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선택한 우리 지역의 '소녀상'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꽃 피운 평화의 소녀상

등록 2020.08.30 17:58수정 2020.08.3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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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건립식 소녀상 건립식 마치고 기념 사진 ⓒ 전희식

 
지난해 8월 5일. 그날 '일본 제품 불매' 기자회견이 열렸고 시가행진이 있었다. 올해 8월 21일. 이날엔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있었다. 전북 장수군 한누리전당 입구에 세워졌다. 일본 제품 불매 기자회견으로부터 꼭 1년 만이다.

기자회견에서 주민들은 일본인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아베 정부의 경제침략을 규탄하는 것이라고 구분했다. 일본으로는 여행도 안 가기로 했지만,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일본 사람들과는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전부터 거리 곳곳에 현수막을 걸었고 경찰서에 합법적인 집회 신고를 냈다. 같은 날 주민들은 일본 제품 불매를 넘어 생활 속 일본 말과 왜색 문화를 걷어내겠다고 결의했다. '다꽝'이 아니라 '단무지'며, '오뎅'이 아니라 '어묵'이라고 예시했다.

중요한 결의가 또 하나 있었다. 전략물자 유출이라는 터무니없는 일본의 궤변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불매운동이었다. 군청과 면사무소에 들러 조중동 절독을 요구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런 신문을 사지 말라는 요구였다. 농협에도 같은 요구를 했다.

기자회견 뒤에도 지역의 큰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홍보물을 나눠주었다. 대형마트마다 다니며 아사히맥주나 마일드세븐 등 일제 직수입품은 물론, 세탁용 가루비누인 '비트', 주방 세제인 '참그린', 손 세정제인 '아이! 깨끗해' 등의 100% 일본 기업 투자 회사 품목들도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일본의 경제 촉수를 잘라 내고자 한 것이다. 제국주의화하는 아베 정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배척 운동이었다(관련 기사 : 평화의 소녀상과 피에타상).

이러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열기를 전쟁 성 착취의 상징인 소녀상 건립 운동으로 승화하여 결국 1년 만에 완성했다. 소녀상도 상당히 독창적이었다. 이미 전국 곳곳에 많이 세워져 있는 주먹을 움켜쥔 비장한 표정의 소녀상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전환과 변신을 상징하는 나비를 두 손을 모아 날려 보내는 그런 소녀였다. 지역의 모 여고 여학생을 모델로 삼았고 지역 조각가인 호야 배철호님에게 의뢰하여 완성했다. 추진위원장은 지역 문인회 회장인 고강영선생이 맡았다.

당연히 돈은 모금 운동을 벌여 전액을 마련했다. 목표액 4500만 원을 150%나 넘게 걷어 모금 운동을 일찍 종료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동아시아 인민들에 대한 일본의 전쟁범죄를 엄히 꾸짖는 한편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침략전쟁에 용병으로 동원되어 민간인을 학살한 한국군의 책임을 반성하고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는 '베트남 피에타' 동상도 나란히 세우자는 견해가 일부 있었으나 채택되지는 못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박정희 정권 때는 버젓이 '양색시' 또는 '양공주'라는 주한 미군 위안부를 암암리에 운영했던 치욕의 역사도 반성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은 트럭을 몰고 나와 시내 곳곳에 현수막 거는 일을 자청했고 어떤 사람은 몇 종류의 문서를 도맡아 인쇄해 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를 개방하여 여러 차례의 대책 회의를 열도록 했다. 개인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는 식사를 대접받기도 했다.

원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인 8월 14일에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하기로 했으나 그즈음에 안타깝게도 폭우가 쏟아지고 산사태로 사망자까지 생겨나서 날짜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세워진 소녀상은 전쟁보다 평화를. 적대와 혐오 대신 공존과 상생을 선택했다. 일본 제국주의 만행 규탄에만 몰두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전쟁범죄도 성찰하고자 했다. 평화의 소녀상이 지역 내의 분쟁과 갈등은 물론 이웃 간의 대립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소녀상 #평화의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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