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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도 못 갈 것'이라던 농촌잡지의 생존비결

창간 3주년 맞은 <월간 옥이네>... 지역 특성·의제 집중한 덕에 '우수콘텐츠 잡지' 선정

등록 2020.08.27 10:19수정 2020.08.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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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없는데 굳이 해야 해?"
"무작정 한다고 잘 될까?"
"해낼 역량이 돼?"

충북 옥천에서 <월간 옥이네>(아래 <옥이네>)가 태동할 때 주변에서 만류하며 건넨 말들이다. 뜻이 좋고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인구 5만여 명, 청년이 만 명도 안 되는 농촌에서 과연 월간지가 성공할 수 있냐는 우려였다. '3년도 못 갈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옥이네>가 2017년 7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3주년을 돌파해 38호까지 냈다. 구독자도 꾸준히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올해 3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잡지협회의 '2020년 우수콘텐츠 잡지'로 꼽혔다. 청년이 줄어드는 지역에서 청년들이 만드는 농촌잡지가 3년 넘게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관련기사 : "잘 되려면 서울 가야지" 그 말이 싫어 선택한 길]

세대보다는 '지역'에 충실한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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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발간된 <월간 옥이네> ⓒ 월간옥이네

 
<옥이네>는 사회적기업 '고래실(대표 이범석)'에서 발행하는 지역 농촌 문화잡지다. 고래실은 지역의 교육·문화 인프라 확대와 농촌재생을 위해 다른 지역 출신인 20, 30대 청년들이 모여 2017년 3월 창립했다.

옥천의 풍부한 유·무형의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해 문화공간 운영, 지역마을여행 기획, 출판·디자인 사업 등을 진행하지만, 고래실의 대표적 활동을 꼽으라면 역시 <옥이네> 발행이다. 옥천의 '비옥할 옥(沃)'자를 따 이름 지은 <옥이네>는 옥천의 역사와 지역을 일궈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현재 박 편집장을 비롯해 3명의 기자와 2명의 디자이너가 잡지를 매달 만들고 있다.

점차 양질의 잡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옥천 안은 물론이고 옥천 밖에서도 구독자가 유입된다고 한다. 독자 400여 명 중 80%가 옥천 주민이고 20%가 타지역 시민이다. 구독자 연령대는 재밌게도 40, 50대의 비율이 가장 높다.

지난 13일 만난 박누리 <옥이네> 편집장은 바로 이 점이 <옥이네>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특징이자 다른 잡지와의 차별 지점이라고 꼽았다. 청년이 만드는 잡지라고 해서 '청년'의 이야기만 하지 않기 때문에 옥천의 다양한 주민들에게 외면받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드는 사람이 청년일 뿐이지 옥천의 이야기, 지역의 고민과 가치를 우선으로 담아요. 미담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다 같이 생각했으면 하는 문제들도 부족하지만 지면을 통해 화두로 던져보고 있어요.

저희가 잡지에 담고자 하는 그런 지향을 독자분들께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옥천 출신이 아닌 젊은 사람들이 옥천에 와서 애쓰는 게 대견하다며 구독해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만약 청년이라는 정체성에만 쏠렸다면 저희와 다른 연령대인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해요."


<옥이네>에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마을의 긴 역사를 온몸에 쌓아온 어르신, 귀촌한 청년, 공동체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 농민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잡지의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8월호에는 지역 민요를 채록하는 노한나씨, 사비를 들여 옥천군 동이면의 면지(지역기록물)를 낸 황진상씨 등의 인터뷰가 담겼다.

지역의 크고 작은 문제와 고민거리도 매달 '특집' 섹션을 통해 비중 있게 다룬다. 박 편집장은 기억에 남는 특집 보도로 '기후위기', '길고양이', '대청호 수몰마을 기록', '지역 독립운동가 발굴', '옥천 보도연맹' 등을 꼽았다.

또 다른 차별성은 지역신문과는 다른 호흡이다. 30년 역사의 <옥천신문>이 주 단위로 지역의 사건·사고를 보도한다면, <옥이네>는 그보다 훨씬 길고 깊은 시선으로 문제의 본질을 건드린다.

"예전에 옥천군이 길고양이가 버려진 쓰레기봉투를 못 뜯게 하려고 에프킬라를 뿌렸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어요. <옥천신문>은 그런 사건을 비판적 시선으로 전하지만 주간지라는 특성상 그 사안에 좀더 들어갈 여유는 없는 편이에요.

반면에 <옥이네>는 실제로 지난 2월 '길고양이'라는 의제를 특집으로 다뤘어요. 동네 길고양이들을 사진 화보로 담으면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나 인터뷰했죠. 이후에도 뭔가 활동을 도모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취재하며 만났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길고양이를 지키기 위한 모임이 꾸려지기도 했어요. 만약 제가 신문기자였다면 그런 활동에 적극 참여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옥이네>는 지면 밖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옥이네>가 10년, 20년 지속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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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편집국 식구들 ⓒ 월간 옥이네

 
<옥이네>가 앞으로 10년, 20년 지속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박 편집장은 "중요한 건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독자의 확장도 중요하지만 "적은 수의 독자라도 잘 유지하려면 잡지를 잘 만드는 일이 가장 기본"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또한 "콘텐츠를 잘 만들어야 구성원의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성취와 성장을 도모하며 팀워크를 높이는 일이 최우선의 숙제이자 고민이기도 하다.

수익도 점차 나아져야 한다. 아직까지는 사업 초기 단계라 잡지와 문화사업만으로는 회사를 유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사보, 기관·단체 소식지 등 외주사업과 공모사업 등으로 비용을 보전해 왔는데, 이마저도 올해 초 코로나19 발병 이후로 업계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장기적인 과제는 매체의 다변화다. 종이매체라는 플랫폼을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잡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정말 종이매체가 망할 줄 알았어요.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요. 매체가 갈수록 다양해지긴 하겠지만 종이나 활자매체가 아예 망하진 않겠다 싶어요. 책이라는 물성, 글씨가 가지는 고유의 특성이 있어서 세대를 거쳐 소수의 문화로라도 이어질 것 같아요.

대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선 플랫폼에 한계를 둬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독자에게 널리 다가가려면 영상이든 온라인이든 입체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동시에 어떤 매체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내보일지가 숙제예요. 결국 이것도 콘텐츠의 문제죠. 이게 풀려야 10년이든 20년이든 지속될 수 있는 건강한 매체가 되지 않을까요."
#월간옥이네 #고래실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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