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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네책방이 많이 생겼을까요? 이거 없으면 다 망합니다

[대통령께 드리는 글] 올 11월 재개정 앞둔 도서정가제, 제발 지켜주십시오

등록 2020.08.31 20:08수정 2020.08.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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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제주도에서 작은 책방 '제주풀무질'을 꾸리고 있어요. 지난해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6년 동안 꾸리다가 제주도로 내려왔지요. 서울에선 책방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토록 오랫동안 책방 일을 했는데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은 문을 닫진 않았어요. 부모님 도움으로 산 낡은 아파트를 팔아서 책방 빚 1억 5천만 원 가까이를 모두 갚고 젊은이들에게 10원도 받지 않고 물려주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만큼 책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스스로가 참 잘한 일이라고 뿌듯해 해요.

한편으론 '젊은 사람들이 책방 일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을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요. 처음에 나는 서울 풀무질을 23살 난 내 아이에게 주려고도 했어요. 내 아들은 하지 않겠다고 했죠. 아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책방을 해서는 먹고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26년 된 책방을 접고, 제주로 내려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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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 ⓒ 텀블벅 풀무질 모금 프로젝트

 
지금 새롭게 서울 풀무질을 꾸리는 젊은 사람들은 방송에도 나가고 음악 활동도 하고 책도 펴내고 책방 안에서 책이야기 나눔도 하면서 어렵게 책방을 꾸려가고 있네요. 새 일꾼들이 얼마 앞서 책방 내부를 고칠 때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는 말을 들어서 마음이 무척 아팠어요. 그나마 그들이 책방 일을 쭉 해보겠다는 뜻은 '부분도서정가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에요.

부분도서정가제란 2014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실시되는 한시법이에요. 올 11월에 재개정을 앞두고 있어요. 책을 살 때 현금을 10% 싸게 주고 5% 적립금을 주는 제도지요. 저는 1993년 4월 1일부터 서울 풀무질 책방을 꾸렸어요.

그땐 완전도서정가제였어요. 책을 살 땐 책 뒤에 있는 책값 그대로 냈지요. 그래도 책이 덜 팔릴 때였어요. 제가 꾸리는 책방에는 인문사회과학 책이 많다보니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 소련 동구사회주의권 나라들이 몰락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다르게 보는 책들이 빠른 속도로 덜 팔렸어요.

그래도 그땐 은행 빚을 지진 않았지요. 1997년부터 전자책방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완전도서정가제가 무너졌어요. 알라딘, 인터넷교보, 예스24, 인터파크 같은 책방들은 20~30% 싸게 책을 팔았어요. 그러면서 동네책방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지요. 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책방뿐 아니라 참고서를 주로 팔던 책방들도 많이 없어졌어요. 사람들은 동네책방에서 책을 보고 전자책방에서 책을 샀거든요.

동네책방을 아끼는 사람만이 제 값을 주고 동네책방에서 책을 샀지요.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었어요. 그들은 스스로 바보가 되었지요. 하지만 그런 착한 바보가 세상을 바꾸지 싶어요. 출판사에서는 동네책방과 전자책방에 책 이익금을 다르게 주어요.

동네책방에는 25% 이익을 주고, 전자책방에는 40~50% 싸게 주지요. 그러니 전자책방은 20~30% 싸게 팔아도 남아요. 하지만 전자책방들도 서로 책값 내리기 경쟁을 하다 보니 책만 팔아서는 이익을 내지 못했지요. 전자책방들은 책 이외에 화장품, 가방, 문구류 같은 것들을 팔아서 이익을 남겼어요.

아무튼 동네책방은 씨가 말라갔고, 책값을 싸게 한다고 사람들이 책을 더 보진 않았어요. 그래서 2014년 11월부터 부분도서정가제를 실시했지요. 동네책방들이 하나 둘 다시 생겨났어요. 전자책방들도 이익이 늘었지요. 지난날에는 20~30% 넘게 책을 싸게 주었는데 10%만 싸게 주면 되니까요.

그럼 독자들만 책을 비싸게 사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책값은 다른 물품보다 증가율이 높지 않았어요. 싼 값으로 나오는 책들도 많아졌지요. 동네책방들이 다시 생기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났어요.

동네책방은 전자책방이나 대형서점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해요. 제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바닷가에만 책방이 60개 넘게 생겼어요. 그곳에서는 시낭송회, 음악회, 그림책전시회, 책읽기모임, 바느질모임, 마을이야기유랑단도 꾸려요.

도서정가제를 지키는 다른 나라, 왜?
 

