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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부심' 있는 콩국수집, 지금 지나면 1년 기다립니다

메밀면과 부추면으로 차별화... 장마와 태풍으로 죽은 입맛 살려주네요

등록 2020.08.31 08:40수정 2021.04.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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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 pixabay


콩은 별명 부자다. '완전식품' 또는 '슈퍼 푸드'는 학계가 붙여줬다. 시장에선 '밭에서 나는 소고기', '단백질의 보고' 따위로 부른다. 주목하는 영양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행을 원활히 해준다는 의미로 '혈관 청소부'라 부르는 이도 있다. 이소플라본이라는 영양소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닮았다 해서 '식물성 에스트로겐'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어느 것이든 한 알의 콩에 담긴 영양소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표현한다.

콩의 풍부한 영양소는 강한 생명력에서 온다. 콩은 어디서든 잘 자란다. 심지어 산간오지나 척박한 자갈밭에서도 살아남는다. 더위나 추위도 잘 견딘다. 병충해에도 강하다. 심어 놓으면 별다른 거름이나 농약을 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큰다. 수확한 후에도 잘 말려두면 오래도록 보존이 가능하다. 땅 넓이에 비해 수확량이 적어 그렇지 농사 중 콩 농사가 제일 쉽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콩의 효능에 주목했다. 평소 육류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소중한 영양공급원이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알았다. 쌀과 함께 밥을 하면 영양도 채우고 쌀도 아낄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콩을 먹는 방법도 다양하게 고안했다. 한 알씩 먹는 게 아니라 대용량 섭취방법을 개발해 냈다. 메주나 두부가 대표적이다.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발효시켜 된장이나 간장을 담갔다. 그 자체로도 영양이 풍부한 콩을 발효까지 시켰으니 대단히 훌륭한 영양식품이 아닐 수 없다.

여름철 즐겨 먹는 콩국도 그 중 하나다. 만드는 방법은 두부와 거의 비슷하다. 먼저 콩을 잘 삶는다. 황태도 좋고 서리태도 괜찮다. 삶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너무 익히면 메주 냄새가 나고, 덜 익으면 비리다. 적당히 삶아진 콩을 맷돌에 곱게 갈아낸다. 갈린 콩물을 다시 고운 면포로 거른다. 그렇게 액체 상태로 만든 콩물을 그냥 마시기도 하고, 국수를 말아먹기도 한다. 콩국수다. 지역에 따라 소금이나 설탕으로 간을 해 먹는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뚝딱 말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콩국수 한 그릇에는 그렇게 세심한 정성이 담겨 있다. 콩을 깨끗이 씻고, 최적의 상태로 익히고, 멧돌로 곱게 갈고 거르는 과정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먹는 사람이야 단숨에 들이키지만,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 땀을 흘려야 한다. 콩의 훌륭한 영양가에 정성까지 더 했으니 어느 보양식품 못지않다. 뜨거운 여름 한 철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쉬운 건 그토록 맛나고 영양도 만점인 콩국수를 여름에만 먹을 수 있다는 거다. 여름철 단골메뉴인 냉면이나 삼계탕은 이미 사철음식이 됐는데, 유독 콩국수만 그렇다. 1년 내내 하는 전문점이 따로 없다. 대개 칼국수 집이나 분식점 등에서 여름 한정메뉴로 콩국수를 낸다.

오늘 소개할 인천의 콩국수 맛 집도 그렇다. 각각 우동과 칼국수 전문점이다. 그렇게 전공은 따로 있지만, 콩국수에도 일가견이 있다. 여름철 매상에 큰 몫을 한다. 줄 서야 먹는다.


