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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여 코로나 난민, 이제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20년 외국살이에서 경험하지 못한 가족과 공동체 경험... 초대박이었습니다

등록 2020.09.03 09:02수정 2020.09.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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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시 출국입니다. ⓒ Pixabay


드디어 다시 출국이다. 지난 1월 구정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이후 처음이다. 원래는 8월 28일에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 한국의 갑작스러운 팬데믹 상황으로 중국민항국에서 항공기 출항 일정을 유보시켰다. 코로나는 매 순간순간이 예측불가능이다. [지난 기사 : 코로나 난민, 바로 접니다]

8월 31일, 오후 늦게 중국민항국의 출항 승인이 다시 났다는 통보를 받고 마음이 바빠졌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중국대사관에서 지정한, 경기도에 있는 병원으로 두 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서울 안에 있는 병원들에 연락을 해보니 어디든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고 해서다.

메달을 주고 싶은 사람들

병원에 도착하니, 좀 과장하면 준전시 상황이다. 영화에서나 보는 것 같은, 우주복은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복장의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긴장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엄중한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풀어주고 있는 것은 간호사 분들이었다. 계속 밀려드는 사람들의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에 짜증을 내거나 날카로워져 있을 법도 한데 하나같이 참 친절하셨다.

방금 앞사람이 질문한 것을 또 질문하는 분에게도 똑같은 대답을 정성스레 해주신다. 마스크를 썼지만 말투와 눈매만 보아도 정성을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그런 간호사들을 보고 있자니 되레 마음이 놓였다. 이 분들께 격려의 메달이라도 달아드리고 싶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큰아들은 1학기 내내 온라인 수업을 했다. 2학기 개학과 동시에 서울에 마련된 임시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건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일주일 만에 다시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왔다. 군산 처가에 있는 아내와 어린 둘째 아들 또한 쉽지 않은 생활의 연속이다.

사실, 표현이 세련돼서 온라인 수업이지 친구도 없이 하루종일 혼자서 모니터만 보고 있는 건 큰 고역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개월째. 그래서 온라인 수업을 받으며 힘겨운 학창 시절을 잘 참아내고 있는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용기의 메달을 걸어주고픈 마음이다.

지난 8개월. 잃은 것이 더 많은가, 얻은 것이 더 많은가. 재정적인 면에서 보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를 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관계적인 면에서 보면 180도 달라진다. 대박도 이런 초대박이 없다.

8개월여 '난민 인생' 손익보고서

결혼 즉시 해외 근무로 나가게 되어 일주일에서 열흘씩 일년에 한두 번 한국에 왔다. 한국에 와도 늘 아내와 애들과만 여행 다니고 어쩌다 하루 정도 부모님 댁에서 오롯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난 8개월 넘게, 양가 부모님 댁을 오가며 함께 삼시세끼를 먹고, 자고, 얘기하며 딱 붙어지냈다. 결혼 후 20년 동안 부모님과 보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의 딱한 사정을 이미 알고 계시다보니 마음속 얘기까지 다 나누는 친밀한 교제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노환의 부모님께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고 계신지 매일의 일상에 대해 그 분들의 말벗이 되어 드리며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어르신들만의 삶의 균형과 조화가 다 흐트러졌다. 그럼에도 아들딸 손주들 눈치까지 보며 섬겨주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멈춰 서버린 것 같은 자녀 세대들의 삶을 보며 얼마나 속상해 하며 가슴 졸이셨을까. 내색 안 하시고 격려와 사랑의 섬김을 해주신 양가 부모님께 감사의 메달을 걸어드리고 싶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여행사에서 긴급전화가 왔다. 중국 민항국에서 출항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가 방금 나왔다는 거다. 출항 전 72시간에 맞춰 검사를 받은 사람들은 원래 타야 할 오전 예정인 비행기가 늦은 오후나 밤으로 출항 시간이 바뀌면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할지 모른다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목소리다. 어제 밤과 오늘 아침 검사받기 전까지 비행기 출항 시간을 무역협회와 여행사 측에게 두 번 세 번 재확인한 터라 미안해서 그런가보다. 확실히 코로나는 매 순간순간이 예측불가능이다. 다음엔 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사실 이 분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 갑작스레 시간을 바꾼 주최 측 사정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사회 각계각층에는 코로나로 예상치 못한 입장, 억울한 입장에 처함에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분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 메달감들이시다.

결코 손해가 나지 않은 시간...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 ⓒ 유승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을 돌아보며 ⓒ 유승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는 백수십년 전에, 가난에 찌든 조선 땅에 와서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의료와 교육으로 한국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다 죽어간 외국인들의 묘들이 있다. 풍토병과 전염병으로 죽은, 그들의 어린 자녀들의 묘들이 즐비하다.

늘 이곳에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이날 기회가 된 것이다. 이화, 배재, 세브란스 등등 많은 명문 학교들과 병원들이 이분들의 헌신으로 시작됐다. 어느 때라고 쉽지 않은 시절이 있었나? 간호사 분들과 여행사 직원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 속에서, 힘든 가운데에서도 아름다운 섬김과 소중한 유산을 만들어내는 사랑의 행동들은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고보면 코로나 때문에 되찾게 된 것이 참 많다. 특히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하며 주의하지 못했던 가족간의 섬김과 공동체 생활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 깨닫고 있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부족하게 살아가더라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들을 되찾으며 사는 여정은 그래서 우울하거나 피곤하지 않다. 덕분에 나의 코로나 난민 생활의 손익 보고서는 결코 손해가 나지 않아 보인다. 이제 막 시작한, 따끈따끈한 새로운 여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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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 이십오년째. 이방인과 나그네로,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의 가장으로 오늘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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