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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일 없이 세금먹는 자리 떠난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49회]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대체로 무엇을 하였는가"

등록 2020.08.25 18:16수정 2020.08.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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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1868-1953) ⓒ 독립기념관

 
이시영은 자신의 퇴진을 국민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 도리라고 믿어 사임서와는 별도로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국민에게 고함

단기 4282년(1948) 7월 20일 뜻밖에도 나를 초대 부통령으로 선임했을 때에 나는 그 적임이 아님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이것이 국민의 총의인 이상 내가 사퇴한다는 것은 도리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심사원려(沈思遠慮) 끝에 받지 아니치 못하였다는 것을 여기에 고백한다.

그 뒤 임연 3년 동안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대체로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부통령의 중임을 맡음으로써 국정이 얼마나 쇄신되었으며 국민은 얼마나 혜택을 입었던가.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 부통령의 임무라면 내가 취임한 지 3년 동안에 얼마만한 익찬(翼贊)의 성과를 빛내었던가. 하나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야말로 시위소찬(尸位素餐)에 지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 책임이 오로지 나 한 사람의 무위무능에 있었다는 것을 국민 앞에 또한 솔직히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양 사람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일을 하도록 해줌으로써 사람의 적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니, 만약에 그렇지 못할진대 부질없이 허위(虛位)에 앉아 영예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자리를 깨끗이 물러나가는 것이 떳떳하고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정부에 봉직하는 모든 공무원 된 사람으로서 상하 계급을 막론하고 다 그러려니와 특히 부통령이라는 나의 처지로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내 본래 무능한 중에도 모든 환경은 나로 하여금 더구나 무위케 만들어, 이 이상 고위에 앉아 국록만 축낸다는 것은 첫째로 국가에 불충한 것이 되고, 둘째로는 국민에게 참괴(慚愧) 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국가가 흥망간두(興亡竿頭)에 걸렸고 국민이 존몰단애(存沒斷崖)에 달려 위기간발(危機間髮)에 있건만, 이것을 광정(匡正)하고 홍구(弘救)할 충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별로 없음은 어쩐 까닭인가.

그러나 간혹 인재다운 인재가 있다 하되 양두구육(羊頭狗肉)인 가면 쓴 우국 위선자들의 도량(跳梁)으로 말미암아 초야의 은일(隱逸)이 비육(髀肉)의 탄식(嘆息)을 자아내고 있는 현상이니, 유지자(有志者)로서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뿐만 아니라 정부 수립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관의 지위에 앉은 인재로서 그 적재가 적소에 등용된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다가 탐관오리는 도비(都鄙)에 발호하여 국민의 신망을 표실(表失)케 하여 정부의 위신을 훼손하고 나아가서는 국시의 존엄을 모독하니, 이 어찌 신생 국민의 눈물겨운 일이 아니며 마음 아픈 일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을 그르다 하되 고칠 줄 모르며 나쁘다 하되 바로잡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의 시비를 논하던 그 사람조차 관위(官位)에 앉게 되면 또한 마찬가지로 탁수오류에 휩쓸려 들어가고 마니, 그가 참으로 애국자인지 나로서는 흑백과 옥석을 가릴 도리가 없다.

더구나 이렇듯 관기가 흐리고 민정이 어지러운 것을 목도하면서도 워낙 무위무능하지 아니치 못하게 된 나인지라 속수무책에 수수방관할 따름이니 내 어찌 그 책임을 통감 않을 것인가. 그러한 나인지라 나는 이번 결연코 대한민국 부통령의 직을 이에 사퇴함으로써 이 대통령에게 보좌의 직책을 다 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며, 아울러 국민들 앞에 과거 3년 동안 아무 업적과 공헌이 없음을 사(謝)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는 일개 포의(布衣)로 돌아가  국민과 함께 고락과 사생을 같이하려 한다.

그러나 내 아무리 노혼(老昏)한 몸이라 하지만 아직도 진충보국의 단심과 열성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는지라, 여생을 조국의 완전 통일과 영구 독립에 끝긑내 이바지할 것을 여기에 굳게 맹세한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은 앞으로 더욱 위국진층의 성의를 북돋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여 주시었으면 흔행(欣幸)일까 한다. (주석 7)


이승만 집권 시절 경무대(현 청와대) 비서였던 박용만의 기록이다.

이 박사의 지나친 원맨쉽은 하나의 예로 우리나라 역대 부통령을 다 악세사리적 존재로 밖에 인정치 않았으며 헌법상의 부통령을 부통령답게 대접한 일은 거의 없었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2대 김성수 선생, 3대 함태영 선생, 4대 장면 박사 등 어느 분을 막론하고 부통령 답게 일할 수 있게 찬스와 무대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해서 초대 부통령이던 이시영 선생과 2대 김성수 선생은 부통령직을 사퇴하고 말았었고 장면 부통령은 임기 중에 저격까지 당하는 불행을 맛보았었다.

이 박사가 보다 더 부통령과 가깝게 지내며 부통령의 '포지션'을 빛나게 해주고, 이 분들을 대접해서 의견을 널리 청취하는 아량과 성의를 베풀었던들 이 박사는 '인의장막'에 둘러 쌓여서 민심을 올바르게 보지 못한 불행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인의장막'으로 비참한 비극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경무대 비서로 있었을 때 종종 부통령 이시영선생이 경무대로 이 박사를 찾아 왔었다.

이시영 선생은 너무나 노령이시고 또 몸이 불편하여 부통령직을 감당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기도 했었지만…이 부통령이 경무대에 오신다 하면 비서들이 현관까지 마중나가서 부축을 양쪽에서 해서 모셨다.

이 박사께 이 부통령께서 오셨다고 말씀드리면 이 박사는 달갑지 않은 표정을 띠면서, "뭘 하려 또 오셨나? 별 이야기가 없어! 그분과 만나서 이야기해도 별 말이 없는거야!"하며 아주 못 마땅하게 여겼었다. (주석 8)


주석
7> 방창화, 앞의 책, 126~129쪽.
8> 박용만, 『경무대 비화』, 112~113쪽, 한국정경사, 1975.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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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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