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문 대통령은 언제까지 응원만 할 건가... 간호사들은 '씁쓸'"

[인터뷰]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 간호사

등록 2020.09.04 08:36수정 2020.09.04 14:03
46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7월 3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 ⓒ 최원영


"간호사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로나19 방역에 앞장서고 있는 간호사들을 격려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간호사의 공을 치하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파업에 나선 의사들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문 대통령이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치기' 한다고 비판했다.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의료진들이 쓰러진다는 소식을 인용하며)의료진들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등의 표현에 대해선 의사들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간호사를 치켜세우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직접 '간호인력 확충, 근무환경 개선, 처우 개선' 등을 약속했다는 점은 간호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과 잦은 야간 근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던 터다.

하지만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행동하는 간호사회)는 2일 성명을 통해 "무척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면서 "말로만 간호사 처우개선은 그만하고 실행계획과 재정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속 간호사들이 지난 7월 청와대 앞으로 찾아가서 간호사들의 근무환경 개선 요구를 했을 때 무성의한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서울대병원 간호사가 청와대 앞으로 간 까닭http://omn.kr/1o3v9) (서울대병원 10년 차 간호사입니다, '덕분에 챌린지'에 화가 났습니다  http://omn.kr/1o5k5)

당시 이들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달라'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고용노동부는 '건강진단 제도' 운영,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지침·매뉴얼을 개발하고 있다' 등의 형식적인 답변만 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속으로, 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최원영 간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월 7일 세계 보건의 날에도 대통령은 간호사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계속 응원만 하면 안 된다"면서 간호사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다음은 최원영 간호사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언제까지 대책 찾기만 할 건가... 대통령 발언에서 진정성 안 느껴져"

 
a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 문 대통령 '응원' 메시지 보고 어떤 기분이 드셨나?
"간호사의 노고를 치하하는데 불필요하게 의사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 누가 봐도 속된 말로 '돌려까기' 아닌가. 그래서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정말 간호사를 위해서, 간호사들이 안쓰러워서 나온 글 같아 보이진 않았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간호사 지분이 얼마고, 의사 지분이 얼마고 따지는 것은 웃긴 거다. 다들 한창 고생 중인데 누가 더 고생하는지를 언급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아이유씨를 언급한 부분은 오히려 정부가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 아닌가. 코로나19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닌데, 얼음조끼는 정부가 준비해주는 게 맞다. 얼음조끼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텐데. 그런 상황을 보면서 정말 '말 뿐인건가' 느꼈다."

- 그럼에도 대통령이 직접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언급한 점은 의미있는 거 아닌가.
"발언이 100%라면 적어도 1%는 책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든 없든, 어쨌든 간호사들 늘어나면 환자든 간호사든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닌가. 대통령은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겠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찾아 나서기만 할 건가. 간호사들은 한두 번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모호한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았다. 정확히 '인력 부족'을 이야기했다. 뭘 더 찾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지난 4월 7일 세계 보건의 날에도 대통령은 간호사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계속 응원만 하면 안 된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야 한다. 정청래 의원과 고민정 의원이 '왜 이렇게 꼬아서 듣냐'는 식으로 말하는데, 부적절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진정성 없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 지난 7월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청와대 앞에서 간호사들 처우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는 기자회견 및 1인시위를 벌였다. 정부 반응은 어땠나?
"정부에서 저희 요구에 대한 답변을 보내왔는데(국민신문고 민원 검토 의견) 황당했다. 이를테면 '야간작업 근로자 특수 건강진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건데, 건강진단에 대한 후속 조치가 없으면, 진단 제도를 운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우울증, 수면장애가 심각해도 그만두는 것 이외에는 대책이 없다. 정작 근본적인 인력 문제 해결 대책은 답변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간호사 교육(수련) 문제가 대두되니까 신규간호사 교육제도 개편 예산에 77억 원을 써서 '교육전담 간호사 제도'를 마련하긴 했다. 하지만 국·공립병원만을 대상으로 해서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간호 인력 법제화 필요... 의료사고 막아야"  
 
a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7월 6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간호사가 코로나 전쟁의 전사'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간호사 배치 기준 강화'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 보장' '감염병 대응 세부지침 마련' '공공병원 설립'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 인력 충원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간호 인력 법제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돌볼 수 있는 업무량의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아무 제한이 없었던 게 이상하다. 한 사람이 환자 40~50명을 보면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는데, 법적인 제재가 없으니까 결국 의료사고가 일어난다. 

