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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돈'이다

[서평] 정아은 지음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등록 2020.09.06 12:02수정 2020.09.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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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 천년의 상상



"남편이나 시가 어른들께는 굳이 책을 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올 봄, 생애 첫 책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를 출간했을 때 출판사 대표님은 내게 이렇게 조언했었다. 결혼 후 내 삶을 휘감고 있었던, 시가 중심 가부장제의 부조리함과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낀 불평등을 조목조목 따진 이 책을 당사자들이 읽으면 '부작용'이 있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나 역시 두려웠던 터라 '그래야겠다' 다짐했었다. 

그런데 내가 집을 비웠던 날 책을 읽어버린 남편은 내게 이렇게 쪽지를 남겼다. '책 보면서 나도 많이 느꼈고 반성도 했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 나는 이 말에 용기를 냈고, 시가에 책을 보내드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시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책 읽고 처음엔 서운했었어. 그런데 한 번 더 읽어보니까 알겠더라고. 나도 모르게 내가 내 아들 위주로만 생각하고 행동해왔던 걸 말이야. 나는 널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나도 모르게 물려받은 태도로 널 대하고 있었던 거 같아. 솔직히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그간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시어머니도, 남편도 공감하는 이야기인데 다른 여성들이라면 더 큰 공감을 해주리라 자신감도 생겼다. 난 좀 더 적극적으로 출간 소식을 주변에 알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나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축하한다', '꼭 읽어볼게' 한 마디씩 해주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꽤 성공을 거둔 40대 초반의 비혼인 한 여성이 불쑥 이렇게 내뱉었다.


"피해의식 쩌는 제목인데?"

분위기상 정색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지만, 내 또래의 여성이라면 당연히 공감해주리라 여겼던 내게 이 한 마디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도대체 이 여성은 왜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피해의식' 운운했던 걸까. 이 물음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몇 달간 품고 지내던 이 질문에 답답함이 밀려오던 날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천년의 상상, 2020)을 만났다. 나 역시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말이 왜 부조리한지를 책에 적었는데, 비슷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제목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처음 몇 장을 들춰보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아은 작가 역시 한 토론모임에서 비혼인 40대 여성 참가자가 전업주부를 '타인의 자비에 기댄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는 것이다.

'같은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아프고 심각하게 들렸다'는 작가는 '왜 그 말이 나왔는가? 그 말은 어떤 경로를 거쳐 그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게 됐는가?'라는 질문에서 이 책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배제되고 소외된 주부의 자리 

저자는 15권의 책에 지금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며 찬찬히 답을 찾아간다. 직장인으로 살다 둘째를 임신하고 전업주부가 된 저자는 '주부의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적잖은 혼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직장과는 달리 '약속'이 느슨하게 이행되고, 서로 시도 때도 없이 '충고'하는 이웃들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소스타인 베를론의 <유한계급론>을 읽으며 발견한다. 
 
 내가 속한 세상, 그러니까 전업주부들의 세상은 그전까지 내가 속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 돈이 아닌 관계가 중심이 되는 곳, 물질보다 정신이 중요시되는 곳, (…) 자신의 일을 '일'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딛고 선 공간은 자본이 점거한 세상에서 동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세상, '사랑'과 '헌신'의 이름으로 꾸며져 있지만 화려한 치장을 들추면 소외감과 황량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영혼들이 숨 가쁘게 일상을 이어가는 외딴섬이었다.  (38~39쪽)

이어 저자는 주부들이 '외딴섬'에서 살아가게 된 이유를 찾아간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 카트리네 마르살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을 읽어가면서 저자는 현대 경제체계의 근간을 만든 학자들 대부분이 가정에서의 노동을 경제활동에서 빼먹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본주의 체계를 설립한 애덤 스미스도, 자본주의를 비판한 카를 마르크스도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가정에서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주부들의 노동은 '일'이 아닌 '집에서 노는 것'이 되고 만다.  

