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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아플 수 있어야 합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관통기'를 읽고

등록 2020.09.11 08:50수정 2020.09.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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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아플 수 있어야 한다. ⓒ pixabay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관통기>는 1990년대 중반 페미니스트가 되고, 사회단체 활동가, 비혼주의자, 채식주의자, 1인 가구로 살아온 저자 조한진희씨가 쓴 책이다. 그는 탈식민페미니스트로서 팔레스타인 운동을 만나 현장 활동을 하고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투병과 완치 사이를 오가며 '오늘'을 보내고 있다.

이 책은 '아픈 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아픈 몸'이 어떻게 '아픈' 몸이 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개인만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 시스템 안에서 해석해보려는 책이다.
 
'건강한 몸'이란 '정상성'의 범주는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외곽의 몸'들을 수치스럽게 만들었고, 숨기도록 만들었고, 부끄러워하도록 묵인했다. 나도 그랬다. 아픈 몸을 자책하고 미안해하고 한심스러워했다. 다정한 곁들에게 내 아픈 몸은 걱정과 위로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곳에서, 모든 순간에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프다는 게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숨겨야 할 것도 아닐 텐데 왜 자꾸만 아픈 몸을 숨겨야 했을까. 왜 내 몸은 구겨진 채 아파야 했을까. 무리하고 나면 보란 듯이 꼬박 아팠고, 나는 여전히 그런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두통이 너무 잦고 심해 병원에서 머리 사진을 찍었지만,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다만 여러 요인으로 아플 수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유전으로 인한 질환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현재 처한 환경 문제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아픔을 유발하는 요인들은 차고 넘친다. 과거보다 더 민감하게 몸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지만, 현대 사회는 스스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들이 많다. 아픈 사람에게 '너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질병은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여겨진다. 또, 잔소리나 동정의 방식으로 이야기 되곤 한다.
 
나는 시민단체 활동가다. 사회 '운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한 적이 없다. 내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선택이란 것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운동'의 판에서도 건강한 몸, 올바른 몸, 부지런한 몸에 대한 하나의 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주 몸이 아픈 사람이었고, 아픔이 진행되는 중에도 어떤 현장에 가거나 일을 떠맡았다. 쉼이 아니라. 그건 누가 강요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스스로' 한 일이라고 말하기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지점이 있다. 운동 사회 역시 여전히 건강한 비장애 남성의 몸을 하나의 올바른 '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성찰할 지점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또, '운동'은 항상 넉넉하고 여유로운 곳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때문에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휴식을 갖기 어렵다. 이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 제기와 고민, 성찰이 있었고, 지금도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우리가 더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선택한 운동 판에서 건강권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질병은 징벌이 아니다 
 
운동 판을 넘어서, 사회 전체로 시선을 확장한다면 어떨까. 한국은 고강도 장시간 노동 국가이다.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일하고, 질병이라고 생각조차 못 하는 만성의 아픔들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상 아플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높은 건강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당연하고 마땅하게 취급된다.

왜? 아픈 몸은 '정상적인 몸'이 아니란 구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픈 몸은 아픈 몸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비정상적' 몸으로 여겨지기에 벗어나고, 고쳐야 한다고들 말한다. 한국 사회는 비장애 중심적이다. 이것만 봐도 질병이나 장애가 어떻게 꺼려지는 존재, 외면하는 존재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사회에서 아픈 몸은 존중받지 못하고, 해롭고 귀찮은 존재가 되기 쉽다. 돌봄마저도 자본화되어 있다. 돈이 있어서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아픈 몸은 고독하고, 절망스럽다.
 
이 책은 아픈 몸 그 자체만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아픈 몸을 더욱 아프게 하고, 비정상적인 틀로 만드는지 말하고 있다. 또, 돌봄이라는 책임이 얼마나 개인들에게 부과되고 있는지 꼬집는다. 뿐만 아니라 의료 영역에서도 작용하는 '정상 가족' 프레임이 어떤 차별적 요소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비판한다.

이를 통해 인간 관계나 시스템에 대해, 또 다른 고민과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한다. 또한 여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페미니스트'인 저자 소수자 관점과 감수성으로 아픈 몸에 대해서도, 아픈 몸이라 인식되지 않아 왔던 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성폭력 범죄가 피해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상흔을 남기는지, 그 과정에서 사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짚기도 한다. 

'질병은 잘못 살아온 결과'라는 낙인은 누구에게도 긍정적이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병은 그 사람이 '잘못 살아서' 겪에 되는 '벌'이 아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엄마는 만성질환을 안고 살아간다.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 결과를 얻은 걸까? 아니다. 부모가 일찍 사망하고,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은 남성과 결혼을 하고, 경제를 부양하고, 육아와 돌봄 노동을 한 그녀는 얼마나 더 열심히 살고, 잘 살았어야 아프지 않고, 병을 얻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픈 몸은 오염의 산물이 아니다. 아픈 몸은 혐오의 대상도, 비정상 범주에 구겨져야 할 것도 아니다. '왜'라는 질문을 아픈 몸에게 향해져선 안된다. 아픈 몸을 자꾸만 만들어내는 사회에게로 돌려야 한다. "건강이 최고다!"라고 외치는 사회에서, 아픈 몸에 대한 질문들이 외면되지 않길 바란다. 아픈 몸을 긍정하는 것이 가능해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함께 살기' 위한 다채로운 상상력이 키워지면 좋겠다. 우리 각자의 몸들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온전히 수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

조한진희(반다) (지은이),
동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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