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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을..." 코로나19 시대 여행가이드의 삶

[가이드 9명 심층인터뷰 ①] 한국 돌아와 막노동이라도 하면 다행, 하루 한 끼 다반사

등록 2020.08.27 12:41수정 2020.08.2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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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이 막혀버린 코로나19 시대에 우리의 해외여행을 도왔던 가이드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가이드 4명, 현지에 머물고 있는 가이드 5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행업 최일선에서 직격탄을 맞은, 안그래도 갑을병정 중 '정'이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전한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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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여행가이드로 활동한 정주애씨가 보내 온 코로나19 이후 산 마르코 광장의 모습. 코로나19 이전 북적이던 모습과 대비된다. ⓒ 정주애


박광(53, 남)씨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일하던 여행가이드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이 완전히 끊긴 2월 말 한국에 돌아와 지금은 평택의 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

연고지는 부산이지만 귀국 후 그곳에선 일을 구할 수 없었다. 아내, 대학생 딸 3명과 떨어져 용역업체에 들어간 박씨는 "50대 나이에 그나마 일을 구한 것에 감사"하며 숙소-건설현장 왕복 3시간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다.

그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점심시간 2시간)하며 최저시급 8590원에 맞춰 월급을 받는다. 퇴근 후엔 7명이 함께 사는 32평 숙소로 이동해 잠을 청하는데, 7명이 각각 한 달에 15만 원씩 내야 그나마 그곳에서라도 생활할 수 있다.

"2016년부터 가이드 일을 했습니다. 처음엔 노하우가 없어서 (항공료 수준의 대형 여행사 저가) 패키지 손님을 받으면 항상 마이너스였어요. 그러다 연차가 좀 쌓이니 이제 좀 매출을 올리는 방법에 눈을 떴죠. 딱 그 시점에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그동안 모아뒀던 비자금으로 생계는 유지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카드론(대출)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여기 건설현장에 하노이에서 가이드로 일했던 사람만 10명쯤 와 있습니다. 계속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 가이드 직업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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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트빌리시에 거주하며 코카서스 3국(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여행가이드로 활동한 박철호씨가 보내 온 트빌리시 시내의 모습. 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창일 때 방역당국이 도로를 소독하고 있다. ⓒ 박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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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가이드로 일하며 현재 캄보디아시엠립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박우석씨가 코로나19 이전 여행객들과 찍은 사진. ⓒ 박우석

 
박씨와 같은 사례는 매우 흔하다. 일자리를 구한 박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베트남 현지에서 버티다 8월 중순 입국한 이상원(54, 남)씨는 현재 2주 자가격리 중이다. 2005년부터 가이드 일을 한 그는 7개월 동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해 "졸지에 이산가족 신세"가 됐다.

"제가 원래 태국에서 가이드 생활을 했습니다. 근데 노조 활동을 하다가 (여행사로부터) 더 이상 일을 받지 못해 베트남으로 이동했어요. 태국에서 관광업을 하던 아내와 학교를 다니던 아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죠. 지난 1월 베트남 명절 때 태국에 가서 가족을 만났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코로나19 확산 때) 태국과 베트남 사이의 국경이 차단됐거든요.

한 명이라도 돈을 벌어야 해서 제가 우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가이드끼리 서로 일자리 알아봐주는 단톡방도 생겼어요. 평택에 건설현장이 여럿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 가이드만 약 200명이 모여 있다고 하더라고요. 암튼 자가격리 동안 아르바이트든 노가다든 일을 구하고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태국에 있으면서 사스, 메르스, 쓰나미, 민주화투쟁으로 인한 공항 폐쇄 등도 다 버텼는데 이번엔 끝이 보이지 않으니 공포감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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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여행가이드로 활동하던 송문규씨가 여행객으로부터 받은 손편지. ⓒ 송문규


대만에서 가이드 일을 하던 송문규(42, 남)씨는 지난 2019년 6월 출산을 위해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출산 직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일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막 태어난 아이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송씨는 장모님이 운영하는 중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식당 휴식시간 중인 오후 3시께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식당도 코로나19 때문에 타격을 입어 예전 같지 않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 장모님에 기대서 생활비라도 벌어야죠. 살면서 제일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저는 주로 한국에서 중국 손님을 받아 활동하던 가이드였어요. 근데 사드(THAAD) 문제가 터지며 손님이 끊겼고 가이드 생활 초창기에 있었던 대만으로 넘어갔었죠. 이 일이 적성에 맞아 1999년 처음 여행업에 뛰어들었고,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손님분들을 공항에서 떠나보내면 희열을 느꼈었습니다. 손님이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편지를 남겨주실 때면 저도 정말 행복했었죠. 지금은 막막합니다. 기약 없는 끝을 기다리며 그저 '잘 버티자'라고 다짐하고 있어요."

태국 파타야에 있다가 6월 한국으로 돌아온 최병욱(47, 남)씨도 "트래블 버블(2주 자가격리를 없애는 등 입국 제한 조치 완화 정책)에 기대를 걸었지만 가능성이 없어 입국했다"며 "계속 놀 수만은 없어 야간에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이드 일에 강한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하늘길만 열린다면 하루 빨리 가이드 일에 복귀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2월부터 수입 제로... 그냥 숨만 쉬고 있다"

해외, 특히 동남아 지역에 머물고 있는 가이드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이상원씨는 "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도 생겼다"며 씁쓸한 마음을 내비쳤다.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가이드로 일하며 현재 캄보디아시엠립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박우석(55, 남)씨는 "특히 혼자 사는 가이드들에겐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나 카톡을 넣고 있다"라고 말했다.