SNS에서 해시태그 #동네책방을 넣으면 보이는 이미지들. ⓒ SNS 화면 캡처 갈무리

 
이제 다른 나라를 볼까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6개 나라 가운데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중국, 한국이에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북유럽 대부분 나라들은 완전도서정가제를 하고 있죠. 사실 미국 영국 호주 같은 영어권 나라들은 우리나라와 달라요. 미국은 동네책방을 보호하려고 40% 넘게 책 이익금을 주지요. 도서관 책 분실을 30% 넘게 보면서 출판사에서 책을 많이 사요. 물론 동네책방을 통해서 구입하구요.

그 나라에는 아직도 대학교 앞에 작은 책방들이 많고 오랫동안 책방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영국도 마찬가지예요. 호주는 최저임금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아서 책을 사는 데 인색하지 않아요. 중국은 도서정가제를 없애자 책값이 오르고 출판사가 망해나가자 다시 완전도서정가제를 하려고 하지요.

프랑스는 1981년 문화성 장관 '랑'이 랑법을 만들어서 출판사와 저자, 책방, 소비자를 모두 보호하는 완전도서정가제를 하고 있어요. 책을 내기만 하면 책이 어느 정도 팔리도록 출판사와 저자에게 혜택을 주지요. 서점을 내면 우리나라 돈으로 10억 원을 빌려주어요. 10년이 지나서 갚고 10년 동안 갚으며 이자도 없어요.

그 나라에는 대학 앞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있지요.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독일은 오히려 동네책방에는 40% 이익금을 주고 전자책방에는 20% 이익금을 주어요. 택배비도 책을 사는 사람이 내고요. 가까운 나라 일본도 완전도서정가제를 하고 있어요. 그 나라에서는 동네책방을 지키려고 대학 안에 서점을 못 열도록 하는 조례를 만든 곳도 있어요.

왜 이토록 많은 나라들이 도서정가제를 지키려고 할까요. 바로 책은 다른 공산품과 달리 자유시장경제에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우리나라는 완전도서정가제가 이루어져도 책방이 많이 생기거나 독서인구가 늘지 않을지도 몰라요.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에요. 또 문화가 달라졌지요.

손전화기를 많이 갖고 있어서 그것으로 정보를 얻거나 전자놀이를 즐기죠. 책을 보기보단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이번 도서정가제 문제에 전자소설이나 전자만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소비자들이 싸게 볼 수 있도록 도서정가제를 없애라고 나서는지도 몰라요. 이해가 돼요. 소비자들은 무엇이든지 싸게 살 수 있으면 좋겠지요.

동네책방이 사라진 나라는 망합니다
 

제주 책방 소리소문에서 찍은 내부 사진 ⓒ 최은경

 
그럼 책도 그럴까요. 그렇지 않아요. 책은 달라요. 책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해요.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얼마나 힘든 노력이 들어가는지 글을 써 본 사람은 알아요. 아무튼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요. 유럽에 많은 나라들은 낮 4시면 일을 마쳐요. 병원 응급실을 빼곤 모두 일을 마치죠. 제가 서울 풀무질 책방을 그만둔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었어요.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책방 일을 했거든요. 물론 책방 안에서 달마다 책읽기모임 독립영화보기모임 글쓰기모임을 열 개 가까이 꾸렸지요. 그 때문에 식구들과 저녁밥을 같이 먹기 힘들었어요. 아무튼 노동시간이 줄어야 해요. 또 하나는 최저임금 또는 생활임금이 훨씬 올라야 해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대통령께서 제 글을 읽을까요. 하루에도 수많은 편지가 오고 그만큼 국민청원이 올 텐데 제 글까지 볼 짬이 날까 싶어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 36개 나라 가운데서 어린이가 가장 불행한 나라예요. 노인자살률이 제일 높아요. 청년실업률과 자살률도 높아요. 왜 그럴까요.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은 망해요. 동네책방이 사라진 나라도 마찬가지구요.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운데 우리나라는 동네서점 비율이 제일 낮고 전체 서점 수도 낮아요. 제주도는 예외지요. 왜 제주도에 책방이 많이 생겼을까요. 단 하나 이유를 대라면 바로 제주도에선 완전도서정가제가 잘 지켜지고 있어요.

제가 서울에서 책방을 그만둔 이유이기도 해요. 서울에선 10% 싸게 주어야 책을 샀어요. 책 한 권 팔아도 15% 이익이 남지 않아요. 그런데 그나마 있는 부분도서정가제마저 없어진다면 저는 제주도에서마저 책방 일을 못하지 싶어요. 동네책방을 살려 주세요. 몸 마음 튼튼하세요.

2020년 8월 29일 토요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덧붙이는 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2020년 9월 1일에 보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글을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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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019년 6월 11일까지 26년 동안 꾸렸어요. 그 자리는 젊은 분들에게 물려 주었어요. 제주시 구좌읍 세화에 2019년 7월 25일 '제주풀무질' 이름으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새로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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