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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삶이 되고, 삶이 곧 글이 된다면

박도의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을 읽고

등록 2020.09.01 10:40수정 2020.09.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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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2020, 눈빛) 책 표지 책표지에 소년 박도의 모습이 은은하게 보인다. ⓒ 김병하

구미 출신의 해방둥이인 박도 작가는 구미중학에서 나랑 함께 공부한 옛 학우다. 이 땅의 해방둥이는 모두가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우리에게 광복 75주년은 참으로 굴곡진 역사였다. 같은 해방둥이지만 개인적 미시사는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미시사야말로 당대 역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원천이자 심층적 이해의 자원이다.

내가 보기에 작가 박도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몸으로 체현해온 '역사적 반영'이라 해도 좋다. 박도 작가가 자전적 이야기로 엮은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2020)은 청소년기에 그가 품었던 '교사, 작가, 기자'의 꿈을 평생 어떻게 구현해 왔는가를 담은 진솔한 고백이다.

박도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에게 <명심보감>을 익히면서 이미 문사(文士)가 될 바탕을 익혀온 게다(이중환의 <태리지>에도 본래 선산은 문사가 많이 배출되는 곳이랬다). 구미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박기홍)는 광복 직후 대구 10․1항쟁의 여진이 구미에서 일어나자 청년 행동대원으로 참여한 이래로 평생을 야인으로 살아야 했다. 참 잔인한 세월이었다.

게다가 그 분은 이승만 자유당 정권 아래서 고향 선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때부터 그의 집안은 갑자기 기울어져 가족마저도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나는 중학교 때 박도가 귀공자 타입이어서 그냥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줄로 알았다. 그가 큰고모 댁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중2 때부터는 할머니랑 남의 집 행랑에서 공부한 것을, 이번에 책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4․19 혁명 후 그의 아버지가 서울 민주당사에서 활동하게 되자 박도는 서울로 고교진학을 했다. 하지만 5․16 쿠데타 이후 아버지가 다시 구금되는 화를 당하면서, 그의 가정은 또 한 차례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신문 배달원으로 고학하면서 4년 만에 겨우 졸업했다.

청소년기에 겪는 역경은 일생 동안 자기 정체성 정립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그 정체성이 어떤 쪽으로 어찌 작용하느냐에 따라 일생이 빛과 그림자로 갈린다. 박도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지독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으로 성장해 갔다.

우리나라는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전체 학령기 중에 비교적 낮았다. 박도는 어려운 성장과정을 딛고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장차 교사가 되고 작가가 되려는 꿈을 다져갔다. 그는 대학을 마무리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ROTC 학군단에 입단해 고되고 삭막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전방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꼬박 24개월간 군복무를 했다. 박도는 장교로서 전방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분단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을 게다.

사람의 일생은 크게 3기로 나눠 볼 수 있다. 나서 첫 20여 년은 성장기(1기)이고, 중간(2기) 30~40년은 생산적으로 일하는 시기라면, 60대 이후(3기)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년기다. 해방둥이 박도에게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되어 군복무를 하기까지가 성장기이고, 그 후 교직에서 30여 년 이상 생활한 것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르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공적으로 일한 시기다. 교직을 마무리하고 원주 치악산 자락에서 글쓰기에 몰두하는 시기가 그에게는 생활연령으로 노년기지만, 작가로서는 글쓰기에 몰두하는 원숙기(제2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박도는 중등학교 평교사로 30여 년을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전형적인 교사상을 구현하고자 나름 노력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풍금 잘 치는 초임교사 김경수 담임선생님을 스승으로 기억하고, 고교 시절에는 박철규, 홍준수 선생님을 평생의 은사로 가슴에 담고 살아왔다. 학교교육의 성패를 가름하는 마지막 기준은 그 교육을 받은 학생이 평생 존경하는 스승을 가슴에 담고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랬다.

박도는 산문집 <마지막 수업>(박도, 2019)에서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기쁨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다. 제자들이 사는 세상은 참 아름답다. 나는 그들이 있었기에 늘그막에도 기쁨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게 교직의 보람이다. 노교사의 아름다운 고백이다.

작가로서 박도는 비교적 늦둥이지만 날 새는 줄 모르고 역작을 지속적으로 집필하고 있다. 그의 저작은 산문집이 주류이지만 장편소설, 역사서와 사진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40여 종 이상이나 된다. 이 가운데 30%(12편) 정도가 그의 나이 60세 전에 나왔고, 회갑 이후에 나온 작품이 무려 70% 이상이나 된다. 인생은 60세 부터라는 말이 실감난다.

몇 차례의 습작 끝에 출판된 박도의 첫 산문집은 <비어 있는 자리>(1989)였다. 그가 재직한 이대부고 제자들이 나서서 출판기념회까지 마련해 주었다. 박도의 첫 장편소설은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1994)였다. 이 책은 도하 신문에 서평이 나갔고, 곧 재판이 나올 정도로 두루 읽혀졌다. 그는 이 책으로 민족작가회의 회원으로 추천을 받았다. 박도가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자 어느 변호사(이영기)는 그에게 항일유적지를 직접 둘러보고 '항일유적답사기'를 집필해보도록 권유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박도는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2000)를 냈다. 하지만 이 책은 초판 1000부도 나가지 않았다. 그 후 다면적인 자료수집과 현지탐방을 거쳐 그는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2016)을 출판했다. 허형식(1909-1942) 장군은 구미 금오산 사람이었다. 그가 뜨거운 가슴으로 공들여 집필한 만큼, 평판이 좋은 책으로 계속 읽혀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구미 사람으로 박정희는 알아도 허형식을 모르는 세태"를 나무랐다.

보병장교로서의 박도, 참교사로서의 박도, 작가로서의 박도 위에 기자로서의 박도 모습이 다시 오버랩 된다. 회갑을 코앞에 둔 나이에 박도는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참여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2004년 이래 약 15년간 미국국립문서기록청(NARA)를 네 번이나 찾아가 미군정 3년과 한국전쟁 사진자료를 검색해 손수 스캔을 떠왔다.

이들 자료는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3>(2007, 눈빛), 사진집 <한국전쟁․2>(2010) 등을 통해 귀한 사료로 소개되었다. 이렇게 시민기자로 참여한 이래로 그는 지금까지 1600여 꼭지에 해당되는 방대한 기사를 송고했다. 놀라운 저력이다. 이로써 박도는 기자로서의 꿈을 원 없이 실현한 게다.

저자 박도는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나는 1945년 해방둥이다. 70여 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글감을 위해 국내외 여러 곳을 다녔다. 지난 세월 한 때는 잘살아보기도 했고, 또 한 때는 씻은 듯이 가난하여 굶주려 보기도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는지 모르겠지만 입때까지 살아온 데 대해 하늘에 감사드린다." (이 책, 277쪽)

박도는 이즈음도 글감을 찾아 현장을 답사하고 있다. 작가로서 박도는 이 책을 통해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글쓰기 여정"을 유감없이 드러내고자 했다.

70대 중반을 넘어서는 박도 작가에게 "앞으로 뭐 할 거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다. 지금도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대부분 자판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아마도 그의 서재에서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멈추는 날이 그에게는 삶의 정점을 딱 찍는 날이 될 게다. 부디 꿈이 삶이 되고, 삶이 곧 글이 되는 그런 날로 마냥 이어지기를 빈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박도 (지은이),
눈빛,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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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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