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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총알, 주요 왜적만 쓰러뜨렸다

[친일파 처단과 의열 독립운동 이야기 14] 의열 투쟁과 테러의 차이... '무고한 피해' 여부

등록 2020.09.10 13:18수정 2020.09.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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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자연스레 유명해진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육사의 〈광야〉, 윤동주의 〈별 헤는 밤〉,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도 그 중 한 편이다.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시인은 가을을 기도의 계절, 사랑의 계절, 그리고 고독의 계절이라고 노래한다. 가을은 한때 영화를 자랑했던 잎사귀들이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겸손해져야겠다고 기도할 수 있는 계절이다. 또 가을은 온갖 열매들이 아름답게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완숙한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계절이다.

가을은 겨울을 앞둔 시기이기도 하다. 굽이치는 바다와 같았던 혼란의 시간들과 백합처럼 화려했던 때도 어느덧 모두 지나갔다. 잠시 후면 낙엽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 홀로 앉아 있는 까마귀처럼, 나 또한 모든 탐욕과 아집을 버리고 세상을 너그럽게 바라볼 줄 아는 노년을 맞이해야 한다. 맑은 영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9월이 오면 〈가을의 기도〉 같은 시가 떠올라야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노라 자부할 수 있을 텐데, 인류의 역사는 그와 정반대로 진행된 경우도 많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9월은 〈가을의 기도〉 같은 맑은 이미지가 아니라 '9·11 테러'와 뮌헨 올림픽을 중단시킨 '검은 9월단' 등의 검은 잔혹사로 떠오른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단체 조직원들이 4대의 비행기를 납치해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를 공격했다. 테러범들은 그 중 두 대의 비행기로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을 들이박았다. 자살 테러 공격을 당한 두 건물은 충돌과 2차 폭발을 거쳐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 테러로 2800~35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에 대한 이슬람계의 반발이 테러의 원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국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그의 추종 조직 알 카에다(Al-Qaeda)를 배후 세력으로 규정한 미국은 그들을 비호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빈 라덴은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사살됐다.

1972년 9월 5일에도 세계를 놀라게 한 테러 사건이 있었다. 9·11 자살 폭파 이전까지는 이 테러 사건이 가장 유명했다. 9·11 테러처럼 사망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진행 중이던 올림픽을 잠시 중단시킨 초유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테러범들이 독일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해 2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9명을 인질로 잡았다. 무장 괴한들은 팔레스타인 극좌파 테러 조직 '검은 9월단' 소속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죄수 200여 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올림픽은 일시 중단됐다. 진압 과정에서 인질 전원이 살해되고 테러범들도 모두 사살되었다. 

없어져야 할 테러... 점점 잔혹해지고 있다

테러는 테러리즘(terrorism)의 약칭이다. 미 연방수사국(FBI)ㅔ 정의에 따르면 테러리즘은 "정치·사회적 목적에서 정부나 시민들을 협박·강요하기 위해 사람이나 재산에 가하는 불법적인 폭력의 사용"을 의미한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의 테러리즘은 "무차별적인 대량 인명 살상, 동기 불분명, 대중의 지지를 의식하지 않는 테러"로 점점 잔혹해졌다. 그래서 "뉴 테러리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주1) 전쟁은 물론이지만 테러도 없어져야 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인 1949년의 '제네바 제3협약 포로의 대우에 관한 협약'만 보아도 수긍이 된다. 협약은 "작전과 무관한 노동에 동원된 포로에게는 공정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수용국은 포로에게 급식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식량피복침구에 대해 원칙적으로 자국 군대와 대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주2)

그런데 테러는 포로도 아닌 일반 양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다. 일반 양민들은 군인도 군무원도 아닌 까닭에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포로로 수용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무슨 이유로 일반인들이 '정치·사회적 목적'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일반 양민을 학살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테러 집단은 근본적으로 옳지 않다.

테러와 의열은 어떻게 다른가

의열 투쟁은 "무고한 피해가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의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극도의 공포감 주입과 확산을 위해 무차별로 행사하는 폭력"(주3)인 테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일본만이 아니라 국내에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살인'으로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중근은 그 어느 일반 일본인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는 이토를 처단할 때 모두 여섯 발을 발사했는데, 이토에게 세 발을 명중시키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모리 야스지로, 만철이사 다나카 세이지에게 각각 한 발씩 쏘았다. 그 외 러시아 병사를 비롯해 아무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주4)
 

안중근(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게재 사진) ⓒ 국가보훈처

 
심지어 1922년 3월 22일 상해 황포탄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저격할 때에도 의열단은 일반인을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정신을 온전히 실천했다. 다나카의 몸을 뚫고 지나간 총알이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할까 걱정해 탄환에 십자를 새겼다. 총알의 회전과 속도를 줄인 것이었다.(주5) 결국 총소리에 놀라 다나카의 앞으로 쓰러진 서양인 여성(스나이더 부인)은 죽었지만 다나카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일반 형사 사건에도 정당방위 개념이 있다

의열 투쟁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일반 형사 사건에도 정당방위 개념이 존재한다.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폄훼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킨 집단의 인권만 존중하는 왜곡된 인식의 결과이다. 그것이 일본인의 주장이라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발언일 뿐이다. 만약 한국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주1) 두산 백과, 〈테러리즘(terrorism)
(주2) 네이버 지식백과, 《법률용어사전》 〈포로〉
(주3) 김영범, 〈대구인의 항일 의열 투쟁〉, 《대구항일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2020), 148쪽.
(주4) 김삼웅, 《안중근 평전》(시대의창, 2010), 226-227쪽.
(주5) 박태원, 《약산과 의열단》(깊은샘, 2015), 107쪽.
#테러 #의열 #인중근 #의열단 #9월11일 오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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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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