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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2500m 심해에서 인간의 운명을 보다

[김해동의 투모로우] 열수 생태계와 인간 생존의 조건

등록 2020.09.22 08:02수정 2020.09.2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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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적정한 기후환경에서만 살 수 있다. 기후조건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변하면 지금의 기후조건에서 번창한 모든 생명체는 멸종을 피할 수 없다. 기후변화를 모르면 그 변화를 조절할 힘(기술)도 가질 수 없다. 제대로 모르는 자연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극이 싹튼다.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에 우리는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기후변화가 브레이크 없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기후재난을 겪게 될까? '김해동의 투모로우'에서 이런 문제를 다뤄본다.[편집자말]
해양 표층에서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으로 성장해 개체 수를 늘려간다. 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고 동물성 플랑크톤을 어류가 먹는다. 어류를 피해 살아남은 동물성 플랑크톤이 수명이 다해 죽으면 해저로 낙하하는데 여러 플랑크톤이 엉겨 붙어 하얀 덩어리를 이뤄 내려간다. 이 모습이 마치 눈처럼 보인다 해서 '해양의 눈'(마린 스노 marine snow)이라고 한다.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해저에서는 광합성이 불가능해 식물성 생물이 없다. 이 때문에 심해 생물들은 주로 위에서 내려오는 마린 스노를 먹고 산다. 마린 스노의 양이 많지 않아 심해 생물의 개체 수는 제한적이다.

1977년 미국의 심해 조사선이 갈라파고스 섬 먼바다의 심해에서 해양탐사를 수행하던 중 그때까지 알고 있던 심해저 생태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해저 바닥에서 검은 연기가 분출하고 그 주위로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높은 밀도로 서식하는 광경을 본 것이다. 해양 생물들은 수심 2500m 심해에서 마린 스노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양을 훨씬 초과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상 번식한 심해 생물체

답은 해저에서 분출하는 열수(熱水)에 있었다. 미국 심해 조사선이 발견한 검은 연기가 바로 문제의 열수였다(검은 연기로 보이는 이유는 열수가 나온 뒤에 식으면서 녹아 있던 물질이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심해의 해수가 해저에서 갈라진 암반 틈을 따라서 약 1km 정도 땅속으로 흘러 내려가면 마그마 덩어리에 가까워져 가열된다. 충분히 가열되면 해수는 열팽창을 해 밀도가 작아지면서 강한 부력을 얻어 다시 해저 바닥으로 분출해 나오게 된다. 이것이 열수인데, 온도는 350℃ 내외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해저에서는 수압이 높아 100℃ 이상이 되어도 끓지 않는다. 수압은 수면에서 10m 내려갈수록 1기압씩(대기 전체 압력) 높아지므로 수심 수천 미터에 이르는 해저의 수압은 수백 기압 이상이 된다.

열수가 해저 암석에 접촉하면 암석에 포함되어 있던 다양한 성분들이 열수에 녹아들어가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진다. 또 마그마 속에 포함되어 있던 메탄, 황산화수소 등도 열수에 녹아든다. 열수 부근에는 세균이 거미집 비슷한 모양으로 많이 번식하고 있다. 특히 열수에서 초호열균(超好熱菌)이라고 불리는 열에 강한 원시 세균이 발견되었다. 이들 세균은 메탄과 황산화수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합성한다. 열수 부근에 살고 있는 조개류 등은 이런 세균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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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남서부 라우 분지에 있는 니우아 수중 화산의 열수 분출구에서 나오는 미네랄이 풍부한 물. 물이 식으면 미네랄이 침전되어 탑과 같은 '굴뚝'이 형성된다. ⓒ Schmidt Ocean Institute

 
몸속에 이들 세균을 살게해 세균이 만든 유기물을 흡수하는 생물도 발견되었다. 햇빛이 없어서 광합성을 할 수 없는 대신에 메탄과 황산화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하여 유기물을 합성하는 세균이 심해 생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이들 세균은 육상이나 얕은 물속에서 광합성으로 유기물을 만드는 식물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 심해 조사선이 목격한 것은 마린 스노에 기대어 적은 양의 일정 개체 수를 유지하며 지속하는 해양 생태계가 아니라 열수로 공급된 농축된 영양분에 기대어 이상 번식을 한 심해 생물체 군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상 번식을 한 열수 생태계는 일정 기간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열수의 분출이 멈추면 먹이의 원천(메탄과 황산화수소 및 풍부한 미네랄)이 없어져 생태계가 소멸해 버린다. 

열수에는 다양한 광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열수가 지하에서 해저로 올라올수록 수온이 낮아지면서 열수에 녹아있던 광물이 적출되어 열수 분출 구멍 주변에 들러붙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열수가 빠져나오는 구멍이 점점 작아져 결국 막혀버리게 된다. 열수가 생성되었다가 사라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년에서 100년 사이로 알려져 있다.

열수 생태계 소멸이 시사하는 점

심해 열수 생태계가 우리 인간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 

첫째, 생태계의 번성을 가져온 원인은 그 생태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열수 덕분에 심해 생물이 번성했듯이 오늘날 인간은 화석연료 덕분에 이상 번성했다. 화석 에너지를 본격적으로 사용(산업혁명)하기 이전 전 세계 인구는 2~3억 명을 넘지 못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80억 명에 가까워졌고 여전히 1년에 약 8천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이제 화석 연료는 기후 변화, 화석 연료 고갈 등 화석 생태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그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가 화석 생태계를 빨리 탈피하지 못한다면 화석 연료는 지금의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재생 에너지로의 조속한 이행여부가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판가름할 시점에 서 있다. 지금 화석 연료를 서둘러 버려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둘째, 열수 주변의 생물은 해저의 화산 활동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화산 활동은 생물과 관계없는 자연 현상이지만 이것이 열수 생태계를 지탱하는 원천이 된다.

인간을 포함한 여러 생물들은 얼핏 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실제로는 무생물 환경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채식과 육식을 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키워주는 무생물 환경에 의존해 살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무생물 환경은 기후환경, 토양 및 화석 연료이다.

셋째, 생물은 한 종이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이 서로 의존하여 생존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열수 주변에는 많은 세균과 더불어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 생물들은 우연히 그곳에 모인 것이 아니라 먹이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생물군집을 생태계라고 부른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은 생태계의 일원일 뿐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인간도 설 자리가 없다. 생태계 내의 모든 생물 개체들이 다른 종의 생존을 돕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생존을 돕는 길이 된다.
덧붙이는 글 김해동 기자는 계명대학교 지구환경학과 교수입니다.
#열수생태계 #기후변화 #화석연료 #재생에너지 #지구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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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졸업 동경대학 대학원 지구물리학과 이학박사 기상청 기상연구관 역임 계명대학교 지구환경학과 교수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대구시민햇빛발전소 이사 행안부 기후재난전문가협의체 민간 대표 기상청 자체평가위원 경상북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기후에너지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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