거친 남자의 풍미, '오목골' 메밀 콩국수
 

메밀콩국수 오목골 식당에서 내는 메밀콩국수. 우동면을 그대로 쓴다. 걸쭉한 콩국물에 두툼한 면에서는 거친 마초의 풍미가 느껴진다. ⓒ 이상구


오목식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한 우동집이다. 면을 메밀로 뽑아 인기를 끌었다.  95년 옛 인천대 앞에 문을 열었다. 학생들은 물론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택시기사며 어르신 손님들로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들고 먹는 방식은 똑같다. 마지막에 고명처럼 얹어 먹는 튀김가루가 백미다. 메밀 우동의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는 김밥도 인기가 있다. 특히 김밥 겉을 계란 지단으로 감싼 계란말이 김밥이 인기다. 그 우동 면에 콩국을 부어 내면 메밀콩국수가 된다.

우동면이니 일단 두툼하다. 씹는 맛도 그렇다.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입안이 꽉 차는 포만감이 강렬하다. 씹을 때마다 메밀 향이 은은하다. 얇은 밀가루 소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경험이다. 콩국은 정말 진하다. 되직하기가 마치 죽 같다. 숟가락으로 떠서 떨어뜨리면 한 덩이씩 툭툭 뭉쳐서 떨어진다. 두툼한 면과 걸쭉한 콩물에선 거친 남자의 풍미마저 느껴진다. 고소하기보다는 구수한 맛이다. 투박하지만 정겹다.

메밀 면 콩국수는 말하자면 전주식이다. 그 지역에서는 이미 일반화됐다고 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는 흔치 않다. 사람들이 밀국수에 길들여져 있어서다. 그런 내막이야 이 집 사장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메뉴에 밀면 콩국수를 따로 넣었다. 손님들은 익숙함이냐 새로운 맛이냐 사이에서 종종 갈등한다. 메밀을 선택하는 손님이 조금 더 많다고 한다.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셈이다. 하기야 메밀 전문점에 왔으니 메밀을 찾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이 집의 미덕은 또 있다. 반찬이다. 손님이 워낙 많다 보니 셀프 시스템을 들였다. 손님들이 직접 먹을 만큼 가져다 먹는다. 배추김치와 단무지 무침 두 가지다. 배추김치는 미리 담가 놓은 듯 잘 익었다. 갖은 양념에 잘 버무린 단무지도 새콤달콤하게 입맛을 돋운다. 이 역시 약간의 발효기간을 거친 듯 단무지 특유의 약 냄새가 전혀 없다. 둘 다 짜지도 않다. 그걸 마음껏 갖다 먹을 수 있다. 나 같은 김치 중독자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95년 허름한 포장마차로 처음 시작했어요. 보시면 알지만 처음 학생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없었어요. 그야말로 박리다매죠. 인천대가 송도로 옮기고 그 일대가 재개발 돼서 이리로 옮겼는데. 변치 않고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있으니 행복하죠."

오목골 식당의 이정희 사장은 늘 손님 생각이 먼저다. 메밀이 소화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다는 말을 듣고 덜컥 메뉴로 삼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많이 하지 않는다는 희소성도 감안했다. 차별화 된 제품으로 포지셔닝 전략에 성공한 셈이다. 지금은 조금 무리해서 널찍한 식당으로 옮겼다. 그 대출 다 갚으려면 몇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이 사장이 의지를 불태운다. 활달하고 밝은 그녀의 모습을 보니 조만간 그 빚도 깨끗이 청산할 것 같다.

부드러운 첫 키스의 추억, '들내음' 부추콩국수
 

부추콩국수 밀가루 면에 부추즙을 넣어 파릇파릇하다. 고명으로 올린 오이색과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고소한 들깨가루가 풍미를 돋운다 ⓒ 이상구


'들내음 들깨 칼국수'는 식당 이름부터 들깨 칼국수 전문점을 표방한다. 들깨를 곱게 갈아 죽처럼 끓인 육수에 국수를 말아 낸다. 식당 입구부터 고소한 들깨향이 가득하다. 식당은 가정집을 개조해 쓴다. 집 안팎의 분위기가 참 차분하고 정갈해 보인다. 마치 큰아버지 댁에라도 온 것 같다. 일하시는 분들도 그랬다. 움직임이 전혀 부산스럽지 않고 조용했다. 주문 받는 목소리도 나직했다. 칼국수집인데도 어딘가 한정식집의 기품이 느껴졌다.

