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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점점 침묵하는 그 이름, 이재용

[取중眞담] 불법승계사건 기소에 아무 말도 없어... '다음에'는 언제?

등록 2020.09.03 18:48수정 2020.09.0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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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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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오영훈 비서실장, 이 대표, 최인호 수석대변인. ⓒ 공동취재사진


지난 2일 오후, 정례 브리핑을 위해 국회 소통관을 찾은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에게 물었다.

- 전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소됐는데, 민주당에선 특별한 입장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기소가 이미 결정됐고, 그 부분은 필요하면 다음에 입장 발표를 하도록 하겠다." 

- 국정농단사건 때는 특검 수사과정에서도 꾸준히 브리핑 등이 있어서 이번에 안 나오는 게 의아하다.
"예, 다음에 필요하면 하도록 하겠다."

'다음에'는 언제일까? 세상만사, 주요 이슈를 다루는 정당의 논평이나 성명에 재계 1위, 글로벌기업의 총수가 경제범죄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내용은 왜 빠졌을까. 그것도 민주당인데.

5년 전부터 주목한 '이재용 승계작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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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뇌물공여, 특정경제가중처벌법(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위증) 위반 혐의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민주당은 이번 사건의 핵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5년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2015년 6월 5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강선아 부대변인은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을 두고 "특정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편부당한 합병을 위해 국민 이익을 훼손하려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해 10월 유은혜 당시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이 문제를 또 한 번 짚었다. 

1년 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이들의 의심대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은 청와대-삼성의 정경유착 결과임을 밝혀냈다. 이때도 민주당은 계속 '이재용'을 말했다. 2017년 1월 12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오늘의 특징적인 사건으로 이재용 부회장 특검 소환이 있다"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대기업의 3세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는 일은 대한민국 자체로 보면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며칠 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을 때는 "국민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반드시 구속되어야 할 피의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윤관석 수석대변인)"며 법원을 비판했다. 재청구 끝에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을 발부한 2월 17일, 추미애 대표는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결정"이라며 반겼다. 이날 고용진 대변인은 오전에도, 오후에도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언급하며 특검 수사를 격려했다.


검찰이 '이재용 불법승계'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을 파헤치기 시작했을 때도 민주당은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2019년 4월 30일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더불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결탁 의혹까지도 이어지는 문제"라고 짚었다. 그해 5월 8일 박주민 최고위원도 이 사건을 좀더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기까지였다.

이후 민주당은 대체로 조용했다. 2020년 들어 나온 대변인 논평이나 브리핑에 이재용이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삼성 이재용이 아니라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이다. 검찰의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와 법원의 영장기각 등의 중요 국면에서도 민주당은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6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을 기소하지 말라고 권고한 직후 민주당에선 비판적인 발언이 나오긴 했지만 "검찰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6월 29일 박주민 최고위원)", "검찰이 삼성 합병 승계 의혹을 해결할지 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7월 16일 윤관석 정책위 수석부의장)" 정도였다. 국정농단사건 당시와 비교해보면 다소 점잖다. 그런데 기소가 이뤄진 다음에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논평은커녕 발언조차 없다.

자꾸 떠오르는 수사심의위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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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3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이 이재용 부회장을 무조건 옹호한다거나 검찰 기소에 무조건 반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횟수나 빈도, 강도를 떠나서 꾸준히 삼성의 문제를 말하고, 재벌개혁을 주장해온 정당 아닌가.  

굳이 옛날 옛적 이야기를 꺼낼 필요 없다. 2018년 가을 금융 당국이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여부 판단을 머뭇거릴 때, 내부문건을 공개해 흐름을 바꾼 인물은 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이다. 검찰 기소 직전,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작업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G' 문건을 공개한 사람도 민주당의 이용우 의원이다. 8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기소를 촉구한 민병덕·오기형 의원 역시 민주당 소속이다. 

하지만 의원 개개인과 당 전체의 무게감은 다르다. 정당의 '입장 없음'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입장을 나타낸다.

삼성의 마스크 생산 지원 때문일까, 집중 호우 피해 지원 때문일까,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제공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과 수차례 만나며 "고용창출은 직접 챙기겠다"고 한 이재용 부회장의 공언 때문일까. 민주당의 갑작스런 침묵은 무엇 때문일까. 불기소를 권고하면서 "삼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됐다"던 어느 수사심의위원의 말만 자꾸 떠오른다.
#이재용 #더불어민주당 #삼성 불법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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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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