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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이 신성스럽게 여기는 '이곳'

[제주의 자연과 삶] 원앙폭포, 상효원 기행

등록 2020.09.09 08:36수정 2020.09.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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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남쪽의 돈내코로를 지나다 보니 수많은 차들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제주도민들에게 인기있는 관광지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지도를 찾아보니 주변에 원앙폭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원앙폭포를 낮시간에 찾으면 제대로 폭포를 감상할 수없을 것 같아서 다음날 아침에 차를 몰아 원앙폭포로 향했다. 원앙폭포 아래쪽에 있는 돈내코 유원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발걸음 가볍게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기도 해서 내가 가는 앞길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돈내코를 적시는 영천으로 가는 길에는 잘 정돈된 나무 데크 길이 깊게 이어지고 있었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싱그러웠다. 코로나19로 인해, 이토록 맑은 공기 속에서 자유로이 걸어본 것이 얼마만인가? 
 

원앙폭포. 마치 원앙부부처럼 2개의 물줄기가 사이 좋게 내려오고 있다. ⓒ 노시경

 
나는 꽤 급경사인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5분 정도를 내려갔다. 영천 계곡의 나무 사이로 맑은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폭포가 있는 계곡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 원앙폭포의 모습이 정면으로 나타났다. 폭포의 시원스러운 모습을 마주한 순간, 왜 폭포의 이름의 원앙폭포인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마치 원앙 부부처럼 폭포 2개의 물줄기가 다정하게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돈내코 계곡의 물빛. 원앙폭포 앞 계곡의 물빛이 마치 에메랄드처럼 푸르다. ⓒ 노시경

 
물에 젖은 데크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 폭포 앞 바위 위에 서 보았다. 엷은 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물 속은 워낙 투명해서 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작은 폭포이지만 물줄기가 떨어지는 모습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폭포소리는 마치 귀 속을 조용하게 정화시켜 주는 것 같다. 폭포도 크지 않고 아담한 모습이 마치 천지연 폭포를 축소해 놓은 모습 같기도 하고, 조선시대 산수화의 절경 속에 있는 폭포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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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내코 계곡의 물줄기 ⓒ 노시경

     
폭포 아래 쪽으로도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원한 물줄기들이 있다. 한라산의 중산간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이 물줄기들은 여름에도 너무나 차가워서 피서지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아름다운 원앙폭포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유지했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원앙폭포 근경. 마치 천지연 폭포를 축소해 놓은 득한 모습이 아름답다. ⓒ 노시경

      
푸른 이끼 가득한 바위 사이를 흘러가는 이 청량한 물줄기는 흘러 흘러 쇠소깍까지 흘러갈 것이다. 나는 산수화 속의 경치를 보며 머리 속의 상념들을 지워본다. 한라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너무나 시원했다. 틀에 갇힌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떠나 오랜만에 만끽해보는 행복감이다.

나의 이 평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가족 4명이 시끄럽게 떠들며 폭포 앞, 나의 주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젊은 사진작가 2명을 대동한 수영복 차림의 젊은 아가씨도 나타나 폭포수 앞 에메랄드 빛 연못을 점령해 버렸다. 나는 원앙폭포 앞에서의 나의 시간이 다 되었음을 깨닫고 폭포 앞을 떠났다. 

한라산 산신령의 정기를 받은 상효궤에 소원을 빌다

식사 후 나는 아내, 딸과 함께 주변의 상효원 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의 주차장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주차된 차들이 거의 없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데 우리 가족 외에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상효원 내에서 관광열차를 운전하는 직원도 여행객 한 명 없이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이 드넓은 수목원에서 나의 가족이 독점해서 즐기는 것은 좋지만, 이 수목원의 운영이 내심 걱정되었다. 
 

상효원. 한라산 중산간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숲과 정원의 향연이 펼쳐진다. ⓒ 노시경

 
수목원 내부는 한여름이지만 꽃이 비교적 많고 넓으며 예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숲길을 한적하게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매실나무가 하늘을 가려주는 매실터널과 산책로가 아름다운 비밀의 숲, 산돌위정원을 가족과 함께 산책했다. 초록색 향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상효원 소낭. 350년이나 된 소나무가 여행객을 반긴다. ⓒ 노시경

 
상효원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상효원의 상징과도 같은 '소낭아래'가 나온다. 이곳은 350년이나 된 부부 소나무인 상효송이 있는 곳이다. 소나무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인 '소낭'이라는 말이 너무나 친근하게 다가온다. 소낭 아래에는 매우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고, 나와 나의 가족은 소낭을 배경으로 한 액자 안에 들어가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남겼다.
 

상효궤. 제주인들이 신성스럽게 여기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빈다. ⓒ 노시경

 
정원을 오르다 보니 작은 동굴 입구 같은 곳이 검게 입을 벌리고 있다. 한라산 산신령의 정기를 받은 상효궤라는 곳이다. 상효궤는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속에 신비감이 감돈다. 자연 그대로의 신비로움이 살아 있는 이 곳에서 우리는 우리 가족의 소원을 빌었다.

상효원 안의 가장 높은 곳에는 산장형 카페인 구상나무 카페테리아가 있다. 살짝 더운 날씨에 약간의 오르막길을 한적하게 올랐다. 제주도의 한적한 정취가 느껴지는 수목원 내 카페테리아가 나왔다. 이 곳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손님은 우리 밖에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종업원이 너무나 친절하다. 
 

구상나무 카페테리아. 곰돌이 인형 너머 한라산 중산간이 펼쳐져 보이는 안식처이다. ⓒ 노시경


이 숲 속의 작은 집은 천장이 높고 구상나무로 만들어진 목재 디자인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고, 아내는 이 구상나무 집의 디자인에 연신 감탄을 했다. 통유리창 너머에는 실물 크기의 곰돌이 인형 2마리가 웃으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눈 앞에 내려다보이는 정경들을 만끽했다. 눈 앞에 바다와 섬이 보였다. 정녕 떠나기 싫은 곳에 우리는 앉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주의 마을, 오름, 폭포와 그 안에 깃들인 제주의 이야기들을 여행기로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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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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