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제가 정말 아껴뒀던 오름입니다

신선이 되고 싶을 때 오르는 매오름

등록 2020.09.02 16:34수정 2020.09.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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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8일, 금요일에 오름 올라가는 모임인 금오름나그네가 표선에 있는 매오름에 올랐다. 태풍이 막 지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금요일에도, 토요일에도 비가 온다고 일기를 예보했다. 그런데, 예보가 시시각각 변했다. 금요일 아침에서야 오후에 구름만 많다는 예보가 나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연락했다. 네 부부가 모두 참석한다고 했다. 오후 3시에 표선주차장에서 만났다.
  

매오름 산책로 일주도로 옆, 작은 주차장에 있는 안내판 ⓒ 신병철

표선 중심가 주차장에서 10분도 채 안 걸렸다. 일주도로 바로 옆에 있는 매오름 입구에 금새 도착했다. 표고가 136.7m이고 비고가 107m로 별로 높지 않은 오름이다. 중턱에 통신시설이 있어 그곳까지 차로가 나 있다. 매오름 안내판 모습이 멋지다. 안내판에 적힌 글은 이렇다.


"표선면 표선리 한지동 일주도로의 북쪽 연변에 위치한 오름으로, 일주도로에서 오름 중턱까지 길이 나 있다. 산정부에 돌출된 최적층의 바위는 멀리서 보면 매의 머리를 아주 닮아 머리를 치켜들고 날아오를 듯한 자세이다. 매오름은 해안 지역에서 형성된 천해성 수중분화구의 하나로서, 형태적으로 응회구(tuff cone)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매오름 동남 사면에 얼핏 보기에는 분화구가 뚜렷하지 않으나 남동으로 휘어진 능선의 남동쪽 사면에 남향으로 터진 말굽형 분화구인 새끼 오름(도청오름)이 있는데, 이는 분출 시대적 선후관계를 고려할 때, 수중 분화에 의한 매오름의 생성 후에 육상 환경으로 바뀌어 소위, 스트롬볼리식 분화에 의한 전형적인 분석구라고 할 수 있다. 전 사면으로 해송,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고, 정상봉에는 퇴적층의 침식된 노두가 박혀 있으며, 그 주변에는 칡넝쿨이 얽혀져 있고 보리수나무와 우묵사스레피나무가 식생하고 있다."

상당히 어렵다. 천해성 수중분화구, 응회구, 스트롬볼리식, 분석구, 노두 등등 전문용어가 많아 보통사람들은 읽기 어렵다. 한자말에 한자를 부기하지 않아 더 어렵다. 분석구(噴石丘)만 해도 그렇다. 말 그대로의 뜻은 '뿜어져 나온 돌로 형성된 언덕'이란 뜻이다. 쉽고 간단하게 표현해 본다.

"매오름은 정상의 생김새가 매가 머리를 치켜들고 날아오를 듯한 모습을 닮은 데서 유래했다. 이 오름은 얕은 바다에서 분출한 화산인 옹회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매오름의 남동쪽으로 휘어진 능선에 새끼오름인 도청오름이 있는데, 이 오름은 남쪽으로 터진 말굽형 오름이다. 먼저 매오름이 수중 분출로 만들어져 육지가 되었고, 그 이후에 매오름 안에서 화산이 분출했다. 그 화산 잔재들이 쌓여 도청오름이 되었다. 그 과정이 이탈리아 스트롬볼리섬 화산과 매우 유사하다. 침식되지 않은 바위가 남아 매오름 꼭대기가 되었다. 매오름 아랫자락에는 해송과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고, 대나무숲도 있다."
 

매오름 체육공원 매오름 중턱에 온갖 종류의 운동기구들을 시설해놓았다. ⓒ 신병철

오름 안내판을 보면서 연구한다. 모르는 말들은 서로 묻는다. 그래도 모르는 말은 검색한다. 대강 오름을 알고 난 뒤에 오늘의 코스를 정한다. 우리는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반대편으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오름 아랫자락에 난 둘레길을 걷기로 한다.

땀이 조금 날려고 할 때 쯤, 체육공원이 나타난다. 소나무, 참나무, 삼나무 숲 아래에 온갖 종류의 운동기구들을 시설해 놓았다. 쉴 수 있는 평상과 벤치도 있다. 아직 숨이 차지도 않은 우리는 그냥 통과한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진다. 그래도 우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돌진한다. 왜냐하면, 오름의 높이에 따라 드는 부담을 익히 알고 있으니까.  

