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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 단일임금제 도입, 개인 아동센터 "이건 차별"

[인터뷰] 이수경 지역아동센터장의 분노 "수십년 헌신에 자괴감 느낀다"

등록 2020.08.21 14:32수정 2020.08.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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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헌신하던 선생님들은 왜 시위에 나섰을까? 서울의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은 지난 8월 12일 현재 9차의 기자회견을 통해 ‘법인개인 차별반대’를 외치고 있다. ⓒ 이수경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공공적, 보편적 사회복지 서비스가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래전 '탁아방'에서 시작된 민간영역의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부방, 그러니까 방과후 아이들의 돌봄과 교육 영역은 조금 더 더디게 진화해 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탁아방과 공부방 모두 맞벌이 혹은 저소득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거두었던(중산층 이상은 스스로 아이들을 돌봤다) 민간 영역의 자생적이고 선도적인 활동이 국가의 복지 서비스라는 영역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단일임금 체계서 배제된 개인 지역아동센터

도깨비방망이 지역아동센터(아래 도깨비)는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길에 위치해 있다. '핫한 문화'를 찾아 길게 줄을 서는 성수동의 여느 길과 달리, 재개발을 앞둔 이곳은 좁은 골목길에 단독주택과 연립, 아파트가 혼재된 '구길'이다. 도깨비의 이수경 센터장은 지난 8월 12일까지 아홉 차례 진행된 '시위'에 꼬박 참여해 왔다. 이전엔 보지 못했던 풍경. 서울시청 앞에서 멀리, 구로마을TV에서 보았던 이수경님을 직접 찾았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17일 임시공휴일, 그녀는 센터에 온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사 들고 왔다. 아이들은 동생의 밥까지 챙겨 집에 갈 것이다. 

- 오늘도 아이들이 여기에 왔군요?
"긴급돌봄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속됐으니까요. 아이가 가도 되느냐고 전화를 해왔어요. 저도 일이 많이 밀려 있어서 센터에 나오니까, 허락했죠. 혼자 심심하니까 연락을 해서 친구들이 함께 온 거죠."

- 일이 적지 않으시죠? 센터서 아이들 돌보고, 운영 정산보고도 하고, 민간 자원들 연계로 자원봉사 같은 것도 직접 꾸리셔야 하잖아요. 최근 시위 현장서 뵀습니다. 어떤 현안인지요. 
"일이 더 많아졌죠. (웃음) 시위(집회)는 허가가 안 되니까 기자회견 형식으로 해오고 있어요. 오는 19일로 10차가 돼요. '서울시 지역아동센터의 차별 없는 단일임금 촉구'가 저희 요구예요."

- 단일임금?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복지시설이고, 당연히 국가의 복지체계 안에 있죠. 이곳 종사자도 일반사회복지사와 같은 단일임금 체계를 실현하자는 요구는 오래된 거예요. 거기서 배제돼 있었거든요. 저희는 호봉제 적용이 안 돼요. 20여 년 넘게 이 일에 종사한 저나 이제 갓 복지사를 시작한 이나 차이가 없어요. 문제는 이런 상황에선 뜻있는 젊은 복지사들이 여기 오지를 못 해요. 다른 곳에서 일하면 (호봉제로) 점차 급여도 높아지고, 가족수당 직책 수당 시간외수당 같은 혜택을 모두 받을 수 있잖아요. 여기는 점차 기피처, 말하자면 비정규직화가 되는 거죠." 

- 차별이 발생하는군요.
"2004년, 지역의 자생적인 민간공부방들이 제도화된 아동복지시설인 지역아동센터로 이행했어요. 그때 고민이 있었어요. 법제화되면 보조금을 받게 되지만, 행정업무도 많아질 것이고, 고유의 자율성이 없어지잖아요. 저희가 그 요구를 받아들인 건,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혜택을 줄 수 있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우리도 보조금은 사회복지 정보시스템 등록을 해서 관리해요. 매년 보급되는 보건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 운영지침도 꼼꼼하게 따르죠. 심지어 1년에 한 번은 타지역 공무원들이 교차로 현장 심사도 가져요. 법인시설과 개인 시설 지역아동센터가 하는 일도 다르지 않고. 종사자의 자격 기준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 7월 1일자로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차별적 단일임금제를 도입한 거예요. 법인은 적용, 개인은 비적용. 주체의 차이로 종사자 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건 분명한 차별이죠."


아동복지시설 정식 편입됐지만, 비정규직처럼 대우 
 

성수동 구길의 터줏대감, 도깨비방망이 지역아동센터와 그 센터장 이수경. 지역아동센터는 1980년대 후반, 노동통일 운동만으로는 다 포괄할 수 없던 사회문화 운동, 일상의 복지를 노동야학, 공부방, 작은도서관의 역사에 뿌리가 닿아있다. ⓒ 원동업


