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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시인에 대해 궁금하세요?] 구분은 의미 없어... 할 수 있는 만큼 창작에 힘쓰면 그만

등록 2020.09.07 08:45수정 2020.09.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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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1년 차 시인입니다. 저는 2009년도에 <시인시각>이라는 계간지로 등단을 했습니다. 제 이력은 특별하지 않아서, 2016년도에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로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문학평론으로 등단을 했습니다.

박준 시인이나 이병률 시인처럼 그렇게 유명한 시인도 아니고 화려한 이력도 없지만, 11년이라는 기간 동안 문단에서 시를 놓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인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시인과 관련하여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글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 Pixabay

 
이런 생각을 한 까닭은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인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 입니다. 때로는 시인들을 대단한 사람들처럼 간주하고 있음도 발견하는데요. 그래서 시인에 대한 궁금증을 있는 그대로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다만 제가 평론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만,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우선 밝힙니다. 글은 일주일에 한 편 올릴 계획으로, 대략 5, 6회 연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2018년 가장 소득이 낮은 직업 2위는?

2018년 가장 소득이 낮은 직업명 1위는 무엇일까요. 1위는 '자연 및 문화해설사'라고 합니다. 그러면 2위는 누구일까요. 바로 '시인'입니다. 2017년 1위에 랭크되어 있었던 시인이 한 단계 자리를 바꾸어 자리했습니다.

평균소득 낮은 직업 최기성외 1명, <2018 한국의 직업정보>, 한국고용정보원, 2020, 90p ⓒ 주영헌


이 자료는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노동부 산하기관으로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기관입니다. 매년 직업별 소득 조사도 하고 있고요. 분명히 맞는 자료이지만, 그렇다고 적확(的確)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료도 아닙니다.

통계란 다수(전수조사)를 전부 조사할 수 없음므로 보통 표본(sample)을 뽑아 표본조사를 하게 됩니다. 이 표본을 어떻게 얼마만큼 뽑았느냐에 따라 조사의 신뢰성도 높은데요, '2018 한국의 직업정보'(한국고용정보원, 2020)의 요약에 따르면 '600여 개의 직업의 재직자 1,871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다고 합니다. 이 숫자를 나누면, 약 30명이라는 인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정보를 그대로 믿기에는 표본 자체가 적을 뿐더러, 특히 소득의 경우 편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의 경우 하위 25% 이하는 소득을 200만 원이라고 대답했고 상위 75% 이상은 2,000만 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상당히 편차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응답자 수가 적기 때문에 박준 시인이나 이병률 시인과 같은 시인 한두 명이 조사대상에 들어갔다면, 평균소득이 늘어날(왜곡)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자료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직업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만, 일부 직업의, 특히 '소득'만큼은 데이터 왜곡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시인을 직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인을 직업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시인은 직업이 있고, 그 직업을 통해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만 쓰는 시인을 부를 때 '전업 시인'이라고 부르는데요, 전업 시인은 그 숫자가 소수일 뿐더러, 현실적으로 시만 쓰며 살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 한 편당 고료도 적을 뿐더러 청탁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고료는 소규모 출판사의 경우 5만 원 내외이며, 대형 출판사의 경우 10만~20만 원 내외입니다. 시만을 발표해서는 적절한 소득 자체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고료 말고 시집의 인세를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시인들은 인세를 10% 받습니다. 1만 원짜리 책을 한 권 팔면 1천 원이 인세입니다. 그렇다면, 천만 원의 인세를 받기 위해선 몇 권의 책을 팔아야 할까요. 1만 권입니다.

1쇄를 1천 권으로 생각했을 때, 1만 권을 판다는 얘기는 10쇄(쇄당 1천 권)를 찍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판매되는 시집이 얼마가 될까요? 대중적으로 유명한 시인 몇 명을 빼면, 손에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료와 인쇄를 제외하면, 강의입니다. 대학에서나 예고, 사회교육원, 동사무소나 문화센터 등에서 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시인의 소득에 이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강의나 특강이 거의 막혀 버렸지만, 보통의 전업 시인을 지탱해 주는 일이 강의일 것입니다. 이런 일 말고는 심사나 산문 기고 등과 같은 단발적인 일일 것입니다.

위의 일만으로 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요. 소수를 제외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다른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들의 직업은 다양합니다.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직업을 갖는 경우도 많지만, 그 반대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시인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인들은 시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교육계(학교 선생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고, 출판계에 종사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런 직군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다른 직업군보다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업 시인으로 시만 쓰고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선언을 했을 것이고, 그렇게 자신만의 문학적 가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겠죠. 하지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것이죠. 저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시인이 직업인가 아닌가를 나누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규정하려는 행위일 뿐입니다. 규정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하는 일의 의미가 바뀌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 두 번째 글 예고 : '문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덧붙이는 글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yhjoo1 에도 추후 올립니다.
#시인 #평균소득 #한국고용정보원 #주영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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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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