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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실패로 끝날 거라는 점에 이견 없었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199] 의대 진학한 제자들에게 물었더니... 공공성은 어디로?

등록 2020.08.31 13:19수정 2020.08.3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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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공의 고발 조치로 의료계가 '무기한 총파업'으로 맞선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진료 지연 관련 안내문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증세가 심상치 않은데, 오늘도 의료계의 파업 의지는 굳건하기만 하다.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파업에 의사협회가 성명을 발표하고 동참을 촉구하면서, 점점 정부와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정부안에 대한 '보류'와 '철회' 사이에서 중재할 사람도 수단도 사라진 상태다.

전공의 절반 이상은 파업을 지지하고 있다. 중소 규모의 개원의는 상대적으로 참여도가 낮은 반면, 대학 부속병원 등 대형 병원은 집단 휴진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부산과 의정부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가 끝내 숨졌다는 비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의사 파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라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은 그나마 호의적인 축에 속한다. 그들의 주장과 요구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데다 기득권의 몽니에 불과하다는 질타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애먼 간호사들이 일손을 놔버린 그들의 몫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동업자 정신'조차 내팽개쳤다는 비난도 이어진다. 지금껏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보낸 '덕분에 챌린지'도 취소한다는 조롱마저 넘쳐난다. 이쯤 되면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아니라, 국민과 의사 집단의 싸움이라 해도 무방하다.

아닌 게 아니라, 주변에서 의사 파업을 지지한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한 동료 교사는 오죽하면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해온 보수언론에서조차 파업을 두둔하는 내용의 기사가 안 보이겠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정부와 의사협회의 주장을 다룬 기사를 죄다 읽어봤다는 그다.

일부 의사들까지도 전공의들에게 파업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파업에 연대할 명분과 논리가 부족한 탓이라고 보는 게 맞을 성싶다. 그런데도 그들이 정부와 '강 대 강' 대치를 불사하는 이유는 뭘까.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쓰고, 의대생 열에 아홉이 의사고시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이 연대해 현장을 떠나면 사실상 국가의 의료 체계는 붕괴 지경에 이를 수 있다. 환자의 생명과 국민 건강권을 볼모로 정부를 무릎 꿇리려는 극단적인 행태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밥그릇 싸움'

나날이 싸늘해져만 가는 여론의 추이를 안다면 타협과 토론 등을 통해 서둘러 대안을 모색할 법도 하건만, 그들은 오로지 정부의 '항복 선언'만 요구하고 있다. 결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코로나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판단인 듯하다.

답답한 마음에 의대에 진학한 몇몇 제자들에게 부러 전화를 걸었다. 통계로 짐작하건대 그들도 파업에 동참하고 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그들의 솔직한 생각과 입장, 파업 전략 등을 넌지시 듣고 싶었다. 다들 오랜만의 뜬금없는 전화에 적잖이 당황한 말투였지만, 언론 등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은 그들만의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 중엔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의대에 갓 입학한 아이도 있다. 예상은 했지만, '가재는 게 편'이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파업에 반대하는 이유가 오로지 코로나의 확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요구가 지나치거나 주장이 틀려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들이 가장 먼저 꺼낸 항변은 이것이었다. 전공의들은 힘들게 의대 6년을 마친 뒤 일주일에 80시간 넘게 병원에 매달려 일하는 팍팍한 현실을 몰라준다는 거다. 의대생들은 학창 시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대에 입학했는데, 그 노력을 순식간에 부정당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밥그릇 싸움'이라는 건 다들 인정했다. 공공 의료를 강화한다는 정부의 개혁 취지에는 모두가 찬성의 뜻을 밝혔다. 다만,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인데, 장차 이익이 침해될 게 빤한 상황에서 '닥치고 복종'하라는 데 잠자코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발끈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공공 의료의 중요성과 의료 개혁이 시급하다는 걸 일깨워주었다면, 당연히 이해 당사자인 자신들의 의견을 먼저 들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의료계를 마치 상명하복의 공무원 조직처럼 여긴 정부의 고압적인 태도가 빌미가 됐다는 거다.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운 '4대 악' 이전에, '강 대 강' 대치의 이면에는 애초 이러한 불신이 깔려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 파업에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예비 의사들(의대생과 전공의)과 개원의들의 파업 참가율에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개원의들을 대표하는 이익집단인 의사협회에서 정부가 파업 중인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9월 7일 연대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제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섣부른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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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이 셋째 날을 맞은 28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전문의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선생님. 교사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의사 역시 동질적인 집단으로 여겨선 곤란합니다. 개원의들끼리도 지역에 따라, 연차에 따라, 전공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 다른데, 그들이 후배 의사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파업에 나섰을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거죠. 진심이라면, 진작에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부터 개선하려고 애써 주셨어야죠."