자리에 앉으면 배추 겉절이와 열무김치를 기본 찬으로 올린다. 보기에도 깔끔하고 예쁘다. 맛도 그렇다. 맵거나 짠 맛은 전혀 없다. 오히려 심심하니 엄마가 해 준 김치맛이다. 여느 칼국수 집처럼 국수 나오기 전 보리밥부터 내준다. 거무스름한 꽁보리밥이다. 그 위에 열무김치와 고추장 조금 넣고 들기름 몇 방울 넣어 비벼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입안에서 보리알이 매콤하고 고소하게 알알이 터진다. 보리밥은 콩국수 손님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준다.

이 집도 면이 특색 있다. 국수 색이 파릇파릇하다. 얼핏 고명으로 나오는 오이채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슬쩍 물으니 국수 반죽에 부추를 갈아 넣는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만큼 부추향은 강하지 않다. 모르고 먹으면 부추를 넣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그 맛이 싱그럽다. 신선한 느낌마저 든다. 면발은 일반 칼국수보다 얇다. 얼마나 치댔는지 씹지 않고도 넘길 것처럼 곱다. 국수 한 가닥에 쏟는 주인장의 정성이 엿보인다.

그에 못지않게 콩국물도 부드럽다. 조금 묽은 듯, 연하다. 마치 녹은 아이스크림 떠먹는 것 같다. 식당 입구에는 강원도 정선에서 나는 황태만 쓴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 집 사장님 고향이 정선이라고 한다. 웬만한 식자재는 다 고향 지인들이 부쳐주는 것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특히 여름 한 철 콩은 100% 정선 산만 쓴다고 한다. 부드러운 콩물에 흠뻑 적신 면발이 처음 입술에 닿았을 때, 첫 키스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면 조금 과장일까.

"여기 사장님 대단한 분이세요. 음식에 대한 열정도 그렇고 고향사랑도 남다르고요. 하여간 식자재는 최고로 써야 한다는 게 신념이에요. 아무리 비싸도 최고급 들깨나 밀가루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죠. 새벽에 나와 그 날 쓸 반죽도 국수도 직접 뽑아요. 1년 365일 변함없죠."

이 집 이순애 조리실장의 전언이다. 진정으로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장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강원도의 깊은 산처럼 우직한 그의 경영철학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훌륭한 노포로 성장해 오래도록 남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찬바람 불면 들깨칼국수부터 먹어볼 요량이다. 가까운 친구들과 보쌈에 소주 한 잔도 괜찮을 듯싶다.   

음식은 약이다

오목골의 이정희 사장이나 들내음의 전제선 사장의 신념은 비슷하다. 음식은 약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보다는 손님이 원하고 그네들의 건강에 도움 되는 약과 같은 음식을 내고 싶다. 그래서 메밀과 부추, 들깨 같은 흔치 않은 식재료를 선택했다. 그것도 가장 건강한 국산만 쓴다. 자연의 맛을 위해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자극적인 맛도 사양한다. 자식들 먹이는 어머니의 정성과 같다. 김치 한 조각을 베어 물어도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다.

여름이 간다. 길고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언제 여름이었나 싶게 흘려보낸 여름이다. 오래 이어진 빗줄기로 콩국수는 몇 번 먹지도 못했다. 이렇게 속절없이 여름이 가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콩국수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그리움의 맛이다. 영양 덩어리 콩에 메밀과 부추까지 더한 그 귀한 음식을 여름 한 철에만 먹을 수 있다는 건 비극이다. 국민의 건강 수호권 침해다. 4계절 콩국수를 허하라. 그래야 한다.
 
#콩국수 #메밀과 부추 #건강권 #칼국수와 우동 #어머니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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