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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 과징금 취소... 법원이 놓친 '정의'

법원의 피자에땅 판결 유감... 그런 기계적 판단으론 '공정' 못 지킨다

등록 2020.09.03 13:10수정 2020.09.0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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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으로서의 정의, 정의의 여신 디케 ⓒ Pixabay

 
8월 28일, 지인으로부터 뉴스 링크 하나를 받았다. '피자에땅 과징금 취소'라는 기사였다. 맥이 풀렸다.

2018년 10월 5일, 공정위가 배포한 '피자 가맹본부 ㈜에땅 엄중 제재, 14억 과징금'의 보도자료가 언론사들을 통해 기사화되었다. 가맹점주 단체 설립과 활동을 이유로 계약해지 등 불이익을 준 것과 본사 홍보전단지 구매만 강제한 것은 부당하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었다. 필자도 <피자에땅 엄중제재, 공정위의 '지연된 정의'>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올렸다. 그때 관련된 가맹점주들은 '만족하지는 않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기뻐했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약자를 위한 사법의 정의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라는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한 그들의 옆구리를 감히 꼬집을 수 있었다는 정신적인 위안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안도감과 위안의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한 가지 있었다. 가맹 본사가 국가로부터 아무리 엄중하게 제재를 받는다고 해도 피해 가맹점주들에게 어떤 금전적 보상도 없다는 것. 한마디로 '사법의 정의'는 세워져도 피해 점주들의 척박한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피해 점주들은 좋아했다.

그런데 그게 취소가 되었다. 본사가 제기한 공정위 처분 불복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는 '가맹점주 협회를 주도한 두 점주에 대한 본사의 폐점 결정은 그들이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정당했으므로 과징금은 취소되어야 한다'라고 했고, 또 하나의 과징금 대상이었던 본사의 가맹점에 대한 '전단지 강매는 부당하기는 했으나 9억 6천만 원의 과징금 액수는 너무 과도해 재량권의 일탈·남용'이라는 것이다. 

'기계적 판단'으론 정의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폭력, 절도 등 그 행위와 결과가 명확한 사건이 아닌 '공평하고 올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공정'이라는 뭔가 쉽게 인지하기 어렵고 조금은 모호한 사건이었다. 바로 사건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판단 가능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재판부는 그것을 기계적으로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이러했다. '계약서 내용을 위반하였는가? → YES → 가맹해지 정당', 네 또는 아니오와 같은 이진법적 논리 전개로 판단을 한 것이다. 공정이라는 대단히 아날로그적이고 비선형적인 사람들 간 상호작용을 지금의 알파고 같은 AI까지 갈 것도 없이 구닥다리 PC로도 처리 가능한 간단한 논리 전개로 판단을 한 것이다.

재판부가 지적한 '식자재 의무 사용 위반, 영업시간 미준수 등'의 계약위반 행위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브랜드의 가맹점에서 횡행하는 관행적인 일탈이다. 그래서 본사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고, 간혹 이런 가맹점이 적발되면 경고와 같은 요식 행위만 있었을 뿐 폐점과 같은 극약처방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꿩 잡는 게 매인 상황에서 해당 지역에 돈 싸들고 온 새로운 가맹희망자가 있다면 몰라도, 어찌 되었건 개미같이 일해서 또박또박 돈 보내주는 점주를 폐점시키는 것보다는 어르고 달래서 살려두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프랜차이즈 사업이 등장했던 초기, 이런 사업을 '마피아식 사업'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더욱이 본사도 가맹점주들에게 '전단지 강매'와 같은 더 큰 부조리를 저지르고 있었으니 본사의 가맹계약 유지의 조건은 계약 준수가 아닌 본사 지침을 묻지도 따지지 않고 따를 것인가의 여부였다.

그래서 공정위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기업과 계약 체결한 다수가 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본 것이다. 그 두 명의 가맹점주가 계약서를 준수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본사의 이번 행위가 수백 명의 가맹점주 모두에게 공평무사했었는지, 그리고 본사는 올바랐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공정위의 존재 의미였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것을 기계적 판단으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공정위의 존재 의미도 퇴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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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모습. ⓒ 윤성효

 
이번 판결로 직접 당사자인 그 두 명의 점주뿐만 아니라 이들 점주와 뜻을 같이한 수백 명의 동료 가맹점주들, 그리고 이들을 지지했던 다른 브랜드의 수만 명 가맹점주,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지인들 수십만, 수백만 명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거봐 세상은 바뀌지 않아! 니꺼나 잘 챙겨 정의가 어디에 있니?"

난 이 사회는 사람들의 이성이란 버팀목과 감성이라는 버팀목이 지탱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감성이란 버팀목에 '분노와 좌절'이라는 곰팡이가 조금씩 자라 부식된다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던 날 다저스 투수 브랜던 매카시가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선거 결과가) 내게는 아무 영향이 없다. 나는 부자다. 백인이고,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당분간 평화롭게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판결이 지금 내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난 이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다. 이제 가맹점주도 아니며, 오히려 작지만 가맹 본사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당분간 아니 상당히 오래 마음이 불편할것 같다. 그나마 '지연된 정의'를 아예 '좌초된 정의'로 바꾼, 이번 판결 덕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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