의료사고는 (환자가) 사고를 당하고도 모를 수 있다. 분당 차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는 내부고발 나오기 전에도 몰랐다. 또 아예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간호 인력의 숫자가 환자 사망률을 좌우한다는 통계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통계는 사실 구체적인 죽음이 누적된 숫자 아닌가. 

간호 인력이 법제화되어서 병실 별로 1인당 특정 인원 이상 담당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 운전 시 '안전 속도' 같은 것이다. 안전하게 간호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대 정원 확대, 지역간호사제를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일선 간호사들은 반대하고 있다. 왜 그런가?
"간호사는 OECD 평균 2배나 배출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OECD 1/2에 불과하다. 이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처우가 너무 안 좋다. 서울대병원도 월급이 낮은 편이 아닌데도,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다. 하물며 월급이 더 적은 지방의 경우 간호사 구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간호대 학생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다니는 학교에 부속 병원이 없는 경우에는 방학 때 실습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척추병원에서 산부인과 실습을 하는 등 사실상 학습권 침해를 받고 있는 사례도 접했다. 의료인 양성을 그렇게 해서 임상에 보내니까 현실이랑 다르고 적응도 힘들 수밖에 없다. 

간호사들이 말하는 인력 충원은 지금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당장 벽돌을 나를 사람이 필요한데 건축학과를 증원하자고 하면 말이 되나. 당장 오늘부터 '실태조사'를 해서, 코로나 병동만이라도 간호사 1인당 '몇 명'이 적당한지 계산해서 간호사 추가 채용에 필요한 예산을 정부에서 확보하는 게 더 적절한 대책이라고 본다."  

"지금은 전시 상황, 정부가 국민을 살리기 위해서 물러나야"
   
a

분당서울대병원 39 감염관리병동 간호사들이 음압병동 내에서 환자에게서 채취한 검체를 운반하고 있다. ⓒ 이희훈


-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간호사들의 업무 강도가 증가하진 않았나?
"부서마다 다르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부서의 경우, 간호사들의 업무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업무분장이 전공의로 되어있는 일들이 간호사에게 넘어왔다는이야기도 들었다. 암암리에 PA(physician assistant, 진료 보조) 간호사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면 수술이 줄어들다 보니까, 수술실 간호사들은 연차 쓰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 전공의 파업을 끝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입장인 걸로 알고 있다. 이유는? (관련 기사: 속 시원하려고 정부에 강경 대응 주문할 순 없다http://omn.kr/1oqdf)
"지금 정부도 코로나19를 '전시 상황'에 비유했다. 엄청나게 많은 환자들의 안위가 직결돼 있기 때문에 파업의 정당성을 떠나서 국민 살리기 위해서는 물러서야 한다고 본다. 수술이 50%가량 밀리는 상황, 항암치료가 연기되는 상황이 하루아침에 해소될 리 없다. 파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해 보는 환자 규모가 커진다.

의대생 국시 거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사자들 피해를 보는 것보다, 전공의가 줄어들어 사회가 떠안게 될 피해가 막심하다. 공공의대 설립 정책, 지역의사제 등은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차피 다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파업을 끝내기 위해서 둘 중 누구라도 양보를 했으면 한다."

- 파업 중인 의사들이나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꼭 개인의 '밥 그릇'과 공공성이 적대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직업윤리'의 적정선을 지켜가며 이야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의료 공공성'에 대해서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풍부한 논의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 당사자는 의사만이 아니다. 시민들도 함께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데 동의할 수 있는지, 어떤 의료 부분이 강화됐으면 좋겠는지 등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간호사 #문재인대통령
댓글4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