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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SK 바이오에 수십억 쾌척한 까닭

27년 전 고 최종현 회장이 뿌린 바이오 씨앗, 열매를 맺다

등록 2020.08.28 19:26수정 2020.08.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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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전 세계로 확산 양상을 보이던 지난 5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설립한 재단을 통해 한국의 바이오기업에 36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약 44억원, 코로나 19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 자금으로 써 달라는 요청과 함께. 

그리고 그는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미 4월 문 대통령과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전화통화를 나눴던 빌 게이츠 회장은 한국의 코로나 방역과 리더십에 다시 한번 신뢰를 나타냈다. 특히 그는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해 한국정부와 기업 등과 협력을 약속하면서, 국내 바이오 기업인 에스케이(SK) 바이오사이언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 백신 민간 분야에서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면서 "SK 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내년 6월께 연간 2억개의 백신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를 통해 세계 각국의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빌 게이츠가 한국 바이오기업에 수십억원 쾌척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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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종현 SK 선대회장. ⓒ SK 제공


빌 게이츠 회장이 SK 바이오사이언스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이 회사의 백신 개발 기술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 백신은 미국의 바이오업체 '모더나(moderna)'가 앞서 있다. 미 정부의 지원아래 지난달 미국 내 89개 도시에서 3만명을 대상으로 백신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이다.

SK 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1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포 배양 방식으로 '4가 독감 백신'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4가 독감백신'은 4가지 바이러스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차세대 독감 백신이다. 이 회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외 기관과 공동으로 코로나 백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가 공고한 백신 개발 국책과제에 우수사업자로 선정됐었다. 

권준옥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올해 안에 백신 품목 3종(제넥신, 진원생명과학, SK바이오사이언스) 모두 임상 시험 착수가 가능할 것"이라며 "2021년 하반기와 2022년 사이에 상용화를 목표로 중점 지원해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SK 바이오사이언스는 자체 백신 개발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회사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까지 체결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글로벌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함께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국내 생산을 맡게 된 것. 또 미국 바이오기업인 노바백스가 개발중인 백신 물질의 제조 기술을 이전받아 국내서 추가로 개발해 생산하기로 했다. 


1년 사이에 주가 10배 폭등… SK 바이오산업, 그룹 주력으로 떠올라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주식시장도 크게 반응했다. SK 바이오사이언스 모회사인 SK 케미칼의 주가가 폭등했다. 지난 26일 종가 기준으로 40만2000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 한때 4만2000원이었던 주가보다 무려 10배이상 오른 것이다.

또 다른 SK 그룹 계열사인 SK 바이오팜은 지난달 초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말 그대로 대성공을 거뒀다. 공모주 청약에만 무려 31조원이 몰렸다. 이어 상장 첫날부터 공모가(4만9000원)보다 2배 높게 가격이 형성하더니, 곧장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 회사 27일 종가는 16만7000원이다.

이 때문에 내년 상장을 목표로 두고 있는 SK 바이오사이언스 역시 벌써부터 시장의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이미 SK 바이오사이언스가 상장 요건을 갖췄으며, 기업가치를 3조원 안팎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재확산 분위기에 맞물려, 바이오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안재용 사장은 지난달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기술과 생산에 대해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국제기구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면서 "자체 백신 개발뿐 아니라 해외 수입 등 투트랙 전략의 정부 정책에도 적극 호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SK그룹의 바이오 산업은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정유와 에너지, 통신, 반도체로 이어지는 그룹 주력산업에서 바이오는 '미래의 먹거리'로만 존재해 왔다. 이 '먹거리'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고 최종현 그룹 선대회장이다.

27년 전 고 최종현 회장이 뿌린 바이오 씨앗, 그룹 주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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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종현 SK 선대회장. ⓒ SK 제공


그는 1973년 11월 자신의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이 타계한 후 그룹을 맡았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각종 난관이 있었다. 1차 오일쇼크 등으로 당시 그룹 주력이었던 섬유산업이 위기에 빠졌다. 그는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위해 정유사업에 뛰어들어, 1980년 대한석유공사 인수에 성공했다.

이후 최 선대회장은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에는 국내 어떤 기업도 통신사업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다. 그는 통신사업 진출을 위해 미국 현지에 별도의 기획팀을 두었고, 이는 훗날 한국이동통신 인수와 미국 퀄컴사로부터의 기술 도입 등으로 이어진다.

또 반도체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1978년 선경반도체를 만들기도 했지만 경영악화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의 반도체 꿈은 최태원 회장이 2011년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실현됐다.

이와 함께 고 최종현 회장은 바이오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강조해왔다. 1993년에 대덕 연구단지에 바이오 연구팀을 만든 것도 그의 판단이었다. 그는 "바이오 분야는 에너지와 화학 사업 등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재계에선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바이오 산업 자체가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수익은커녕 매년 적자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투자는 이어졌다. 최태원 회장도 그룹 비전을 말하면서, "2030년 이후 바이오 사업 부문이 그룹의 중심이 될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선대회장의 뜻을 따랐다. 

지난 26일은 고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지 꼭 22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 2018년 20주기 때는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추모식이 성대하게 진행됐었다. 하지만 올해는 별도의 공식 추모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 분위기와 함께 별도 모임이나 행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27년 전 고 최종현 회장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뿌린 씨앗은, 이제 현재의 '먹거리'로 서서히 열매를 맺고 있다. 과연 그 과실의 혜택을 누가 얼마나 보게 될지 아직 가늠하기 쉽지 않다. 최 회장은 생전에 "기업은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빚이 있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의 말처럼, 바이오 투자의 열매가 기업뿐 아니라 사회에도 돌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코로나19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 #최태원 회장 #SK 바이오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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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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