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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서울신문 '미투 반박 보도' 논란, 언론학자들 엇갈린 시선

"미투 보도, 성인지 감수성 높여야" Vs. "기자 징계는 자기검열 불러"

등록 2020.08.21 17:31수정 2020.08.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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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기자 징계에 반대하는 언론인 학자 시민들이 12일 오전 경향신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 기자는 지난 7월 29일 경향신문에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를 올렸지만 '2차 가해'라는 지적을 받고 4시간 만에 삭제됐다. 이들은 이날 2000여 명이 참여한 강진구 기자 징계 반대 청원서를 경향신문에 제출했다. ⓒ 김시연


이른바 '미투 반박 보도'에 따른 <경향신문> <서울신문> 내부 갈등이 마무리 국면이다. 결과를 떠나 해당 언론사 구성원들은 물론, 관련 사건 당사자들에게도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이번 사건이 남긴 의미를 언론학자들과 함께 짚어봤다.

지난 7월 29일 자신이 쓴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 삭제 조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는 지난 14일 그동안 SNS 활동 등이 문제가 돼 '정직 1개월' 중징계를 받고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8월 6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를 비판하는 칼럼을 쓴 뒤 편집국 기자들에게 비판받았던 곽병찬 <서울신문> 논설고문은 오는 24일 칼럼을 마지막으로 사임할 예정이다.

두 사건 모두 요즘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미투 사건'과 관련돼 있고, 언론사 편집 시스템 문제와 더불어 '피해자 보호'와 '표현의 자유'라는 저널리즘 가치관 충돌이 드러났다. <경향>은 보도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외부로 확산된 반면, <서울>은 당사자가 침묵하면서 상대적으로 내부 논쟁에 머물렀다.

[피해자 보호] "권한 있는 남성 필진들, 성인지 감수성 높여야"

두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학자들 시각도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언론․표현의 자유 가운데 어디에 더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엇갈린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21일 60대인 곽병찬 고문이 쓴 칼럼에 대해 "그 연령대 우리 남성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잘못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제 교수는 이날 서울신문 사안에 국한해서 얘기했다.)

1990년대 남성 중심 문화가 강했던 언론계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제 교수는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우리 사회구조에서 여성들이 피해를 당하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더 당하는 일이 누적돼 예민한데도 이런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관점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기자들도 지난 13일 사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합의에 배치되는 주장이나 기사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출고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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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기자들이 지난 8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있는 편집국 사무실에서 곽병찬 논설고문 칼럼 논란에 대한 기자총회를 열고 있다. ⓒ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


제 교수는 "젊은 기자들이나 여성 기자들, 후배들이 봤을 때 독자들이 서울신문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칼럼이 나간 것에 동의하지 못하고 지금 시점에서 나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사내 구성원으로서 문제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기득권, 남성의 시각에서 의심하고 시비 거는 듯한 글이 나간 것에 대해 내부에서 문제 제기하고 토론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의사 결정이 내려지는 건 건강한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제 교수는 "우리 신문 방송 주요 필진들 가운데 나이 많은 남성들이 많은데,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누적적으로 경험하고 억울해하고 화난 부분에 대한 공감 없이 얘기하는 게 폭력적일 수 있고, 피해자와 의식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많은 사람을 굉장히 화나게 할 수 있는 글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면서 "권한 있는 남성 필진들이 (성폭력 사건에) 더 예민해지고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자유] "칼럼 막고 기자 징계하면 '자기 검열' 우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기자 징계나 논설고문 사임까지 이어진 걸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날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기자나 칼럼니스트들이 본인의 생각을 적는 것 자체를 막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그 글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거나 문제 되면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자기들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하거나 주장하는 것 자체를 막거나 징계하면 기자들이 자기 검열할 수밖에 없어 주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도 지난 7일 사내 입장문에서 "박원순 사건 취재로 수고하는 사회부 기자들 입장에서야, 그의 주장이 과하고 2차 가해라고 보일 부분이 더 많겠지만, 곽 고문의 주장에 얼굴이 찡그려진다고 해도 여론 시장에서 더 논쟁하고 논의해볼 소재의 칼럼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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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8월 6일자에 실린 곽병찬 칼럼.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내부 비판이 제기되면서 온라인판에는 실리지 못했다. ⓒ 서울신문

 

문 실장은 "다양한 의견들이 공론장에서 '위축 효과'가 없는 채로 논의돼야 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있다"면서 "그 경계가 모호하고 아슬아슬할수록 그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넓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사이에 특정한 칼럼 등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도 불가피하다고 본다"면서, 자사 칼럼니스트들의 '자기검열'에 따른 위축 효과를 우려했다.

최 교수도 "상식적인 기준으로 도저히 받아들 수 없는 명예훼손이나 모욕 같은 것은 언론의 자유를 벗어나는 것이니까 당연히 제한돼야 하지만,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와 자유로운 여론이 형성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언론은 사회 여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는 장치인데, 어느 한쪽 의견을 임의로 막아버리면 건전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는 지난 19일 재심 청구서에서 "언론 노동자의 공정보도와 사실보도를 위한 노력을 침해하는 사용자의 여하한 지시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가질 수 없고 언론 노동자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저항할 책무가 있다"라면서 "언론 노동자의 공정보도를 침해하는 압력은 외부의 정치·경제적 세력뿐 아니라 언론사 내부의 부당한 압력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경향-서울신문 사태 관련 기사]

[7월 29일] <경향>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 삭제... "2차 가해 우려" http://omn.kr/1ogln
[8월 11일] 경향·서울, '미투 반박 보도' 후폭풍... 2차 가해냐, 표현의 자유냐 http://omn.kr/1olxl
[8월 12일] 경향 '박재동 미투 반박 보도' 징계 논의... 피해자쪽 법적 대응 경고 http://omn.kr/1ol8y
[8월 14일] 서울신문 기자들, '김재련 비판' 곽병찬 고문 사퇴 요구 http://omn.kr/1olxl
[8월 14일] 경향, '박재동 미투 반박 보도' 기자 '정직1개월' 중징계 http://omn.kr/1om4m
[8월 20일] 곽병찬 서울신문 논설고문, '김재련 비판 칼럼' 직후 사의http://omn.kr/1oo07
 
#미투반박보도 #서울신문 #경향신문 #곽병찬 #강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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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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