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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부동산은 정권의 '무덤'이 되었다

[부동산은 있고 주거는 없다 ①] 한국 주거정치의 기원

등록 2020.09.08 13:51수정 2020.09.0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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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동산 대책은 왜 중산층 대상 서울 수도권 아파트 임대차 시장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지 주택시장의 형성과 기원에서 그 역사-구조적 맥락을 살피고, 이를 둘러싼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재구성 되는지 짚어본다. 나아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단기대응을 넘어 새로운 주거체제를 모색한다. - 참여사회 [편집자말]

참여사회 9월호 특집 '부동산은 있고 주거는 없다' ⓒ Unsplash


문재인 정부 들어 23번째 부동산대책이 나왔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아직 싸늘하다. '역대급', '초강력' 대책이란 반복되는 평가에도 문제가 풀리리라는 기대는 별로 없다. 이렇게 커진 정책 불신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1967년 '부동산투기억제에관한특별조치세법' 제정을 시작으로 1978년 '8.8 부동산투기억제대책'을 거치며 등장한 수많은 대책 뒤의 결과도 실은 비슷했다.

기대 효과와 실현된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커다란 간극은 일시적인 정책 실패나 투기 세력의 저항과 같은 단편적인 이유를 넘어, 문제를 일으키는 구조의 심연을 묻게 한다. 거듭된 공전을 일으키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국의 주거 문제를 성찰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 특유의 주택공급 방식이다. 그것이 만들어진 기원은 1970년대의 산업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정부는 가용자원 대부분을 경제성장과 중화학공업 투자에 쏟아붓는 성장전략을 택한 나머지 사회서비스에 활용할 자원이 적었다.

이에 민간자원을 끌어모아 집을 짓는 질서가 차츰 만들어졌다. 취약한 재정 투자를 가계와 건설사의 돈으로 메우는 자금 동원책이 그 출발점이었는데, 이러한 목적에서 탄생한 게 주택도시(국민주택) 기금(채권)과 청약 저축, 선분양제 등이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돈을 댄 이들로서는 당연히 그 대가를 바란다는 점이다. 이에 대형 건설사에 독점이윤, 주택 소유자들에게 자본이득(개발이익)을 보상하는 형태로 재정부담 없는 주택공급을 꾀하는 질서가 마련된다. 정부와 대형 건설회사, 주택 소유자들 사이의 특별한 이해의 주고받음 속에서 집을 공급하는 구조가 아래처럼 자리 잡는다.
 

출처 김명수, <내 집에 갇힌 사회 : 생존과 투기 사이에서>, 창비(2020), 83쪽 ⓒ 참여사회

 
민간자원에 기댄 주택공급의 역설

여기까지만 보면 주어진 여건에 적합하면서도 모두가 이익을 보는 '윈-윈 게임'의 원천인 것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 구조에는 결정적인 모순이 감춰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집값 상승과 극심한 사회 갈등이다. 개발이익의 분배를 통해 민간주체들에 보상하는 공급체계의 성격상 집값은 계속해서 올라야 하고, 이는 결국 주거비의 상승을 부른다. 

보상만 좋으면 뭔 상관이냐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혜택을 입지 못하는 다수는 늘 넘쳐났다. 특히나 내 집 마련에 실패한 사람들, 그래서 가족의 생계 안전망이자 재산형성 수단으로 이를 이용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은커녕 안정된 주거를 누리기조차 힘들었다. 주택 분양제도를 둘러싼 마찰이 끊이지 않는 게 당연했다. 

예를 들어, 국가 프로젝트나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특수집단이나 중상층 이상의 소득집단을 우대하는 식의 불공정한 분양 절차를 놓고는 원성이 자자했다. 겉보기엔 매력적이지만 사실 부담과 수혜가 일치하지 않는 불평등 구조였기에, 이 같은 교환관계를 고치라는 요구도, 여기서 비롯된 분배 갈등도 큰 게 당연했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를 때에는 온 사회가 불화에 휩싸였다. 그럴 땐 주된 수혜자들 사이의 이해대립뿐만 아니라, 소외된 외부자들의 저항도 폭발했다. 이때 정부는 개발이익 창출과 집값 안정이라는 상충하는 목표를 함께 달성해야 하는 이율배반에 빠져야만 했다. 부동산이 역대 정권의 '무덤'으로 인식돼온 연유다.

주거를 둘러싼 거대한 불화 안에는 민간자원에 기댄 공급구조에서 비롯되는 갈등 요인들이 뒤엉켜 있다. 첫째, 투기 건설 중심의 공급환경에서 건설사의 이윤은 정부의 가격 정책과 개발정책, 이를테면 택지가격과 주택 분양가격에 관한 규제, 도시재생사업과 신규 개발사업과 관련된 정책에 의해 제한받는다. 정부와 건설업체 사이의 갈등이 이렇게 생긴다.

