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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나한테 반항했으면 좋겠어"

자기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등록 2020.09.14 08:29수정 2020.11.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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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를 타락으로 이끄는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대신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를 존경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가족 간의 크고 작은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하소연이 TV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 뉴스 기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저녁 자가격리 중이던 모녀가 말다툼을 했다. 화가 난 엄마는 집을 나갔고 중학생 딸은 112에 엄마를 신고했다. 다행히 엄마가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계도 조치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11일, 무려 5700개가 넘는 댓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가격리 중 집을 나간 엄마의 심정을 너무나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사춘기 중학생 딸에게는 대부분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엄마를 신고한 의도가 불순하다는 지적에서였다.

아이가 문을 잠근 채 방에 혼자 있는 것이 부모는 못마땅하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아이는 멀뚱멀뚱 천장만 보고 누워만 있다. 혼자 있고 싶다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아이를 붙들고 훈계하려고 하면,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거나 아니면 침묵 수행을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저, 할 말 있어요! 말대꾸가 아니라 의견입니다.
 

"저, 할 말 있어요! 말대꾸가 아니라 의견입니다." 아동 친화 도시 노원 만들기 캠페인으로 2016년부터 초등학교마다 걸려 있던 현수막. ⓒ 이은영

  
7살 때 내 별명은 양철통이었다. 건들면 소리 난다고 해서 아빠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자꾸 건드리니까 소리 나지, 건들지 않으면 소리 나지 않아"라고 말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른한테 말대꾸한다며 혼날 때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되받아치는 순발력과 언어 구사력에 다들 신기해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착한 학생이고,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착한 딸인 거야. 어른이 무슨 말을 하면 무조건 '네' 하고 대답해야 예의 바른 거야. 알았지?"


그 탓에 어린 시절에는 내가 나를 사랑해 주지 못했다. 어른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돼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꾸 내 생각을 말해서 혼나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늘 자책했다. 자책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태도에 괴로워했다.

나도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네! 알겠습니다" 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면 되는데, 계속 다른 의견을 떠올리니 입 밖으로 말하게 되고, 말을 하다 보니 행동으로 이어져 자기 삶을 추구하게 됐다. 그 결과 버르장머리 없는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문제아로 낙인찍히면 좋은 점이 있다. 어차피 이리된 거 내 목소리를 마음껏 내고 내 삶을 추구해도 된다는 점이다.

'코로나 우울'보다 위험한 '착한 아이 증후군'
 

착한 아이 증후군 (Good boy syndrome) 사춘기 아이가 부모한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출하지 못할 경우 이 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높다. ⓒ pixabay


'중2병'도 옛말이다. 요즘 사춘기는 미운 4살에 시동을 걸고 초등학교 4학년이면 중2병을 향해 전력 질주하기 시작한다. 부모가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에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사춘기라서 버릇없이 이따위로 구는 거야?'라는 말로 조롱이나 훈계를 한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만약, 아이가 부모한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출하지 못할 경우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에 걸릴 확률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고도 불리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란,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는 증상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 권력자인 어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외면받을지도 모른다는 유기 공포(fear of abandonment)가 '착한 아이'를 연기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심리적 특징으로는 '착하지 않으면 (순종적이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한다'라는 신념이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착한 어른'을 연기하면서 만성 우울증을 겪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은 병들어 있다. 진짜 착한 사람이 아닌 착한 사람인 '척' 연기하기 때문에 삶이 괴롭다. 연극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사춘기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요한 시기다. 만약 사춘기 시절에 권력자에게 반항 또는 방황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면 뒤늦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사춘기일지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언행이라면 바로잡아주어야 하지만, 부모나 교사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를 힘으로 끌고 가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다른 의견은 말대꾸가 아니라 창의력
 

자기 의견을 말할 권리 당신이 나와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저도 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 pixabay

 
그동안 나는 말대꾸한다며 그렇게 혼나면서도 내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부모님은 그런 나를 버리지 않았고 당당한 내가 좋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친구가 돼주었다. 그러한 경험이 쌓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 있음'을 배웠고 나다움을 잃지 않은 덕분에 착한 사람 증후군에 걸리지 않았다.

대중 심리학에 따르면 착한 사람(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의 주요 행동으로 크게 4가지가 있다. ▲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자기다움을 상실한다. ▲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하여 혼자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괴로워한다. 만약 거절하더라도 곧 후회한다. ▲ 타인과의 갈등을 두려워한다. 자기 의견 없이 무조건 순종하며 타인과 다른 의견을 나누고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 자기 능력 실현을 상실하여 남들과 다른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우리 아이는 착해서 부모 말을 잘 들어요. 그래서 사춘기도 크게 문제없이 지나갔어요"라는 말은 부모 입장에서 자랑거리가 될지 몰라도 아이 인생에서는 독이 된다. 오히려 사춘기 자녀가 방문을 걸어 잠그거나 자기주장을 하면서 고분고분하지 않고 까칠하다면 걱정하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가 말하기를 아이를 칭찬할 때 '모범생'이라고 표현해 버리면 아이는 학교에 대해 불만이 생기거나 반기를 들고 싶어질 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사춘기인 시기에 너무 양순하고 순종적이기만 하다면 그건 절대 반가워할 일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건강한 아이라면 반항도 하고 반론을 펼치기는 게 당연한 거라고 하니, 사춘기 아이의 버르장머리는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들은 안타깝지만 틀렸다. 오히려 부모라면 이를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더 큰 사랑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만 낳는다고 저절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스티븐 스필버그, 빌 게이츠 등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23%에 해당하는 민족이 바로 유대인이다. 자신만의 독창성을 최대한 살려 자아실현의 성공을 거둔 사람 중 유대인이 유독 많은 이유는 바로 그들만의 가정교육법에 있다. 

유대인 부모는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폭력과 억압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닌 아이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해결방법을 함께 찾는다. 그러면서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장하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부모와 교사들의 끈기와 인내심은 필수 덕목이며, 아이들은 그런 어른의 태도까지도 보고 배운다.

특히 20여 년간 세계 부자 1위의 자리를 지켰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에 자기 생각과 주장이 너무 강한 탓에 부모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자 온 가족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함께 극복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훗날 빌 게이츠는 그런 가족의 지지와 사랑 덕분에 오늘날의 자신이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덧붙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무엇을 얻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관건입니다."

전문가들은 사춘기 아이의 독립적인 영역과 성적 호기심, 그리고 외모에 관한 관심 또한 사춘기 특성이니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제2의 탄생기라고도 부르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인격체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생 선배로서 자기답게 성장하는 아이의 발달 과정을 믿고 지지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어른이 된 우리 자신부터 자기다움을 잃지 않도록 믿고 지지해주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삶의 태도를 타인에게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에 성공한 아이의 배경에는 자아실현에 성공한 어른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덧 학부모가 된 친오빠가 조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혼나야 해. 그렇다고 아빠가 너희들이 모범생이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는 내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은영아. 나는 동욱이랑 진욱이를 혼낼 때, 애들이 나한테 반항했으면 좋겠어. 가끔 내 생각대로 혼내고 뒤돌아서서 후회하곤 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오빠는 진짜 멋진 아빠다.
덧붙이는 글 이은영 기자 브런치와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사춘기 #코로나우울 #착한아이증후군 #착한사람콤플렉스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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