여성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는 자본주의 

주부들은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간다. 반면 남녀평등의 기치 속에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된 소수의 여성들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처럼 남자와 대등하게 일하며 경제적 힘을 갖는다. 주부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여성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가 설정한 성별 분업이 갈라놓은 것은 남녀 사이만이 아니다. (…) 돈으로 환산되는 일만을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자본주의적 시각에 갇힌 한, 비혼 여성은 가정에서 살림과 육아를 도맡는 기혼 여성을 '의존적이고 답답하게 산다' 여기고, 기혼 여성은 비혼 여성을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비하하게 된다. 체제 유지를 위해 사회는 단일한 여성상, 곧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자꾸만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그 여성상에 부합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자신이 선 자리를 옹호하면서 결과적으로 서로를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223쪽)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다. 내 책에 대해 "피해의식 쩐다"고 말했던 그 40대 비혼 여성의 발언이 이해가 됐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대기업에서 꽤 높은 자리에 오른 그녀는 남성중심적인 직장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 이런 치열함을 경험하지도 않은 채 살림의 가치를 인정해달라, 우리도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 외치는 주부들의 주장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를 놀라게 한 그 여성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반면, 주부로서 평생을 살아온 나의 시어머니는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해 있었고, 때문에 나의 비판 어린 시각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웠던 것이다. 결국, 내가 서운함을 느낄 대상은 내게 '피해의식'을 운운했던 그 여성이 아니었다. 남성과 여성을 편 가르고, 여성들 내부에서도 분열을 낳는 자본주의가 문제였던 것이다. 

경계선 너머,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질 때 

그렇다면 이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의 독서를 따라가면서 나는 어렴풋이 그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박가분의 <포비아 페미니즘>, 로이 F. 바우마이스터의 <소모되는 남자>와 같이 반페미니즘적인 책들로 독서의 폭을 넓혀간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에 현혹되는 자신을 성찰하며 이렇게 적는다. 
 
 두 번째 독서를 마칠 때쯤, 그 동안 내가 젠더와 관련해서는 여성이 쓴, 여성을 위한, 여성의 입장에서 본 책들만 주야장천 읽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독서 초반에 저자의 주장에 쉽게 빠졌던 이유였다. 내 안에 나와 비슷한 이들의 생각만 쌓아갔기 때문에 단순한 잽에 훅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175쪽)

즉, 반대의 논리를 배척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다 단단한 사고와 논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늘 '공감되는' 책만 선택했던 나 역시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저자는 대학 동창과의 일화도 소개한다. 대학 시절 반페미니즘적 견해를 펼쳤던 남자 동창은 딸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면서 한국 남자를 '한남충'이라 부르며 비판한다. 또, 반대로 자신은 아들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한국 남자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즉, 상대방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분열의 간극을 줄여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가까이서 매일 접하는 다른 생명체를 보며 자신과는 '다른' 존재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종내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하는 것. 그것이 나와 내 친구가 젊은 시절 모습에서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어가게 된 연유였다.  (164쪽 )

책장을 덮고 나니 여성들이 서 있는 자리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남성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과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채 자신의 일을 '일'이라 부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여성들. 그리고 나처럼 주부의 자리와 사회인의 자리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여성들. 여성들의 이 같은 자리에는 '돈'의 논리가 스며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여성들이 서 있는 다양한 자리가 서로 분열하는 자리여야만 할까. '돈'의 논리에 지배받아 형성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 아닐까. 삶의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여성의 시각이 배제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 정아은 작가 역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여성은 자신이 선 자리의 전체 지형을 조망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은, 기혼의 자리에 서든 비혼의 자리에 서든, 내가 서 있지 않은 자리의 가치와 진가를 알아보고 평가할 안목을 갖추게 된다. (223~224쪽) 

그러기 위해 나부터 독서의 지형을 넓혀가야겠다. 공감되는 제목의 책들만 찾지 말고 반대되는 의견에도 좀 더 귀를 기울이면서 말이다. 내 책의 제목에서 '피해의식'을 느꼈던 그 분도 자신과 다른 자리에 있는 여성들의 삶을 마음을 열고 바라봐준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지은이),
천년의상상, 2020


#페미니즘 #여성 #주부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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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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