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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에서 회수한 책 제가 사서 보았습니다

[그림책일기 27] 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등록 2020.09.05 14:32수정 2020.09.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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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기 주머니에서 아기씨가 나와서 여자 씨랑 만나서 아기를 만드는 거래."

목욕을 할 때 아이가 가끔 반복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엄마는 왜 고추가 없냐, 엄마는 가슴이 있는데 아빠는 없다'도 말했었다. 그때마다 '엄마도 고추가 있는데 다르게 생긴 거고, 사람 몸은 누구나 다르게 생겼다. 가슴이 크고 작은 건 남녀가 아닌 사람마다 다른 차이다'라고 답해주고 말았다.

최근 8살 아이가 또 한 번 몸에 관한 질문을 하길래 아이에게 남자몸과 여자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책으로 보여주겠다고 하니 아이가 좋아했다. 그동안 궁금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말했던 건데 내가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닐까? 아이가 자신의 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아이에게 머뭇머뭇 대답을 못하는 건 성에 대한 왜곡된 어른의 시선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다수 양육자가 성교육이나 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리 애는 그런 거 몰라요"라는 말로 발을 빼고, 아이가 성에 대해선 최대한 늦게 알기를 바란다. 평소에는 불신하는 공교육을 성교육에서만큼 맹신한다. '성교육은 학교에서 하겠지...' 이런 태도는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이의 호기심에 눈 감았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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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앞표지 ⓒ 담푸스

 
그림책으로 호기심을 해결해주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막막했다. 이 책 저 책 여러 곳에서 추천된 것을 살펴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구매했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려줄까? 옷을 벗은 엄마랑 아빠가 있어. 엄마에겐 가슴이 있고 다리 사이에 좁은 길이 있어. 그 길을 질이라고 해. 아빠 다리 사이에는 곤봉처럼 생긴 고추가 있어. 고환이라고 하는 주머니도 달려 있지.

책은 엄마와 아빠의 몸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된다. 남녀 성기에 대해 생물학적 용어로 설명한 뒤 엄마와 아빠는 사랑하는 사이고 뽀뽀도 하고 성교도 한다고 나온다. 성교는 신나고 멋진 일이라고 아기를 낳기 위해선 더 정성스럽게 사랑을 나눈다고 나와 있다. 성교를 나눈 뒤 엄마 뱃속에는 수정란이 자라지만 엄마랑 아빠는 아직 모른다.

엄마 뱃속 수정란이 점점 자라고 탯줄을 통해 아이가 음식을 먹고 태반은 어떤 부분인지도 나와 있다. 옷을 입기 힘들 만큼 배가 커진 엄마는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는다. 이때 아이가 나오는 그림이 여성의 다리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다르게 말하면 아이 머리가 나오는 방향에서 그려져 있다.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엄마, 아빠와 집으로 돌아온다.

성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림으로 남녀 성교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서, 아이가 포르노가 아닌 과학적 사실로 섹스를 알 수 있는 그림책이라서 아이와 함께 이 책을 보았다.

아이가 부부가 성교 장면을 보며 나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당황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지만 가슴이 '쿵쾅'거렸다. 다행히 아이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질문을 이어갔다.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는 아기가 머리를 내미는 게 신기했는지 나오다가 힘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했다. 아기도 엄마 몸 밖으로 나오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엄마도 아기가 잘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이야기 해줬다.

아이는 책을 보고 나서 궁금증이 해결됐다는 듯 만족해했다. 자신의 배꼽을 보면 이게 탯줄이라고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을 접목해서 설명해주기도 했다. 누군가의 염려처럼 책을 보며 얼굴이 빨개지면서 부끄러워하고 야한 상상을 하는 건 보지 못 했다. 이 책은 성적 상상력을 담은 게 아니라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기에 아이는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뿐이다.

아이에게 보여주기 전에 책을 먼저 보았을 때 이 책이 왜 논란이 되고, 일부 초등학교 보급한 책을 여가부가 왜 회수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성은 감추어야 하는 일, 부끄러운 일, 뒤에서 말해야 하는 일이라고 배웠던 세대에게는 남녀 나체가 그려져 있고, 성을 신나고 멋진 일이라고 표현한 이 책이 불편했던 걸까?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하는 것이 성교육의 핵심이다. 우리의 몸을 성적 대상이 아닌 신체기관, 팔은 팔이고 음경은 음경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어린 아이들의 선입견 없는 눈이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책을 '야하다, 선정적이다'고 보는 건 어른의 왜곡된 시선이다. 아이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본다.

미국 성폭력 예방 교육가 케인트 로덴버그는 "아이들에게 인체해부학적 공식용어를 가르침으로써 자기 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와 자존감을 갖게 하고,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도 촉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몸에 관한 지식과 성관계에 대해 알려주려 마음을 먹었지만 왜곡된 성문화에서 자란 나에게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 어떤 책을 골라야 고민하던 차에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성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담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은 한줄기 빛과 같았다.

솔직하면서도 간단 명료하게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전달하는 시중에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이 책을 구입해서 지인들에게 나눠 줘야겠다. 이 보다 더 좋은 성교육책은 없다고, 아이들과 꼭 함께 보라고 말이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페르 홀름 크누센 (지은이), 정주혜 (옮긴이),
담푸스, 2017


#아기는어떻게태어날까 #나다움어린이책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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