급경사가 끝나는 곳에 거대한 통신시설이 솟아있다. 다른 방향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길도 나타났다. 괜히 힘들여 걸어 올라왔다는 생각이 팍 든다. 그래도 금방 풀어진다. 좀 더 올라간다. 도청오름으로 가는 길이 나타났으나, 그냥 먼 눈으로 본다. 다음에는 도청오름을 꼭 가봐야지 다짐만 한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정상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길도 널판으로 깔아놓았다. 그러나 상당히 좁다. 보리수나무와 천선과나무(젖꼭지나무)와 사스레피나무가 뒷쪽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동네 표선 전체가 한눈 에 들어온다. 저기가 백사장, 그 옆이 당케포구, 조기가 내 낚시포인트... 우리집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표선도 제법 넓네 하며 입을 맞춘다. 표선 전체를 드론처럼 구경하려면 매오름에 올라와야 한다는 걸 확실히 깨닫는다.
 

매오름 대나무숲 매오름 아랫자락에 자생하고 있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 신병철

반대편으로 내려간다. 길은 좋다. 매오름은 겨울에도 온통 푸른색이다. 난대식물들이 많다는 뜻이다. 서귀포 쪽의 대표적인 상록수들이 모두 모여있다. 까마구쪽낭, 참식나무, 생달나무같은 교목이 키대로 자라 하늘을 덮고 있다. 중간 중간에 사스레피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가 끼어 있고, 아래에는 백량금과 자금우나무가 바닥을 덮고 있다.

오늘은 서귀포쪽 해변가 오름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 세 가지만 알아보자고 강요한다. 이 나무는? 참식나무... 아닙니다. 생달나무. 이 나무는? 까마구쪽낭... 맞았습니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는 모두 구분해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갈까 모두 자신이 없다.

이 나무는? 대나무... 맞았습니다. 대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곧 숲을 이루었다. 산에 쭉쭉 뻗은 대나무숲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다른 나무가 몇 개 끼어 있었지만, 대나무가 대세였다. 손가락만한 것부터 손목만한 대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대나무숲으로 삼림욕하려면 매오름에 올라가야 한다. 죽욕(竹浴)을 위해 길도 꼬불꼬불 내 놓았다. 그런데, 죽욕이란 말이 있나요?  
 

매오름 삼나무숲 대나무숲을 지나면 나타나는 삼나무숲 ⓒ 신병철

대나무숲을 지나니 가까이서 굴삭기 작업 소리가 요란하다. 돌을 깨고 있나 보다. 바로 아래 큰 길이 나 있다. '속세가 멀지 않구만' 누군가의 말에 모두 동의한다. 매오름은 정말 선계(仙界)같다. 아래 큰 길이 선속(仙俗)의 경계인 듯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까마득한 곳에서 나는 소리 같고, 숲속을 걷고 있는 우리들은 신선이 된 듯하다.

곧 이어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제주에서 흔한 삼나무숲이긴 하나 대나무숲을 지나 나타나니 새롭다. 숲 속으로 난 길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저 유혹에 안 넘어갈 수가 없다. 우리는 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매오름 입구 한바퀴 돌았을 때 나타난 또 다른 입구 ⓒ 신병철

순간 우리는 작은 등성이를 올라 갔다가 내려가고 있었다. 환속해 버린 것이다. 오래 전에 조성해 놓은 작은 축구장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전에는 풀을 잘 깎아놓아 산 속에서 축구를 할 수도 있었는데, 이후로 잘 사용하지 않았나 보다. 중간에 긴 의자도 놓여 있다.

또 내려간다. 어느새 네 부부, 8명이 남녀 2명씩, 두 팀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두 팀 모두 짝이 맞는 게 없다. 앞선 팀이 그냥 가 버려서 쉴 수도 없다. 또 다른 입구 표시판이 나타났다. 민가도 나타나고, 곧 절도 나타난다. 그리고 한참을 돌아가니, 올라올 때 지나쳤던 체육공원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얼마나 평소에 꼴 보기 싫었으면, 모두가 헤어져 다녔을까?' 하는 말에 모두가 머쓱해 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잠깐 헤어져 있었던 부부들이 다시 만났다. 평상에 앉아 숨을 고른다. 땀이 비 오듯 한다. 땀 식히는 데는 단소 소리가 제격이다.

세령산을 불어본다. 삼나무 숲속에서 높은 음 속에서 간간히 튀어나오는 낮은 단소소리가 신선하다. 임... 무... 림 중 황... 태... 중.... 가벼워도 날지 않고 슬프도 울지 않는 단소 소리. 산속에서 듣는 단소 소리가 최고의 악기인 심금을 살짝이라도 울려줬으면 좋겠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 비가 올듯 말듯한 날씨 때문에 멀리가지도 못하고 오른 매오름이 참 좋다. 1년 가까이 오름을 오르면서 정말 아껴두었던 오름이었다. 서울에 북한산이 있다면 표선에는 매오름이 있다. 그래서 저녁은 오리요리를 먹기로 한다. 왜 그러는데? 비밀이다.

태풍 언저리에 매오름에 올라 우리는 신선이 되었다.
#매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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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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