2017년 10월에도 전국의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은 기획재정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검은 옷 상의를 입고 마스크를 꼈다. 어두운 교육 현실과 종사자들의 고통을 표현한 퍼포먼스. 당시 전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는 "2015년 복지부 결산 일반회계 지출 기준으로 노인복지는 34%, 보육 20%, 장애인 7.1%를 차지하는 데 아동복지 예산은 고작 0.8%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투표권이 있고 조직화된 노인, 부모, 장애인과 달리 '아동복지'를 전하는 목소리는 잘 전달되지 못하는 것일까.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아동센터의 요구에 국가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2020년 현재 아동 19인 이하는 488만 원, 20인~29인 사이는 516만 원, 30인 이상은 매월 719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요. 이 예산으로 센터장과 생활복지사 임금(19인 이하와 20인~29인 이하는 2인, 30인 이상은 3인)과 아동프로그램비, 공공요금, 기타 운영경비를 모두 감당하죠. 이 중 10%는 아이들 프로그램 비용으로만 쓰게 돼 있고요. 저희가 2018년에 운영비 현실화를 요구했을 때, 정부 대답은 '아이들에게 가는 이 직접사업비 10%를 5%로 줄여 해결하라'는 거였어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 민망한 상황이었겠군요.
"말로 다 하기 어렵죠. 박원순 시장님이 당선되시면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의 열악한 인건비 현실을 보시고 전국 최초로 '지역아동센터 처우 개선비'를 만드셔서 지원하시기 시작했어요. 약속했던 것도 있어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도 포함해서 '사회복지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과 분야에 상관없이 교사나 공무원처럼 하나의 임금체계 즉 단일임금체계를 정책목표로 삼아 2021년까지 완성한다'는 내용이에요. 비록 늦었지만, 저희는 그걸 감사하게 환영했어요. 그런데 테스크포스 운영 후, 시행 직전에 운영 주체를 구분해 단일임금을 적용한다고 발표한 거죠. 후자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라는 건데, 유예기간을 주지도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대안인지 검토된 적도 없거든요. 

인건비도 서울시 복지시설 가이드라인(서울시엔 소규모 복지시설의 급수기준이 정해져 있다)과는 현격히 하향돼 조정됐죠. 현장과도 의논이 없었고, 어떤 법적 근거나 명분도 저희는 찾지 못했어요. 우리들이 1300여 명의 반대탄원서를 내고, 벌써 연인원 1800여 명이나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데, 더구나 그걸 지난 7월 1일부터는 강행하고 있고요."

이수경 센터장은 일어나 여러 개의 파일북을 꺼내왔다. 프로그램일지와 자원봉사자 관리대장, 매일의 운영일지… 소규모 복지시설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양의 행정업무로 보였다. 잠금장치가 있는 캐비넷에는 아동들의 개인 파일도 있다. 아이가 센터를 이용하면서 받은 다양한 서비스, 보호, 교육, 문화, 정서, 지역사회연계 등 아이와 관련된 모든 서류까지. 이곳은 아이의 두 번째 집, 두 번째 학교가 될 만한 곳이었다. 그 자격으로나 조건으로나.

키움센터 자랑 대신, 실질적 아동복지 성찰해야
 

아마도 지역아동센터 곳곳마다 붙어있을 아동권리헌장.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고 철학과 진득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 원동업

 
- 센터가 어떤 곳이길 바라세요?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이세요? 교양있고 잘 교육받은 중산층 시민이 될 수도 있고, 실용적인 직업 교육으로 제 앞가림을 잘해나가는 길도 있잖아요. 
"어릴 적, 나는 비교적 행복하게 자랐어요. 시골서 자라 철마다 바뀌는 자연환경 안에서 맘껏 뛰어놀았거든요. 동네 친구들, 언니, 오빠, 동생들과요. 부모님이 좀 투닥투닥 하시긴 했어도, 각기 나름의 방법대로 저를 사랑해 주셨어요. 아버진 우리 다섯 남매에게 전부 보르네오 책상을 사 주셨죠. 피아노나 발레도 배웠고. 어머니도 사이다병에 개나리를 담아 제 책상에 올려주시곤 했어요. 예쁜 마음 갖고 살라고 오남매 중 맏딸인 저에게 공부가 다가 아니라 살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도 하셨죠. 그런 소박한 행복을 아이들에게 경험 시켜 주고 싶어요. 센터에 책을 많은 건, 다양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에게 더 넓은,  다른 세상을 보게 하고 싶어서고."

서울시는 최근 우리 동네 키움 센터를 구마다 만들었다. 만 6세~12세 돌봄이 필요한 초등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정책의 화룡점정. 그런데 잠깐? 이미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초등학교만큼 완비된 자연환경과 시설을 따라갈 수는 있나? 취약계층의 아이들에게 오랜 기간 돌봄과 교육 서비스를 해온 이곳 지역아동센터의 '전문성'과 '깊이'도 쉽게 복제될 수는 없지 않나. 자기 이름을 단 치적이 정치가들에겐 더 필요했던 걸까? 기자회견문에 새겨진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절망과 분노를 보면 이런 새 정책은 무색해진다. 

"십수 년부터 수십 년간 해온 1세대 지역아동센터에 보내지는 국가 차원의 차별정책은 자괴감과 모멸감을 안겨주고 있다. 전에 없던 현장의 분열, 운영 주체 간의 편 가르기를 조장하고 있다." (7월 29일 열린 7차 서울시 지역아동센터 차별없는 단일임금 촉구 기자회견문 중)

키움센터가 아동복지의 빈 부분을 온전하게 채우는 복지정책일 수 있으려면, 그 철학과 우선순위는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현장에서 그 진정성과 진득함이 증명되어야 한다. 오래전,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아이들을 거두었던 오래된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을 무시하고, 그 영역에 새로 진입한 젊은 복지사들의 합당하고 소박한 요구조차 뭉개고 드는 불통의 자세는 실망스럽다. 2020년 8월 19일 현재,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라는 리더를 잃었다. 서울시와 국가는 원칙과 방향조차 잃어버린 행정조직이 되고 말 것인가? 이 문제 해결의 귀결은 곧 이후 복지정책의 신뢰도와 방향성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지역신문인 성동신문에 이 분의 인터뷰를 싣고자 합니다.
#지역아동센터 #탁아방 공부방 #도깨비방망이지역아동센터 #법인과 개인 분리 #단일임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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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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