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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正言)되어 '인재등용책' 등 제시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14회] 반대파의 음해로 관직을 물러난 정약요을 다시 불러들인 총명한 군왕 정조

등록 2020.09.13 15:37수정 2020.09.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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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화성행궁에서 찍은 정조의 초상화. 정조의 실물과 닮았다는 보장은 없다. ⓒ 김종성

 
정조는 총명한 군왕이었다.

정약용을 내치지 않았다. 반대파의 음해로 관직을 물러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1790년 2월에 실시한 예문관 검열에 합격한 것이다. 호사다마, 우상인 채제공이 정실에 의해 그를  뽑았다고 노론 계열의 대간 한 사람이 상소하고 나섰다.

정약용은 이번에도 사직소를 제출하고 물러났다. 여러 차례 임금이 불러도 응하지 않았다.

'화가 난' 임금이 해미(海美)로 유배시켰다. 첫 유배에 속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조의 본심이 아니었다. 반대파에게 명분을 주기 위한 술책이었다. 10일 만에 다시 부른데서 알 수 있다.

이 해 9월에 사헌부 지평에 이어 사간원 정언(正言)에 올랐다. 품계는 정8품이지만 역할은 막중한 자리였다. 이때 정약용은 「십삼경책(十三經策)」을 비롯 「맹자책([孟子策)」, 「문체개혁책(文體改革策)」, 「인재등용책」, 「농업진흥책」 등 국정개혁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조선조는 사람ㆍ지역차별이 극심했고, 영ㆍ정조대에 이르러 탕평책을 실시했으나, 그 뿌리는 여전했고 결국 나라가 망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왕께서 물었다.

"조정에서 인재를 구하기 어려움은 예부터 그러하였는데, 더구나 몇 사람을 재주가 있겠는가. 이제 한 사람의 몸으로 문학ㆍ재정ㆍ군사의 재능에 대해 무엇을 시험해 보아도 못하는 것이 없다면, 이는 몇 사람을 당할 재주일 뿐만이 아니니, 이 어찌 그럴 수 있는 일이 있겠는가?"

정약용의 답변이다. 긴 내용이어서 두 부분을 소개한다.

신이 어리석어 죽을 죄를 무릅쓰고 그윽이 생각하건데, 전하께옵서 만 백성에게 온갖 사지나 몸을 주재하는 저 신명(神明)과 같습니다.

그러면 신이 앞에서 비유한 말씀들을 다시 낱낱이 종합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문관이 능히  군사를 훈련시키지 못하고 무관이 능히 예악(禮樂)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오관(五官)이 서로 융통될 수 없는 것과 같은데 전하의 관기(官紀)가 바야흐로 문란하고 변천이 덧없는데 인재에게 여러 가지 일을 무겁게 책임지우는 사례가 이와 같으며, 예악(禮樂)을 가르치고 효렴(孝廉)으로 다스리는 것은 온갖 사지나 몸의 습관을 바르게 하는 것과 같은데 전하의 거느리고 다스림이 마땅함을 잃어 시끄럽게 다투는 풍속을 이루었으므로 인재를 배양시키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따라서 유일(遺逸)들을 찾아내어 제각기 그 아름다운 점을 아뢰게 하는 것은 오관을 폐지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전하의 사람 등용이 두루 미치지 못하여 재걸(才傑)들이 가라앉고 뜻을 얻지 못하여 인재들이 불공평하게 버려지는 것이 이와 같다면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인재를 주관하여 뜻대로 부리고 권병(權柄)을 장악하여 수시로 수축 신장할 분은 돌아보건대 전하뿐이시므로, 신이 앞에서 부득불 전하께서 그 잘못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은 참으로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에서였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척연(惕然)히 자성(自省)하여 이를 물으시니, 신이 감히 간담을 피력하여 임금님의 명령에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조야의 기록들을 살펴보았는데, 옛적 융성하던 시대에는 붕당이 고질로 굳어지지 않고 풍속이 무너지지 않아 "아무 어진이가 이조나 병조에 들어갔으니 세상의 다행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아무 간사한 자가 사헌부와 사간원에 들어갔으니 세상의 근심거리이다"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아, 이때는 융성하던 시대였지만, 진실로 지금 같아서는 아무 어진이가 이조나 병조에 들어간다  한들 어찌 세상에 보탬이 되겠으며, 아무 간사한 자가 사헌부와 사간원에 들어간다 한들 어찌 세상을 폐퇴시키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은 조종조에서 사람 쓰는 방법이 반드시 이같지 않았을 것으로 압니다. 아아, 전문하는 공부가 없어지면서 익히는 것이 정밀해지지 못하고, 구임(久任)하는 법이 폐지되면서 치적이 이룩되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대부들은 낮은 품계에서 청환의 직책을 지내고, 높아져서 요직에 앉아 있으면서도 흐리멍텅하여 무슨 일인 지도 모르는 자가 대부분입니다.

오직 이서(吏胥)들의 직책만을 전임(專任) 또는 구임시켜서 규례에 환하고 행사에 숙련되었으므로 비록 강명(剛明)하고 재간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권력이 세어지고 그들의 간사하고 속임이 날로 자심하여 세상에서 '이서(吏胥)의 나라'라 일컬어지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 마땅히 관제(官制)를 차차 혁신하여 안으로는 작은 부서와 낮은 관직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도태시키고 하나만을 두어 전임(專任)케 하는 한편, 문무반의 관장들도 또한 각기 한 사람을 뽑아 구임시켜서 치적을 책임지우며, 밖으로는 감사나 수령도 치적의 명성이 있는 사람을 가려 그 연한을 늦춰주면, 인재가 모자라지 않고 백성이 그 이익을 입을 것입니다. (주석 3)


주석
3> 『다산 논설선집』, 박석무, 정해렴 편역, 266~269쪽, 현대실학사, 1996.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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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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