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날 수 있는 티베트, 스피티 밸리로 향하다

[스물셋의 인도] 비포장도로로 100km를 달린 끝에 만난 티베트

등록 2020.08.27 10:01수정 2020.08.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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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길이 마주한 중간거점 그램푸(Gramphu)에 자리한 간이 휴게소 ⓒ 이원재

그램푸(Gramphu)로 가는 버스는 오전 4시에 있었다. 각각 라다크와 마날리, 스피티 밸리로 향하는 세 갈래 길이 만나는 중간거점, 길목에 자리한 만큼 소규모의 마을과 휴게소가 여럿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다바(Dhab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간이 휴게소만 조그맣게 하나 있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문이라도 열려있을까 했던 걱정과 달리 안에는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추측이지만, 수도 델리와 같은 도심지에서 스피티 밸리나 라다크로 오가는 트럭 기사들의 숙박시설로도 이용되는 게 아닐까. 인도의 국민차와도 같은 밀크티 짜이 한잔을 마시니 새벽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야 했던 긴장은 사라지고 금세 노곤함만이 남았다.


날이 밝고 아침이 되자 작은 휴게소엔 스피티 밸리의 중심도시 카자(Kaza)로 향하는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전에 머물렀던 도시에서 몇 번 봤던 대만에서 온 여행자와 슬로베니아에서 온 여행자, 그 외에도 같은 길로 향하는 인도인들도 몇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 쿤줌 패스에 정차한 버스 ⓒ 이원재

버스는 본래 오기로 한 시간보다 훨씬 지체된 오전 9시에나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가 출발한 마날리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이 워낙에 험한 데다 오가는 차들도 많다 보니, 어쩌면 버스가 늦게 오는 건 당연한 일. 사실 언제라도 버스가 오긴 온다는 걸 감사해야 하는 게 인도여행의 백미긴 하다.

하지만 설령 버스가 온다고 해서 탈 수 있긴 한 걸까. 이전에 라다크에서 내려올 때에는 티켓을 예약하기 위해 하루 전에 찾아가 기다리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었는데, 티켓이 없는 데다 예약도 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과연 카자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버스는 예상대로 현지인과 여행자, 이들의 커다란 배낭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지만, 다행히 앉을 자리는 남아 있었다. 물론 이마저도 5명이 앉아갈 맨 뒷자리에 7명이 앉는 등 사람을 욱여넣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못해도 저녁에나 도착할 목적지까지 최소한 앉아서는 갈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카자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들렀던 작은 마을 ⓒ 이원재

스피티 밸리의 중심도시인 카자에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130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9시간이나 걸려 도착하다니. 앞서 카자로 가는 길은 정말이지 최악이었고, 편도 1차선 비포장도로에 협곡을 타고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낡은 버스는 쉴새 없이 덜컹거렸다.

한 시간에 10km도 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만 갔고, 그나마 개울을 건너다 타이어가 빠져버린 버스가 몇 번의 시도 끝에 탈출하는 일도 있어, 안도감에 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목적지가 가까이 있음에도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 길,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더니 이번엔 예약해놓은 숙소가 없어서 시내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다.

일단 불교사원에 가면 잠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큰 오판이었던 것. 불교사원에 가면 숙박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사원을 찾아갔지만, 단체 손님이 들어와 자리가 없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었다. 다행히 숙소 여러 곳을 돌며 발품을 판 끝에 제법 저렴한 가격대의 숙소를 구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나는 이틀 정도 머물기로 했다.
 

스피티 밸리의 중심도시, 카자(Kaza) ⓒ 이원재

티베트계 사람들이 모여 살며, 마을 어디에나 티베트 불교사원이 자리한 스피티 밸리. 이전에 갔던 라다크와 같이 티베트풍 건물양식이 주를 이뤘지만, 라다크와는 다르게 타민족이나 힌두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타종교의 비중이 적어 티베트의 색채가 더 강했다.


거기에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아 숙소나 식당, 카페를 포함해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오직 한 곳뿐이었다. 그나마도 메시지를 하나 보내는 데 10분 가까이 걸리는 수준이었고, 콜카타나 델리 같은 인도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던 유심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오직 이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통신사가 따로 있을 정도니 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오지, 티베트의 이미지와 좀 더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다음날부터는 카자를 벗어나 당카르나 키베르와 같은 주변 마을들을 돌아볼 계획이다. 그곳에도 과연 티베트의 색채가 남아 있을까. 중국 정부에 의해 가로막혀 지금은 갈 수 없는 티베트를 멀리 타국에서나마 가까이하고픈 바람이다.
#인도여행 #스피티밸리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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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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