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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조장? 어린이들에게 한번도 듣지 못한 질문"

[인터뷰] 낙인 찍힌 책,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작가 엘리자베스 브라미에게 물었다

등록 2020.09.10 12:44수정 2020.09.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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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 노란돼지

 
"이 책은 남녀 모두의 평등을 존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쓴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권리 목록을 담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고정관념과 차별을 깨뜨리는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을 응원합니다. 각 가정에서 이 목록을 가지고 활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어느 날, 에이전시를 통해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를 소개 받았다. 국제 앰네스티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책이기도 했고, 인권의 문제를 가족 안에서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풀어낸 콘셉트라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실린 국제 앰네스티의 추천사 또한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지 2년이 된 2020년 8월 어느 날. 국민의힘(전 미래통합당) 소속 김병욱 의원의 문제제기로, 국제 앰네스티의 추천도서는 하루아침에 동성애를 조장하는 책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김 의원은 "<엄마인권선언>, <아빠인권선언>이란 책을 보면 각각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라며 여성 간에, 남성 간에 가족을 구성하는 예를 보여주고, 동성애 자체에 대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 표현하는 내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책을 전부 읽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오해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리즈는 딸에게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하고 까불 권리가 있고, 아들에게는 눈물이 날 때 울 권리와 분홍색 옷을 입을 권리가 있고, 엄마에게는 완벽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아빠에게는 힘이 세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음을 말해 주는, 누가 봐도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를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의 일부분. ⓒ 노란돼지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의 일부분 ⓒ 노란돼지


오해를 받게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이 책의 가치가 너무 크다. 그래서 이 책을 쓰고 그린 작가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말이다. 이메일로 보낸 질문에 글을 쓴 엘리자베스 브라미가 아주 정성스러운 답을 보내 왔다. 번역은 이 책을 번역한 박정연 번역가가 맡아 주었다.

"성차별주의의 폭력은 요람, 아니 출생 이전부터 시작"
 

글 작가 엘리자베스 브라미(Elisabeth Brami). ⓒ Franciosa


- 작가님, 이 책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나요?

"어린이와 어른 모두는 차이점과 닮은점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지요. 우리는 서로 존중해야 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안에 뿌리 깊은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등과 관련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 작가님은 오래도록 청소년 상담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 경력이 책을 만들 때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오랜 상담 경험을 통해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성차별주의로 힘들어 하고 동성애 혐오와 관련해 고통스러운 사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런 사례들은 한 개인의 정체성이나 죄책감에 타격을 주기도 합니다. 제가 수업을 받기도 했던 정신 분석학자 프랑스와즈 돌토도 말했지만, '어린이는 우리가 귀 기울이고 존중해주어야 하는 인격체'입니다.

그런데 성차별주의의 폭력은 요람, 아니 출생 이전부터 시작됩니다. 임신했을 때, 미래의 엄마 아빠의 욕망 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간이 흘러 인종 차별이 또 다른 형태인 성차별로 확대되는 현상도 종종 보게 됩니다. 저는 만 5세~10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이에는 아직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거든요."

- 최근 한국에서 한 국회의원이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의 일부분(특히 15조)를 두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책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작가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15조에 관련해 좀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두 인간 사이의 선호성, 어린 시절에 가장 풍성하게 드러나는 강렬한 우정, 더도 덜도 아닌 그 자체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지독한 편견을 가진 어른의 시각만이 이 글과 그림을 '동성애적인' 방식으로 보고 해석할 겁니다.

어린이 독자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방문한 백여 개의 학급에서 동성애나 성적인 부분에 대해 어린이들의 질문은 받아보질 못했습니다. 왜 이런 언어적인 오해가 발생할까요? 왜 일부 어른들에게 그림과 텍스트에 대한 자의적이고 잘못된 해석이 발생하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사랑한다'는 단어와 마음은 어린이들에게 있어 보편적인 감정을 가리킵니다. 그 나이에, 어린이들은 정확하게 사랑과 우정을 구별하지 않지요. 성에 관해서도 여전히 의식하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의 15조는 '동성애를 조장하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의 일부분, 15조 ⓒ 노란돼지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의 일부분, 15조 ⓒ 노란돼지


- 여자와 여자가 함께 있거나 남자와 남자가 함께 있는 일러스트를 두고도 그런 지적을 합니다.

"성별이 같은 두 아이가 가까이 있는 그림이나 그런 환기가 어른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우리 작가들과 출판사들은 책에서,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등 모든 매체에서 어린이들 간의 다정다감함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금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태복음 22장 37-39절의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를 에로틱하거나 성적으로 읽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15조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 관계의 톨레랑스(tolérance)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조항에 갖은 편견을 들이대는 것은 어른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악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 동성애를 누군가 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책도 영화도 동성애를 조장하거나 부추기지 않습니다. 동성애나 이성애를 놀이와 장난감에 의한 구분,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수많은 요인, 정서적이거나 물질적인 수많은 요인들이 성적 방향성 문제만이 아닌, 한 아이의 인성 계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성적 방향성 문제는 생각하는 것처럼 의지적이거나 고의적인 선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교육과 성교육이 유치원 때부터 필요한 이유 

- 프랑스 학교 현장에서는 인권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도 궁금합니다.

"개별적으로 주도하는 곳들을 제외하고는 시민 교육과 성교육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합니다. 시민 교육과 성교육을 함께 연결시키는 것은 이 두 가지를 잊어버림으로써, 타자에 대한 무지가 강조되고 상호적인 폭력이 야기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주제들을 유치원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일부 교육자들은 철학을 가르치려 애쓰고, 때로 어린이에게 발언권을 주고, 훈련시키기 위해 어린이책을 가이드처럼 활용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럴 때, <우리 가족 인권 선언>과 같은 책이나, 소설, 그림책 등이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모든' 주제를 다룰 수 있게 하고, 남성과 여성의 권리, 아이와 어른의 권리, 젊은이와 노인, 지역사회와 외국인의 권리를 끊임없이 언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런 매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책을 낼 때 국제 앰네스티의 지원을 받았잖아요. 어떤 이유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프랑스 국제 앰네스티는 차별과 맞서 싸우는데 있어 교육 부문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명목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인정받고 있는 앰네스티는 저희 책이 나온 출판사 'Talents Hauts'에서 출간하는 상당수의 책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가족 인권 선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수천 명의 앰네스티 회원들이 출간되기가 무섭게 책을 삽니다.

이 책을 낸 출판사와 제가 함께 만든 책들은 매일같이 더더욱 지표와 가치를 잃고 있는 이 세상의 어린이들을 독자로 합니다. 아동서는 이런 가치를 전달하고, 그런 점에서 교육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모와 교육자를 돕는 수단입니다. 보편적인 동기의 옹호죠. 어린이의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다 큰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이죠."

- 현재 한국에서도 이 책의 메시지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나요?

"한국에 이런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친애하는 한국의 남녀, 어른 아이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나라에서 제 책들이 번역 출간되었고, 그렇게 나온 한국어 버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강연할 때면 갖고 가는데, 여러분 언어의 아름다움과 이국적 느낌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프랑스의 어른, 어린이들에게 아동문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서입니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여러분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언젠가 아름답고 강렬한 국제적인 아동서 읽기를 함께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꿈은 실현되고 경험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 인권 선언 1~4 세트 - 전4권

엘리자베스 브라미 (지은이), 에스텔 비용 스파뇰 (그림), 박정연 (옮긴이),
노란돼지, 2018


#우리 가족 인권 선언 #나다움어린이책 #노란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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