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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3시, 호주에선 사제 간 게임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글쓰기 수업 시작...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하는 교육 진행

등록 2020.09.13 20:34수정 2020.09.1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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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호주로 이민 온 한국인 학부모의 호소는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 unsplash

   
"한국 교사들이 그리워 죽겠어요. 여기 교사들은 도대체가 알파벳이고 산수고 뭘 가르치지를 않아요."
 

호주에 이민을 오고 일주일 만에 아이를 집 근처 유치원에 넣었다. 이때 만난 한국인 엄마가 나를 잡고 하소연을 했다. 유치원 교사에게 아이들에게 인지 교육 좀 해 달랬더니, "지금은 놀이 중심, 몸으로 배우는 교육과정이 필요한 시기"라며 다음날 이에 관한 근거 자료를 한 움큼 뽑아다 주며 읽어 보라 했단다. 그가 말했다. 

"한국 사는 제 친구 애들은 벌써 한글을 떼고 한문도 배운다는데, 호주 사는 우리 애들은 마냥 놀기만 하니 어떻게 하냐고요."
     
놀랍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생각은 이토록 차이가 난다. 나는 그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한국의 교사였으나,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교사란 직업을 내려놓았다. 내가 원하는 교육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내 아이가 남들보다 잘나고 앞서기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교육을 해주면 족했다. 교육이 삶과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닮아가고자 시도하는 교육을 꿈꿨다.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춰 설계된 교육과정대로,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와 경쟁을 일삼지 않으면서도 교육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 호주로 넘어왔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호주 교사들을 얕잡아 본 면이 없지 않다. 내가 평생 겪었던 교사로서 하루와 호주 교사의 하루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 보였다. 한국 학교의 입학 초기와 개학식 날 그리고 학기 말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입에서는 단내가 폴폴 풍기고, 온종일 종종댄 발바닥은 식은땀으로 눅눅해지기 일쑤였다. 

반면 호주 교사들은 일 년 내내 여유가 있고 상냥하고 안정적이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판단했다. 한국의 교사들처럼 열심히 가르칠 필요도 없고, 부모들의 학구열도 한국만큼 높지 않고, 직업의 귀천도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니 교사들도 설렁설렁 가르치면 될 것이라고. 

온라인 수업 통해 교육 전문가임을 재확인하다

아이가 학년을 올라가면서 점점 호주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아이가 초등 1학년 때 일이었다. '교사-학부모 상담 시간'에 교사는 아이가 쓴 쓰기 과제를 보여주며 아이의 리터러시 능력(읽기와 쓰기, 넓게는 의사소통 능력)의 학업 성취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아이는 벌써 정보 제공의 글쓰기(Informative Writing)와 절차적 글쓰기(Procedure Writing)의 특징과 형식을 배우고, 이에 맞춰 짧지만 완성된 글들을 작성하고 있었다. 먹은 게 살로 갈 시간이 없게 운동장에서 뜀박질만 시키고 활동 위주의 교육만 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가르치는 게 없다'라는 소리를 주변 지인들로부터 자주 들어 기대치가 낮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시작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은 교사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교사들의 자질과 역량을 학부모 앞에 온전히 내보이는 시간이 되었다.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 되면서 부모들의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부모들의 지원 여부에 따라 학생들 간의 학습성취 간극이 벌어지자, 아이 학교는 새로운 방안들을 도입했다.

온라인 속에서 점심시간(Virtual lunch time)을 기획해서 담임과 대여섯 명의 아이를 그룹으로 묶어 서로 소통하게 독려했다. 아이의 학교는 학습이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를 채용하고, 소규모 그룹으로 온라인 수업시간을 따로 책정했다. 또 장애아동이나 취약 계층의 아이 중 희망자를 위해 긴급돌봄 교실을 운영하며 정규교사와 보조실무사를 팀으로 묶어 아이들을 지원하도록 했다.

심지어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아이 담임은 아이들을 격려하는 차원과 온라인 수업 지원으로 지친 학부모들을 위해 자발적인 돌봄을 자처하고 나섰다. 면대면 수업에서 수학과 병행해 진행하던 '마인크래프트 교육용 버전'으로 희망하는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 
     
초1 때부터 시작된 글쓰기 수업... 기초 튼튼히 하는 교육
  

온라인 수업에 지친 부모와 학생들을 위해 담임 교사가 금요일마다 희망자를 받아서 온라인으로 학급 '마인크래프트 교육용 버전'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 이혜정

   
'호주에서는 본인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말로 표현하고, 글로 논리정연하게 쓸 수 없으면 대학 입학도 어렵고 대학 졸업도 어렵다.'
  
호주의 초등학교는 텀(보통 10주, 1년은 4텀으로 구성)마다 다양한 쓰기 장르 중 하나를 선택해서 매주 내용을 확장하고 체계적으로 구조를 가르친다. 초등 3학년인 아들은 이미 서론-본론-결론으로 이루어진 다섯 문단의 설득하는 글쓰기(Persuasive Writing)를 이해하고 한편의 글을 완성해 낸다. 

초등 1학년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한 설득하는 글쓰기는 졸업 때까지 매년 이어질 것이고, 아이들은 본인 생각과 논리를 담은 한편의 글들을 매년 써낼 것이다. 올해 다 이해를 못 했어도 내년에 또다시 가르칠 것이고 후년에도 또다시 배울 것이다. 단지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주제가 깊어지고 분량이 길어지고 내용이 심화할 뿐이다. 교과서가 없는 대신 쓰기를 위한 읽기 자료는 도서관에 비치된 호주를 비롯한 전 세계 작가들의 그림책, 동화책, 만화책 그리고 일상 속의 모든 활자로 된 자료들이다.
   
협동해 가르치는 민주적인 교육 자치의 실현

  

서론 -본론 -결론, 5문단으로 이루어진 설득하는 글쓰기. 아이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파업중인 의자를 설득하는 편지글과 접목한 형태의 글쓰기 교육. ⓒ 이혜정

 
'못 배울 나이는 없다. 아이 수준에 맞게 재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할 뿐.'

호주의 교육은 유치원에서 만난 지인이 염려했던 것처럼 '안'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한국과는 '다르게' 가르치는 것이다. 어려서 못 가르치고 못 배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하는 노력과 능력이 필요할 뿐이란 것을 호주 교사들을 통해 배운다. 호주 교육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소박하나 학생들의 실제 역량을 키우는 기본에 충실하고 정직한 교육'이다. 

호주 교육의 속살을 이해시키고 더 이상 호주 교사들을 오해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점, 온라인 수업이 내게 준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온라인 교육 #호주교육 #호주의 쓰기교육 #호주이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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