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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의 편집자를 위해, 계속 써보겠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글쓰기의 기쁨, 나는 오늘도 '투고'합니다

등록 2020.09.07 13:42수정 2020.09.0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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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쓴 원고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 pixabay


집에 있는 책 중 에세이만 꺼냈다. 책의 맨 뒷장에 있는 출판사의 이메일 주소를 '따기' 위해서다. 그동안 쓴 원고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열 군데씩, 오늘까지 30개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준정입니다. <엄마를 미워해> 원고 투고를 위해 새움 편집자님을 찾았습니다. 이경 작가님의 <작가님? 작가님!>를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300개의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작가의 심경을 읽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과장하지 않은 담담한 문장이 좋았고, 그럼에도 꾸준히 쓰는 작가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투고가 30번 째인데요, 이경 작가님이 '300'이라는 기준을 세워준 덕분에 조바심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더불어 제 원고를 읽어주신다면 큰 기쁨으로 알겠습니다!"



한 출판사에 내가 보낸 메일이다. <작가님? 작가님!>은 이경 작가가 자신이 원고투고를 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다. 출판사로부터 번번이 반려 메일을 받던 이경 작가가 배지영 작가를 글쓰기 플랫폼에서 알게 되고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출간작가와 작가지망생과 나눈 대화가 책에 나온다.

<작가님? 작가님!>이 나온 작년 11월은 내가 습작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을 때다. 써 놓은 글도 얼마 없는 데다 글 한 편을 쓰는 데도 너무 힘들어서 투고라는 것 자체가 멀게만 느껴졌다. '언젠가는 나도 투고하게 되는 날이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읽을수록 이경 작가의 간절함이 느껴져서 나도 막막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계속 거절당하다 보면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혼자 글을 쓰는데, 힘이 빠지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또 혼자 추스르고 쓰고, 투고하는 지난한 과정이 스스로를 지치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삶이 고통이라면, 글쓰기


오늘 꺼낸 책 중에 <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었습니다>가 있었다. 손명주 작가가 서울에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제주에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야기다. 3년 전 수학학원에서 이 책을 읽었다.

게스트 하우스 운영자의 삶도 직장인의 삶만큼이나 녹록지 않구나를 알았다. 객실 청소와 빨래가 이어지는 노동이었고, 문의 전화와 손님 응대로 하루 두세 시간의 집필 시간도 가지기가 어렵다는 작가의 말은 과장이 아닌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그때 내가 든 생각은 '그러니까 현재의 내 삶에 만족하고 살자'가 아니었다. 어차피 삶이 고통이라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자, 싶었다. 학원 폐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였다. 다른 건 몰라도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알았다. 조금씩 용기를 모은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마치 책이 마음 깊은 곳,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곳이 있는 곳까지 파내려갈 수 있게 해줄 거라는 듯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 눈물이 솟구쳤다. 내가 놓지 못하는 것이 뭐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쥐고 있는 거냐고, 나 자신보다도 소중한 거냐고. 어디서든 삶은 이어지고, 그 길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거라고. 그런 아우성이 울음이 되어서 터져 나왔다. 교실 한 귀퉁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내가 있었다.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본 적도,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선택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나은 선택을 해왔을 뿐이다. 전공도, 직업도, 결혼도.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자신의 꿈에, 사랑에 투신한다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나여서, 현실적인 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사춘기에도 이만큼 고민하지 않았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고, 그때그때의 적당한 흥밋거리를 찾아 기분전환을 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생각해봤다.

혼자 학원을 운영하고 남편의 도움 없이 육아를 하느라 심적, 육체적으로 소진이 된 후였다. 온 기력을 다해 애를 쓴 후에는 어떤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어떤 만족도 없었고 그저 원망과 허무함만 있었다. 외형적으로 보자면 학원은 잘 굴러가고 있었고, 아이는 건강하게 컸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앞으로의 삶의 기대가 없어졌다.

그때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해온 것들의 총체적인 결과였다. 그게 쌓여오다가 하나의 계기로 터져버린 것이었다. 남편과의 갈등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그런대로 자족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혼하면, 아이가 크면, 학원을 차리면, 학원 매출이 오르면, 집을 사면 등등 이런 것들을 하고 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들게 산을 하나씩 올랐지만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 다른 산등성이만 보일 뿐. 내가 바라는 행복도 안정도 없었다. 오를 때는 꼭대기만 보고 가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산을 올라서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다시 오를 수 없었다.

그 수많은 목표들이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건 한 번도 나였던 적이 없었다와 같은 말이었다. 평생 타인의 기대나 남이 봤을 때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취하려고 했고 그러면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내 글을 좋아할거야

20대 때 만난 남자가 연락을 해온 일이 있었다. 지역 잡지에 내 기사가 난 걸 인터넷으로 봤다고. 처음에는 반가워서 그랬나 보다 하고 통화를 했다. 그런데 그 뒤로 계속 전화를 하길래 수신 거부를 하기 직전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삶의 무료함을 나를 통해 해소할 생각하지 마라. 하지만 덕분에 과거를 떠올리는 기회가 되었다. 거기에는 안쓰러울 만치 나약해서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20대의 내가 있었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영감 같은 게 떠올라서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시간을 집중해서 글을 쓰고 다듬고 그랬다. 완성하고도 몇 번이고 읽어봤다. 누구와 대화를 한다 해도 이만큼 후련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고치다 보니 내 감정이 뭔지 알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깊이 공감받은 것 같았다. 쓰고 난 뒤에는 조금 벅차기도 하고 우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가슴에서 차오르는 기쁨, 충만감이었다.

그런 감정을 언제 느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꽤 강렬해서 이후에 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욕구불만에 시달리고만 있는 중에 배지영 작가의 에세이 쓰기 수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음마 떼는 수준으로 글을 써온 것이 책 한 권의 분량이 되었다. 1년 10개월 만에 얻은 결과였다.

메일을 확인해보니 두 개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알려 왔고, 네 개의 출판사에서 접수되었다는 메일을 보내줬다. 거절한 출판사가 이토록 빠른 회신을 한 걸로 봐서 내 원고가 딱 봐도 명백히(!) 아니다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배지영 작가가 말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좋다고 할 거"라고. 그 한 명의 편집자를 위해서 투고를 계속해야겠다. 
#원고 투고 #도전 #출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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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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