봄과 고용 측면에서라도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세심한 대책을 내어놓았어야 했다. 예컨대, 공공돌봄의 확충, 기초생활 보장의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폐지, 복지시설 대체 인력 확보,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등이다. 현재 민간 공급자에 의해 임의로 운영되는 돌봄 체계에 사회적 방역 체계를 맡기기는 부적절하고, 감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메우는 역할도 기대하기 어렵다. 

코로나 긴급돌봄의 일부 사례들이 보여준 바와 같이 지방지차단체가 돌봄의 공공인프라를 확보하는 뉴딜이어야 한다. 또한 질병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사회적 방역 측면에서도 절실한 과제이다. 

고용 관계에 의해 수급권이 차별화되고 사각지대가 형성되는 현재의 사회보험 체계의 대대적 수술도 필요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다양한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를 포괄하는 실질적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제도적 정합성을 고려한 상태에서 유급병가와 상병수당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는 뉴딜이어야 한다.

저성장에 따른 복지 체제 전환은 어디에?

왜 이렇게 허술한 한국판 뉴딜이 마련된 것일까?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생태적 지속가능성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주장을 사기로 간주한다. 기후변화를 인정하는 순간, 근본적인 전환 즉 그들이 쌓아놓은 토대가 허물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보장도 마찬가지이다. 현 코로나 재난 불평등의 해법이 규제 없는 시장경제를 견제하는 공공성에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생산-분배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동과 일상의 재편을 기획하는 새로운 사회보장을 제시해도 부족한 지금, 한국판 뉴딜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 변죽만 울려댄다.

특히 한국판 뉴딜에서 제시한 사회안전망 사람투자 전략 사업들이 그렇다. 과기부와 정보화진흥원은 이미 완료했어야 하는 농어촌 마을 인터넷망 계획,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은 그린엔지니어링 특성화 대학원 모집 계획, 고용노동부는 직업훈련 사업의 K-디지털 계획 등을 내놓았는데 이는 이미 지난 정부에서부터 추진되었던 오래된 사업들이다. 

이러한 내용이 대통령 발표로 이루어진 것만으로도 현 정부의 국정 통제력 상실 또는 패러다임 전환으로서 뉴딜의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한국판 뉴딜은 실무지원단을 맡은 기재부에 의해 각 부처의 사업이 제출되었을 뿐, 장기적으로 국민의 삶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성찰이 없다.

OECD는 코로나 시대의 사회 보호의 과제로서 각국이 소득과 부의 분배 악화, 노동과 직업의 양극화, 주거 빈곤층의 새로운 고립, 불안과 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 문제, 사회적 거리두기 하에서 관계적 소외, 일과 삶의 불균형, 가정폭력의 위험과 취약계층 피해 증대에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이러한 위험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었다. 이제 감당할 수 없이 심화된 코로나 이후의 조건에서, 뉴딜이라고 명명할 만큼의 올드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뉴딜은 사회보장 제도의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기회이다. 경기도가 시도한 재난 기본소득을 시작으로 기본주택과 비정규직의 상대적 고임금 방안 등에 왜 국민의 반응이 뜨거운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는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공공재로 보호하려는 민주주의 회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딜(deal)을 하기 위해 한국사회의 주요 정치집단들이 새로운 형태의 협상을 해야 한다. 오늘날 사회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불안정 노동자, 소상공인 자영업자, 그리고 청년과 노인들이 함께 새로운 사회보장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뉴딜에 걸맞은 사회안전망을 제시하려면, 기본소득 내지는 연기금을 통한 돌봄 뉴딜 정도는 포함해야 한다. 고용은 사라지지만 공동체가 사회적 백신이 될 수밖에 없는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는 모두의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기본소득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다. 

또한 연기금의 불확실한 자본시장 투자 대신 공공요양원, 공공재가 돌봄,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투자가 어서 빨리 논의되어야 한다. 불의한 사회구조의 종말적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면, 아무리 이상적인 대안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적 실험이 도처에서 가능해야 한다. 코로나가 재난의 모습을 띤 혁명적 단절을 불러온 만큼, 다가올 미래의 신질서는 보다 혁신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형용 시민기자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입니다. 위 기고는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코로나19시민대책위)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시민대책위는 전세계적 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모인 약 35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기구입니다. 코로나19시민대책위의 활동 자료는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 covid19socio.tistory.com
#한국판뉴딜 #코로나 #사회안전망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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