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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 단결권' 되찾는 데 7년, 그건 너무 길었다

전교조 합법 지위 회복에 대한 퇴직 원년 조합원의 감회

등록 2020.09.07 12:04수정 2020.09.0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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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대법원은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 대법원

 
오늘 새벽, 잠에서 깨어나면서 손을 뻗어 머리맡의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5분. 새로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내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문득 며칠 전에 확인한 1989년 해직 동료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상식의 회복' 앞에 모두 담담하다

대화방에선 뇌를 수술하고 정양 중인 내 띠동갑 일흔일곱 살 김 형님의 근황에 쾌유를 비는 후배들과 수도권으로 옮겨가 근무하다 최근 공모 교장으로 초빙된 동료 여교사에 대한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작 지난 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하다'는 대법원판결 소식은 누군가의 '노조 승리!' 외마디에 익살스러운 이모티콘 몇 개가 달렸을 뿐이었다. 

글쎄,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이 판결의 의미에 대해서 모두 담담하기만 했다는 얘기다. 4일 판결에 이어 전교조 위원장에게 왔다는 노동부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 처분 취소" 공문 소식도 나는 심드렁하게 들어 넘겼다. 

글쎄, 백번 양보해도 '상식의 회복'일 뿐인 사안에 대해서 담담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의 심사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고용노동부가 '노조 아님을 통보'하던 일곱 해 전 10월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에서 '학교는 평온하다'고 썼다. (관련 기사 : 24년 뒤에 출생신고서 회수… '꿈'이 선명해졌다)
  
그해, 단 아홉 명의 해직 조합원에 대해 노조원 자격을 배제하라고 요구한 정부에 6만여 조합원 교사들은 조합원 총투표에서 해직 동료를 안고 가겠다고 결정했다. 조직을 건사하는 결정을 내릴 거라고 보았던 조직 활동가들의 당혹해하는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 대중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조합비만 내는 무심한 조직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을 투표로 증명한 것이었다.

2016년 1월, 2심에서도 패소함으로써 전교조는 창립 27년, 합법화 17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되돌려졌다. 6만여 조합원 가운데 열 명 미만의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음을 '위법'하다며 이 나라의 명민한 법률가들은 역사적 진보의 물줄기를 되돌린 것이었다.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법외노조로 출범했다. 사진은 결성식 장면. ⓒ 전교조



그리고 한 달 뒤에 나는 서른 해 넘게 일하던 교단을 떠났다. 1989년 햇병아리 교사로 전교조 창립 조합원으로 참여해 해직되었다 복직한 지 22년 만이었다. 언젠가 나는 전교조가 젊음의 한때를 바친 사랑이었고, 실천이었으며, 냉소적 낭만주의자였던 국어 교사를 역사와 삶의 격랑으로 인도한 사랑이었다고 고백했었다. (관련 기사 : 서른넷 풋내기였던 나, 학교에서 잘리다)


'법외노조'로 출범한 전교조, 다시 '법외'로

그러나 풋내기 교사 시절에 전교조 창립에 동참한 이래 10년 동안의 법외노조 시대를 끝내고 합법노조로 누린 세월은 고작 17년, 나는 다시 법외노조의 조합원으로서 교직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것은 공식적으로 법외노조지만 그 조합원 자격을 잃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덧 전교조가 나의 조직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낯설고 아득해지곤 했던 퇴직 무렵의 기억조차 아쉬워지는 퇴직 4년 차다. 퇴직하면서 블로그에 올린 글 '31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에서 나는 그렇게 썼다.
 
"분노하기엔 우리가 겪은 세월이 참 무상합니다. 그것 말고도 분노하고 통탄할 일이 한둘이 아니니 차라리 실소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민주주의 원칙도, 여하한 시민의 상식도 권력의 의도와 복심을 넘지 못하는 이 뒤집힌 현실 앞에서는 말입니다.

