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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들이 무서워"... 코로나 확산, 노인혐오가 걱정된다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26] 가짜뉴스와 태극기부대, 그리고 고령화 사회

등록 2020.09.03 11:56수정 2020.09.0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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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일부 보수단체 주최로 문재인 정권 부정부패·추미애 직권남용·민주당 지자체장 성추행 규탄 집회가 열린 가운데 광화문 일대가 일부 통제되고 있다. 이날 집회는 서울시의 집회금지명령으로 대부분이 통제됐으나, 전날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과 중구 을지로입구역 등 2곳에서는 개최가 가능해지면서 인파가 몰렸다. ⓒ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만남이 걱정스러운 요즘, 일 때문에 부득불 외출을 다녀온 아내가 말을 꺼냈다.
 
"큰일이다. 길을 걷다가 노인들과 마주쳤는데 괜히 겁나데.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쩌지?"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렇더라. 버스나 전철을 탔는데 노인들이 옆에 있으면 슬쩍 피하게 돼. 다들 광화문 다녀온 것 같고."

 
그랬다. 요즘 밖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랄 때가 많다. 혹여 적극적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이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광화문에 다녀온 노인의 수가 전체 노인 인구의 5%도 채 되지 않는 걸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모든 이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내가 만난 어르신의 친구의 친구가 혹여 8.15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평소 코로나19(아래 코로나)와 관련해 오버한다고 말하던 지인들도 이번만큼은 아닌 듯했다.
 
"다들 그런가 봐. 페이스북 봤어? OO씨도 썼잖아. 자기는 상관없는 줄 알았는데 식당에서 옆의 할아버지가 박정희가 새겨진 시계를 차고, 성조기 붙은 핸드폰으로 극우 유튜브 방송을 보고 있으니까, 그제야 코로나19가 남일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고."
"예전에는 그래도 코로나가 먼 나라 일 같았는데, 이제는 바로 내 옆으로 다가온 느낌이야. 누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겠어."
"대학로의 내가 아는 선배들 중 코로나에 걸린 사람도 있다니까. 진짜 걱정이야. 우리는 앞으로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와 관련된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8살 막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자신도 뉴스를 본 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무서워졌다는 것이다. 마치 모든 노인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니는 듯 보인다면서.
 
다행히 12살 첫째와 10살 둘째는 막내와 달랐다. 자신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겁이 날 뿐, 노인이라고 특히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불변은 아니었다. 매일 노인과 코로나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녀석들의 생각도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다.
 
서글픈 동시에 등골이 서늘했다. 어린아이가 노인을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세상이라니. 이미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넘어가고 있는데, 노인혐오가 일상화된다면?
 
어르신들의 가짜 뉴스
 
문제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어르신들의 인식이 안이하다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그릇된 생각이 공고해지고 있다. 쉽게 접하는 유튜브나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퍼지는 가짜뉴스는 상상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집안 어르신과의 대화 ⓒ 이희동

 
실제로 집안 어르신에게 안부를 여쭸더니 돌아오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 나라는 이미 전체주의 중국, 아니 중공의 꼭두각시놀음에 의해서 모든 언론, 입법, 사법 등 이미 경찰도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공안 경찰로 바뀌었으니. 집에 가면 검색창에 '공데일리' 검색해서 꼭 보렴. 너 같은 젊은이가 현실을 직시했으면 해서. 엄마 아빠 세대는 길어야 10년이지만 너희와 그 아래 세대는 어찌할꼬."

"좋은 시절은 이제 끝났나 보다. 자유민주주의가 없어져서 통탄스러울 뿐이다. 총알 없는 제2의 6.25 전쟁, 디지털 시대의 무서운 암흑의 터널로 들어섰단다. 농담이 아니라서 유감이다."
 
답답했다. 집안의 60대 이상 어르신 중 제일 젊고, 평소에는 좋은 말도 많이 해주시는 분이 정치와 관련해서는 왜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지.
 
도대체 노인 세대들은 가짜뉴스를 왜 이렇게 맹목적으로 믿는 걸까. 60대 이상 된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방치당하고 있다. 그들이 코로나 위기에도 교회를 나가고, 집회를 나가고, 태극기를 흔드는 것은 그곳에서 공동체를 찾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가 이런 노인들의 자존감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막상 어르신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을 이용하여 현 정부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려는 세력들을 가장 먼저 비판하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현혹되어 코로나가 중국의 음모라느니, 현 정부가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느니 등을 믿는 어르신들이 한심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노인빈곤율은 심각한 문제다 ⓒ 이희동

 
우리 사회의 노인은 취약계층이다. 60대 이상 노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복지정책은 아직 태부족이다. 보수 세력들은 지하철 무임승차, 기초노인연금 등을 거론하며 충분하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노인빈곤율은 매우 높은 편이며 그와 연동되어 노인자살률 역시 높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에 대한 혐오 정서까지 높아진다면? 아마도 그것은 곧 지옥일 것이다.
 
전근대 시대 공경의 대상이었던 노인 세대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사회적으로 소외 대상이 되어 버렸다. 더는 농사와 관련하여 그들의 경험에 따른 조언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항상 새것을 소비해야 하는 자본주의에서 노인의 구매력은 젊은이와 비교하여 떨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노인 세대를 혐오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모든 세대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우리 모두의 부모님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미래이다.
 
부디 노인 세대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들은 자중하길 바란다. 어르신들이 가짜 뉴스에 휘둘려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고, 이 때문에 사회의 노인혐오 정서가 강해진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손해로 되돌아올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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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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