둘째, 서로가 나눠가질 개발이익 몫을 둘러싼 공급자 내부의 갈등도 있다. 공공 개발기구와 민간 개발업자, 건설업자 사이의 경쟁, 나아가 대형 건설사가 우위를 점하는 시장구조에 대한 중소 건설사의 반발도 출현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셋째는, 주택 소유로 얻을 자본이득의 배분과 관련된 마찰, 특히 소유 편중과 부의 이전을 놓고 벌어지는 아주 복잡한 갈등 관계다. 안정된 주거를 누리지 못하는 무주택 세입자들의 불만이 그 밑바탕이 되지만, 그들이 갈등을 빚는 상대는 (다)주택(부동산) 소유자나 개발/건설업자, 정부 등으로 다양하다.

갈등의 초점 역시 소유 기회를 제한하고 집값 상승을 부를 수 있는 모든 제도, 청약·분양 자격과 분양가, 전매 절차 등을 관장하는 분양제도, 대출 자격과 금리, 상환조건 등과 관련된 주택금융 제도(정책), 소유 독점 및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규제하는 부동산 세제와 개발이익 환수 제도 등을 아우른다. 

다만, 여기서 유의할 것은 문제를 무주택자와 (다)주택 소유자의 대립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공급 질서가 갖는 정말 특이한 점은, 여기서는 가계가 평범한 주택 소비자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투자자로서 자본이득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내면화한다는 사실이다.

당장 집이 없는 세입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 역시 예비 소유자로서 미래의 혜택을 고대하고, 막상 내 집을 마련한 뒤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난했던 소유자들의 행태를 따라 하곤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놓인 시장 위치에 따라 복잡한 이해충돌과 경쟁이 주거계층들 사이에 펼쳐진다. 

만성적 불화, 그러나 무력한 정치

깊고 첨예한 대립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고리 자체를 끊는 노력은 별반 없었다. 기성 구조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는 전제 아래 그때그때 제기된 문제에 대처하는 정책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민간자원에 기댄 투기적 공급구조가 허용하는 관성 범위 안에서 경기 여건이나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 시장 안정화(규제강화)와 활성화(규제완화)를 오가는 정책들이 반복됐다.

집값 폭등으로 주거난과 사회 불안이 극심했던 노태우,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토지공개념 3법과 종합토지세, 종합부동산세의 도입으로 대변되는 세제 강화와 분양가 제한정책, 주택공급규칙 개정을 통한 분양 합리화 조치 등이 나타났다.

반대로 IMF 사태와 세계금융위기로 침체 국면에 들어간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분양가 자율화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민간임대 활성화, 부동산 조세 및 부담금의 감면·축소 등의 정책이 추진됐다. 흔히들 말하는 정권 이념의 차이는 오히려 주변적인 변수에 불과했다. 

달리 보면, 주택(부동산)정책은 대개 경제정책의 일부로 활용됐다.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으로 주택의 대량공급이 본격화된 1980년대 말 이후에도, 주택정책의 위상은 주택산업 육성(공급 확대)과 경제의 안정화/활성화라는 산업정책, 경기정책의 실행 수단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거 불안으로 정권 위기의 전망이 점쳐질 때마다 영구임대니, 국민임대니 행복주택이니 하는 공공임대주택 건설계획 및 전·월세 지원책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이것도 대개 미봉책에 그쳤을 뿐 주거복지의 버팀목이 되지는 못했다.

그 단적인 증거가 1980년대 말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공공임대주택 비중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정책적 의미의 주택정책, 다시 말해 주거생활의 안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부 정책은 아직도 요원하다.

'내 집 마련'을 통한 생계 혹은 생존의 기회를 일부에게만 열어줌으로써, 사회 안정의 기반 세력인 중산층으로 이들을 육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일부라는 – 그나마도 경제정책적 고려에 딸린 – 제한된 의미가 우리에게는 훨씬 친숙하다.

우리 사회에 펼쳐지는 내 집을 둘러싼 '만인의 투쟁'은 민간자원에 의존한 이 투기적 공급 질서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들은 구조를 바꾸거나 고치는 대신, '공급확대'나 '집값안정', '투기근절'과 같은 제한된 목표만을 주창해왔다. 그러한 정책들로는 문제 발생의 근원을 끊어내기도, 반세기 넘도록 적응하며 살아온 주체들의 반발을 돌파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어렵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 역시 이러한 각도에서 평가해 볼 수 있다. 대안적 구조 형성으로 나아갈 실마리는 있는가, 여태껏 있어왔던 정책의 한쪽 끝단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명수님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 <내 집에 갇힌 사회> 저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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