남은 동료 조합원 교사들이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직을 떠날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은 교사들은 다시 조합원으로서 일상을 지켜갈 것입니다. 1989년 5월 전교조 출범 이후 모진 탄압 속에서도 의연하게 조직을 지켜온 것처럼 말이지요.

1천5백여 명이 넘는 교사들을 내쫓은 1989년의 대규모 해직사태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늠름히 살아남아 10년 만에 합법화의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오만하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권력이 잠시 역사의 물길을 거스르긴 했지만, 이 퇴행의 역사는 절대로 오래가지 않을 터입니다."
 

2013년 10월 19일 서대문독립공원 근처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교사가 '참교육 한길로 당당하게'라고 쓰인 알림판을 들고 있다. ⓒ 장호철



어쨌든 노동부 통보 이후 7년, 내가 학교를 떠난 지 4년 만에 전교조는 다시 합법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합법화에 걸린 10년에 비기면 7년의 세월은 짧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법률 시행령에 기대어 내린 전 정권의 전횡과 뒤이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은 대중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고, 그 상식이 회복되는 데 7년이 걸렸으니 그건 오히려 10년보다 길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모든 불합리와 모순의 원상회복이 시급하게 이루어질 거라고 본 사람들의 기대는 꼼짝없이 어그러졌다. 그것도 조직의 합법 지위 회복 앞에서 동료들이 담담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넘어 대법원이 10:2로 원심을 파기한 것은 어쨌든 역사의 진전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축하하려면 얼마든지 축하할 만한 일이건만, 나는 무심히 며칠을 보냈다. 1989년에 함께 해직되었던 오래된 벗들과도 따로 통화하지 않았다. 해직 상태에 있던 후배 교사들이 학교로 돌아가고, 오래 중단된 단체교섭도 서둘러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의 과제, '정권은 짧고 노동은 영원하다'

이 상식의 회복에 다시 딴지를 거는 보수 정당과 언론의 존재는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 시민단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를 환기해 준다. '대법원의 정권 코드 맞추기', '정치적 결정'이라는 등의 딴지는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의 본질은 법리가 아니라 색깔론"(한겨레) 앞에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러나 이 오랜 색깔론도 전교조가 극복해 나갈 과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조합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 즉 임금 인상을 위해 파업을 불사하는 일반 노동조합과 달리 전교조에 단체행동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교조가 여러 방식으로 표명한 주장 가운데 경제적 지위와 관련한 부분은 거의 없다. 

오히려 교육의 다른 주체들, 학생과 학부모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교육적 모순을 해소하려는데 집중해 왔다. 이는 신문과 방송을 포괄한 언론노조, 과학기술 노동조합, 진보적 의사와 변호사들의 단체 등이 그런 사회적 공기로서 구실을 다하려 하는 이유와 맞닿는다. 

최근,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인데도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며 항변하지만, 그것은 저들의 파이가 주는 데 대한 반발이라는 시민들의 상식적 이해를 넘지 못한다. 

정부와 의협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전공의와 의대생이 파업을 이어간다고 하는 소식 앞에 나는 분노를 넘어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의사들이 자기 이해가 아니라 코로나19가 환기한 공공의료의 보완이라는 시대적 명제를 내걸고 휴진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요구하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교조 위원장에게 보내온 공문. 제목은 '노동조합 아님 통보 취소 알림'이라 적혀 있다. ⓒ 노동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앞서 정양 중인 김 형님이 카톡으로 노동부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 취소 알림" 공문 이미지를 보내왔다. 왜 그걸 보내주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공문 아래에 고용노동부 장관의 직인이 선명하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한 나라의 행정은 지속성과 일관성을 갖추어야 마땅하다. 어느 날, 다시 정권의 이해와 인식에 따라 이 통보가 뒤집힐 날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앞의 기사에서 썼듯 "정권은 짧고, 사람들의 삶과 노동은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전교조 합법 지위 회복 #대법원 판결 #고용노동부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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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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