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된 인생, 알랭 올리비에를 아십니까

[마초의 잡설 2.0]

등록 2020.09.07 15:52수정 2020.09.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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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은 때때로 정의롭지 못한 그림자와 함께한다. 캐나다 연방경찰(RCMP)은 공명심 때문에 자국민을 타국에서 옥살이까지 시켰으나, 지금까지 진실을 감춘 채 책임지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 사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죄수 번호 482/33 알랭 올리비에의 방쾅 중앙교도소 죄수증명서. 상반신 사진과 지문이 첨부됐다. ⓒ Alain Olivier 대표홈페이지

 
1987년 알랭 올리비에(Alain Olivier)는 캐나다 퀘벡 한 어촌에서 껄렁대던 20대의 삼류 '약쟁이'였다. 그는 어느 날 함께 어울리던 약쟁이 낚시꾼으로부터 마약판매업자란 사내를 소개받은 뒤 인생이 통째로 뒤틀려 버렸다.

그 사내는 캐나다연방경찰 마약단속반 짐 거들스톤(Jim Girdlestone)이었다. 오랫동안 경찰의 정보원이었던 낚시꾼은, 알랭을 '마약 밀수꾼'이라며 경찰인 짐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짐은 알랭의 전과를 조회한 뒤, 상부에 알랭이 거물 마약 밀수꾼이라고 보고한다.   

짐은 알랭과 1년 넘게 접촉하며 마약을 구해오도록 닦달했다. 짐은 '정보를 누설한 동료를 죽였다, 태국에서 더 많은 헤로인을 밀수하자' 등등을 말하며 알랭을 협박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돈까지 빌린 알랭은,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태국에 가기로 한다.

1989년 2월, 마약단속반은 태국 경찰과 마약 공조수사를 승인받는다. 짐과 데릭 플래나건(Derek Flanagan) 등 네 명은 알랭과 함께 태국 차망마이로 떠난다. 알랭은 며칠간 태국 마약상과 접선했다. 그들은 알랭과 마약상을 호텔 방으로 유인해, 흥정한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한다.

그해 2월 20일 밤, 알랭과 일행은 마약상과 다시 접선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달리는 픽업트럭 위에서 마약을 뺏는 몸싸움이 벌어지며 조수석에 있던 짐의 권총이 발사됐고, 또 다른 경찰 데릭이 도로로 떨어졌다. 현장에 잠복했던 태국 경찰들이 달려와 마약상과 알랭을 체포했다. 데릭은 머리에 총을 맞고 떨어지며 목도 부러져 즉사했다.   

알랭은 살인 혐의를 받았다. 알랭은 살인과 마약밀수 등 혐의로 태국 법에 따라 기소돼 태국 법정에 섰다. 외국에서 경찰관이 죽은 사건이 캐나다에 알려지자 빅터 매라렉(Victor Malarek)이란 기자가 구치소로 알랭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게 '함정 수사'였다는 사실을 토론토 더 글로브 앤 메일(The Globe and Mail)지를 통해 보도했다. 
 

타 수감자와 법원에 출두하는 알랭. 방쾅 중앙교도소 모든 수감자는 24시간 발목에 족쇄를 찬다. ⓒ Alain Olivier 대표홈페이지

 
알랭은 3년 넘는 재판 끝에 결국 마약 2.4Kg 밀수 유죄를 인정해 40년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유죄를 인정 안 하면 총살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악명 높은 태국 방콕 외곽의 방쾅 중앙교도소(Bang Kwang Central Prison). 대부분 사형수와 장기수인 태국인, 외국인 수감자는 발목에 족쇄를 찬다. 수천 명이 넘는 흉악범들과 마약, 살인, 위협, 폭력, 부패 등이 공존했다.

알랭은 빅터 기자에게 용기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캐나다로부터 잊히고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이 될까 봐 불안해했다. 돈 없으면 음식도 못 먹는,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과 싸웠다. 빨리 캐나다로 송환되는 게 그가 움켜쥐고 있던 희미한 희망이었다.  


뜻밖의 상황... 살인자 혐의 받던 알랭은 쌍둥이였다 

1987년 9월 21일. 캐나다연방경찰 작전명 'Deception(속임수)' 기밀 서류엔 알랭을 지문번호 569515B, 1A 등급 중요 마약 밀수범으로 기록했다. 지문은 쌍둥이 형 것이었고, 알랭은 전과가 없었다. 전과 조회에서 성(姓)과 생년월일만 입력하고 알랭 쌍둥이 형의 사진과 기록이 뜨자 알랭을 그 형으로 오인한 것이다. 1989년 9월 방콕주재 캐나다 경찰주재관은 알랭의 전과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본부에 알렸다. 그리고, 1992년 1월에서야 밴쿠버 마약반은 본부에 알랭과 쌍둥이 형의 지문번호가 다르다고 보고했다.