몇 해 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제자는 이렇게 단언했다. 서로 파업을 말하곤 있지만, 현직 의사와 전공의, 의대생들의 입장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제자는, 의사협회 집행부가 전공의들을 파업에 나서도록 선동해놓고선 최근 은근슬쩍 발을 빼고 있는 것 같다며 성토하기도 했다.

그는 파업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잃을 것이 많은' 그들은 끝내 꼬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의 정책이 실제 강행되더라도, 개원의들은 '직접적 영향권'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개원의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가운데, 전공의들이 현재 대정부 투쟁을 주도하는 이유도 결국 당장 '잃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병원 일도 힘들고 머리도 복잡한데 그냥 군대나 다녀와야겠다고 푸념하는 제자도 있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의사 선생님'이지만, 전공의는 업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매우 적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팍팍한 현실을 묵묵히 견뎌내는 건, 향후 전문의가 되고 나서 누리게 될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의사를 세대별로 '신분'을 나눠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학에 자리 잡은 50대 이상의 의사는 '성골'이고, 40대는 '진골', 갓 전문의를 취득하고 개원을 준비하는 30대는 '6두품'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비유다. 지금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6두품'에도 끼지 못하는 평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의사협회가 호언장담한 대로 개원의들까지 나선다 해도 이번 파업은 실패로 끝날 거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 여론이 한 번 '밥그릇 싸움'으로 규정하면, 그 어떤 파업도 필패라는 것이다. 거기에 '볼모론'까지 덧붙여지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 예컨대, 교사들이 파업하면 학생을 볼모 삼았다고, 의사들이 파업하면 환자를 볼모 삼았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더욱이 이번 파업은 정치적 환경마저 최악이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없었다고 해도 의사협회의 파업 결정이 섣불렀다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기본적인 사리 판단조차 부족해,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악수를 뒀다고 혹평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짜고짜 '4대 악'으로 규정하기 전에 주고받기식 타협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는 거다.

그는 이미 자신의 지역구에 공공 의대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한 국회의원들이 여럿 나온 터라, 파업 전에 논의의 퇴로가 차단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지역구에 의대만 유치되면 3선은 기본이라는 게 정치권의 불문율이다. 현재 의대 유치가 거론되는 지역에선 벌써 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리고 있다.

결국 '어승정(어차피 승자는 정부)'인 마당에, 정부가 의료계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퇴로를 열어주는 세심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까지 강경 대응을 강조하면서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지만, 어떻든 해결의 실마리는 정부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사표를 내고 의사고시를 미응시한 집단행동에 대해서 일벌백계가 능사는 아니란 이야기다.

결국 교육의 문제

제자들과 개별적으로 통화를 하며 공통으로 던진 질문이 있다. 사실 몰라서 묻는 질문이라기보다 비난이라고 해야 맞겠다. 의사들이 왜 너도나도 서울에서만 일하려 하고, 돈 벌기 쉬운 편한 전공만 찾아가려 하느냐고. 그럴 거면, 사회적 공공성과 윤리 의식을 강조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왜 하느냐고 책망하듯 물었다.

"선생님. 의사는 성직자도 공무원도 아닌, 그저 자영업자일 뿐이에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다고 애국심이 생겨나는 게 아니듯,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그냥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해요. 지금 의대 진학을 꿈꾸는 고등학생 중에 슈바이처가 롤 모델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가식적이거나 철이 덜 든 경우죠. 제 말에 동의하지 않으세요?"

파업에 참여하는 전공의와 의대생 중에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정부의 정책에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여기에 거창한 철학적 고민 따윈 필요 없다. 남보다 내신 성적이 좋았고, 수능 점수가 높았으며, 비싼 등록금을 지불했고, 더 오래 대학을 다녔으니, 더 많이 벌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게 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공공성과 윤리 의식은 '공정성'의 하위 개념일 뿐이다.

여전히 일부에서는 의대에 합격한 아이들의 이름을 학교를 빛낸 인물이라며 교문에 현수막으로 내건다. 어떤 의사로 키우느냐보다 일단 의대에 합격시키는 것이 고등학교의 당면 과제가 된다. 그 와중에 의대생이 된 이들에게 공공성과 윤리 의식을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교사로서 가슴 아픈 고백이지만, 이번 의사 파업은 근본적으로 교육의 문제다.

사족 하나. 몇몇 제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있다. 공공성이 문제라면, 우리나라 의료 체계를 영국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참고로, 영국에서 의사들은 모두 공무원이다. 전에 쿠바의 공공 의료 시스템이 부럽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하니, 후진국인 쿠바 말고 영국의 사례를 들었다면 욕먹지 않았을 거라는 '웃픈' 답변을 들었다.
#의사 집단 파업 #전공의 #대한의사협회 #공공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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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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