"2월부터 수입이 아예 제로(0)입니다.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거죠. 동남아 가이드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가는 추세인데 한국에 연고가 없으면서 혼자 사는 분들은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에 벌어뒀던 돈으로 생활하는 분들도 있지만 하루에 한 끼로 때우는 분들도 많아요. 혼자 계시는 분들에겐 한인회 사무실에 나오라고 전화도 자주 해요. 우울감, 소외감 때문에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서요.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비행기 값이 없어서 못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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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가이드로 일하며 현재 캄보디아시엠립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박우석씨는 코로나19 이후 한인회 차원에서 재외동포 및 그 가족을 지원하는 '함께라면'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 박우석

 
그나마 현지 지원 정책이 있는 미국·유럽 쪽 가이드들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일이 전혀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미국 뉴욕의 가이드인 윤상진(58, 남)씨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여행업이 중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때도 뉴욕 지역에 한정해서였다"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뉴욕 뉴저지의 경우 실내 식사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식당 서빙 자리도 없는 실정입니다. 실내 식사가 안 되니 설사 여행객이 온다고 해도 밥 한 끼 제대로 먹기 힘들죠. 식당 대부분이 주차장 한편에 햇빛가림용 텐트를 쳐놓고 영업하고 있는데 잠시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가이드뿐만 아니라 한인사회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맨해튼에 작은 가게 하나를 내더라도 임대료로 몇 만 불씩 나가는데 지금의 경우 인건비는 둘째 치고 임대료도 못 건지니 철수하는 게 답이겠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정주애(40대, 여)씨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의 영향을 받는 게 여행업"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번처럼 전 세계 국경이 막히거나 비행기가 안 뜨는 경우는 없었다. 일이 줄어든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전무했던 적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이 8월이잖아요. 이 지역의 경우 7, 8월에 제일 바쁘거든요. 지금은 강제 휴가예요. 남들 휴가 때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이드인데 지금은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저 어색할 뿐입니다. 일이 없으니 그동안 벌었던 돈을 까먹고 있어요. 그나마 이탈리아 정부에서 법적으로 거주에 문제가 없는 이들에게 최저 생활을 유지할 만한 지원을 해줬죠. 하지만 그것도 5월까지였습니다. 돌파구를 찾아야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앞에서 딱히 답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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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여행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윤상진씨가 코로나19 이후 현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내왔다. 타임스퀘어 광장에 6피트(약 1m 80cm) 거리두기를 권고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윤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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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트빌리시에 거주하며 코카서스 3국(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여행가이드로 활동한 박철호씨가 코로나19 이전 여행객들과 찍은 사진. ⓒ 박철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심명호(51)씨는 "31살에 스페인에 왔는데 성인돼서 온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언어적 제약이 있다. 때문에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답답하지만 주로 집에만 있어요. 어디든 나가면 돈을 써야 하니까요. 아마 내년에도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깊은 터널에 빠진 기분입니다. 올해까진 버텨볼 생각인데 최악의 경우 한국에 가서 노가다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있어요. 근데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니 서운하고 힘들죠. 이렇게 인터뷰하며 오랜만에 말을 많이 하니 기분은 좋네요. 직업병이에요."

조지아 트빌리시에 살며 주로 코카서스 3국(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광을 맡았던 박철호(58, 남)씨도 "한국에 들어가 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비행기도 거의 없고 비용도 엄청 비싼 상황"이라며 "평상시 왕복 120만 원이었던 비행기 값이 지금은 편도 270만 원 수준이다. 그나마 취소되는 일도 다반사다"라고 설명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이 가장 암담합니다. 그간 벌어놓은 걸로 겨우 먹고 사는 중인데 이래저래 고민이 많죠. 사업을 하려고 해도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경제가 안 돌아가는 와중에 사업마저 잘 안 되면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돈도 날려버리게 되니까요. 2013년부터 이 지역이 방송을 좀 타면서 대형 여행사도 들어오고 가이드도 스무 명 넘게 있었거든요. 지금은 저 포함 두세 명 남아 있어요."

한국인 출국 건수 98%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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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의 한국인 출국자 통계. ⓒ 오마이뉴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출국 건수는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이후인 2010~2019년 꾸준히 증가해왔다. 2010년 1200만 건 수준이었던 출국 건수가 2019년 2800만 건을 넘었던 만큼 여행업계도 성장세였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이후 수치는 바닥을 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 6월 출국 건수는 약 4만 8000건으로, 2019년 6월 약 240만 건에 비해 98% 가량 하락했다. 그나마도 약 2만 7000건은 승무원이고 나머지 중에서도 관광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통계 수치만이 아니다. 정부가 항공사, 대형 여행사 등 여행업계를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최일선에 있던 가이드는 이러한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 상당수 여행객이 '가이드는 여행사 소속'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한인 가이드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특히 '저가 패키지 상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행업계의 기형적 구조는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가이드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 다음 기사 : [가이드 9명 심층인터뷰 ②] '코로나 직격탄' 가이드, 정부의 여행업 지원에도 왜 소외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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