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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밀려 대선후보에 나섰으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52회] 민주주의 발전과 이승만 견제를 위한 출마였으나

등록 2020.08.28 16:32수정 2020.08.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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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0. 24. 이시영 부통령이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만세 삼창을 선창하고 있다(왼쪽 프란체스카 이승만 대통령 부인). ⓒ NARA

 
민국당에서는 누구도 대통령 후보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탄 버스를 헌병대로 끌어가고, 멋대로 헌법을 바꿔버리는 전시체제에서 감히 이승만에게 도전해봐야 승산은 커녕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조봉암이 혁신정치를 표방하여 대선후보에 나섰다.

보수야당을 자처하는 민국당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자칫 제1야당의 지위를 혁신계에 넘겨주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민국당 수뇌부는 국민의 신망이 높은 이시영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한 것이다. "김창숙ㆍ이동화ㆍ김성수ㆍ신익희ㆍ장면 등 민국당과 재야 인사 8명이 성재를 추대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공동성명을 냈다." (주석 13)

이시영의 대통령후보 입후보 성명과 '정책대요'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후보 출마 성명

본인이 동지 여러분의 추천에 따라 대통령 선거 입후보에 당하여 한 마디 국내의 동포에게 고하고자 합니다.

이제 내가 목적으로 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하나입니다. 그것은 특권정치를 부인하고 민주정치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훌륭한 헌법이 있으나 이를 사용하면서 대개 입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민의를 빙자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국민은, 그 진심의 요구를 마음놓고 세울 수 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아니합니다.

사욕에 급급하고 권세만 부리는 사람들이 국리민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의 경제는 이들 특수 계급의 권리 회득의 대상이 되어 함부로 농단(壟斷)되고, 그 결과 산업은 나날이 위축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민 대중은 헐벗고 굶주리어 사생 기로에 헤매고 있으나 누구 하나 이것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또 개선할 수도 없을 만큼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특권정치요, 또 특권경제인 것입니다.

폐풍(弊風)을 시정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운영을 국민의 의사(意思) 그대로 반영할 수 있고 정부 실정상 책임을 물어 교정할 수 있는 책임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선결 문제입니다.

고성(古聖)이 말하기를, '본립이말치(本立而末治)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현하에 모든 폐단의 근원은 꼭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근원을 고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바로잡히어 우리는 잘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불행과 고통을 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만 한 점의 시정하는 것을 우리 민족 국가에 부하된 최대 임무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 이상이 실현되기만 하면 초야에 파묻혀 있는 유재유능(有才有能)한 인물이 울연(蔚然)히 적폐를 일소하고 국정을 쇄신하여,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이 강토에 가져오게 될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내가 미력을 돌보지 아니하고 감연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원컨대,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 협력에 의하여 우리 민족 국가의 비원의 일단이 이 기회에 이루어질 것을 절절(切切) 기원할 따름입니다. (주석 14)

정책대요

1. 초법(超法) 특권정치를 부인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진심의 요구를 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를 확립한다.

2. 독점경제를 타파하고 균등한 민주경제를 구현시켜 국민 대중을 공존 공영케 하고 위축된 산업을 재건한다.

3. 국민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정부 실정을 물을 수 있는 책임정치를 실현함으로써 국리민복의 번창을 기한다. (주석 15)


전쟁중에 치른 선거는 목불가관이었다. 이승만 후보 외에는 통상적인 선거운동을 하기 어려웠다. 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한국에 온 '유엔한국위원회'가 "등록마감일(7. 26)과 투표일(8.5)과의 사이가 짧아 선거운동을 잘 할 수 없었으며 재직자는 유리하고, 특히 벽지에서는 이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어느 후보자의 인격, 경력 또는 정강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주석 16) 고 유엔에 보고할 정도였다.

이승만 정권의 온갖 탄압에도 조봉암이 2위, 이시영이 근소한 차이지만 3위에 그치고 만 것은 더욱 충격이었다.

이승만 5,238,769표, 조봉암 797,504표, 이시영, 764,715표, 신흥우 219,696표였다. 당선보다는 민주주의 발전과 이승만 견제를 위한 출마였으나 참담한 결과는 이시영의 정치생명에 치명상이 되었다.


주석
13> 『동아일보』, 1952년 8월 3일치.
14> 박창화, 앞의 책, 137~138쪽.
15> 앞의 책, 138~139쪽.
16> 이기하, 『한국정당발달사』, 313쪽, 의회정치사, 1961.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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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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