1997년 8월, 알랭은 드디어 8년 6개월 만에 가석방돼 캐나다로 송환됐다. 그리고, 얼마 후 퀘벡의 한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2000년, 알랭은 캐나다연방경찰과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경찰이 전과 기록도 없고 지문도 다른 자신을, 경찰이 쌍둥이 형이라고 단정해 함정수사에 끌어들여 희생자로 만들었다며 4천만 캐나다 달러(약 360억 원) 민사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법원이 기각한다.

2008년 퀘벡 항소법원도 정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결해 또 기각한다. 알랭 측은 태국 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알랭은 '작전 중 그를 총으로 쏜다'는 경찰 쪽지도 공개하며, 정부가 은폐된 진실을 명확히 밝히라고 호소했다. 그는, 태국에서 사망한 경찰 데릭은 자신이 쏜 게 아니라 같은 경찰 동료의 오발 된 총에 맞아 죽었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경찰 짐은 경찰에서 은퇴했지만, 알랭이 고소한 사람 중 하나다. 아직도 알랭이 먼저 태국 마약밀수를 제안했고, 데릭은 트럭 위에서 떨어지는 충격으로 목이 부러져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연방경찰 순직자 명부엔, 186번 경관 데릭 플래나건(36세) 이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특수 임무 중 입은 부상으로 순직. 1989년 2월 20일"이라고 적혀 있다. 아내 피오나는 장미꽃을 해변에 놓고 31년 전 태국에서 순직 후 표창장을 받은 남편이자 세 자녀 아버지인 데릭 플래나건을 추모하고 있다. 그녀는 데릭의 명예를 알랭이 변질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알랭의 소송을 기각한 법원을 지지했다.   

빅터 기자는 알랭에겐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캐나다로 돌아오지 못했고, 결백을 위해 싸울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빅터는 경찰의 불법적인 함정수사, 마약 구매, 협박, 태국 경비 지급, 감옥 생활 등 알랭의 사실관계를 보도하면서 신문사에서 쫓겨도 났고, 그럼에도 계속 사건을 취재했고, 법원에서 경찰에 불리한 증언을 해 한동안 가족까지 살해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현재, 72세인 빅터는 캐나다 CTV 방송국의 W-Five 시사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알랭 올리비에, 빅터 매라렉, 다니엘 러비. 빅터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 Alain Olivier 대표홈페이지

 
영화배우 겸 감독인 다니엘 러비(Daniel Roby)도 알랭에겐 은인이다. 그는 우연히 빅터의 사건 기사를 보고 알랭과 만난다. 그리고, 알랭의 사연을 영화로 구상하며 재판도 참관하고, 15년 넘게 자료를 수집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제작비가 부족하자 제작진도 급여를 반납하며 영화로 만들었다.

촬영은 캐나다와 태국에서 이뤄졌다. 태국 교도소 장면은 5년 전 폐쇄한 태국의 실제 교도소에서 전직 수감자 350여 명을 모아 촬영했다. 주인공 알랭도 (영구 입국 금지된) 태국을 제외하고는 항상 촬영장에 함께 있었다. 조쉬 하트넷, 안토니 올리버 피론, 짐 개피건, 스티븐 맥하티 등이 주인공이다(알랭 올리비에 홈페이지 보기).

이 영화는 올해 초, 어렵게 개봉 준비를 끝냈지만 코로나 사태로 상영이 미뤄졌다. 현재 북미에서는 '타겟 넘버 원(Target Number One)', '지명수배(Most Wanted)'이란 타이틀로 150개 넘는 스크린에 걸렸다. 전 세계 개봉은 올 11월쯤일 것으로 보인다.

2016년 7월 캐나다 대법원은 사건번호 35284, 알랭 올리비에의 캐나다법무부장관 민사소송 건을 법리적으로 검토한 끝에 심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알랭은 퀘벡주(州) 한 농장에서 채소를 재배하며, 자서전 '방콕의 죄수(Prisonnier à Bangkok), 굿 럭 프렌치(Good Luck Frenchy) 후속편을 집필한다. 그는 역경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누군가 억울한 희생자가 될 때마다 사회 전체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한다. 20년간 캐나다 법원과 진실 공방을 위한 그의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자서전 표지. 영어 및 불어판으로 나왔다. ⓒ Alain Olivier

 
캐나다연방경찰은 1989년 '속임수' 작전 직후, 참가했던 네 경찰관 등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왜 논란이 많은 사건에 급히 상을 주었냐는 질문에 이들은 과거의 전례와 시상기준에 부합하는 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알랭 올리비에 소송에 대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더는 논평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알랭 올리비에, 다니엘 러비, 빅터 매라렉, 캐나다법원, 캐나다연방경찰, 국제마약관련기관과 이메일 인터뷰, 정보공개 서류, 기록 및 언론 보도 등 사실 확인을 바탕으로 이 기사를 썼다.
#조마초 #캐나다 #태국 #마초의 잡설 #MAC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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