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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옷을 차려입고, 컴퓨터 방으로 출근합니다

[매일 도전합니다] 백수 라이터의 하루

등록 2020.09.10 14:39수정 2020.09.1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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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무감과 신념에 의해 행동하고 있는 한 어떠한 욕을 먹더라도 아무렇지 않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다. -윈스터 처칠
 

국어사전에 따르면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백수(白手)라고 한다. 동음이의어인 백수(白水)는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세상은 나 같은 부류를 백수(白手)라고 부르지만, 지금부터 나 자신은 백수(白水) 라이터(writer)라고 소개하겠다.

지난 2009년 여름. 그때까지 나는 억대 매출을 올리는 온·오프라인 패션 쇼핑몰 모델 겸 대표였다. 그러나 다니던 피부과 병원에서 의료사고를 겪는 바람에 한동안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렸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할 때 내 안에서 이런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이것이 저것보다 나쁘다고 하지 마라.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좋은 방향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삶을 통해 너에게 가르쳐주는 모든 것을 글로 써라. 너 자신은 물론 네 글을 읽는 수많은 영혼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도 글을 쓴 사람을 말한다
 

작가란 무엇인가? 글로 남길만한 행동을 한 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이다. ⓒ pixabay

내가 글을 쓴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모든 예체능과 출신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미대 출신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즐겨 읽는 책은 잡지책이고, 쓰는 글이라고는 상품 설명이 전부였다. 그랬으니 그동안 글을 쓰고 싶다든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서,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글을 쓰는 일 또한 그렇게 시작했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면 "엄마 아빠, 이게 뭐야?"라고 쉴 새 없이 질문을 반복하듯이, 나 또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고 있는 SNS에 죄다 가입해서 걸음마 시절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 정도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에 메시지로 글을 써서 보냈다. 동네 신부님, 수녀님도 예외 대상이 아니었다. 오 마이 갓. 

누군가 내 글을 돈 주고 사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지금과는 달리 그땐 너무도 순수한 마음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오직 그 간절한 마음 하나로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수려하지 않은 글솜씨 탓인지, 때론 그런 나에게 '미쳤다'며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단당하는 짜릿한 경험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점차 신경 쓰지 않게 됐다. 부딪치고 깨질수록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멘털, 즉 내공이 생긴 덕분이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필수 덕목이라는 '악플에 무너지지 않는 신념'을 획득한 것이다. 흑역사를 팔아서.

그땐 어쩌면 정말로 미쳤었는지도 모른다. 꿈속에서도 글을 썼으니 말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미치면 세상은 그가 더 근사하게 미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2016년에 드디어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만나게 된다. 그 덕에 작가라는 호칭이 익숙해졌고, 내 글을 통해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됐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독자도 생겼다. 그런 응원 속에서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써왔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 걸어온 지 10년이 흐른 지난 2019년 11월. 운명의 장난처럼 잘 나가던 회사가 무리한 매장 확장 때문에 부도 위기에 놓였고, 그렇게 나는 불혹을 코앞에 두고 또다시 백수 라이터가 됐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쉬는 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땐 -클렌징 폼 cf처럼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게- 정신과 마음을 자기 모습이 비칠 때까지 뽀득뽀득 닦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2020년엔 코로나19까지 맞물려 구직 활동이 더욱더 어렵게 됐다. 덕분에 온종일 집콕 생활을 해도 손가락질을 받기는커녕, 바람직한 국민으로 여겨지는 것 또한 행운이다.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침 식사와 집안일을 마무리하면 그때부터 출근 복장을 하고 컴퓨터 방으로 출근해서 글을 읽고 글을 쓴다. 원래부터 프로 집순러였던 나는 '천국이 있다면 바로 지금인가?' 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 생각과 동시에 군살이 여기저기 붙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내 몸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늘어져 눕고만 싶어졌다.

그때 또 한 번 깨달았다. 매일 자기와의 싸움에서 번번이 지는 나를 바라보며,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나는 얼마나 강한지를 말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경보음이 온몸을 향해 어퍼컷을 날릴 때마다 미생을 쓴 윤태호 작가의 글을 꺼내 읽었다.
 
미생, 윤태호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기초 체력 다지기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 pixabay


직장인 시절이었던 2019년, 건강 메이트를 확인해 보니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6233걸음을 걸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5분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때는 틈만 나면 산책은 물론 퇴근 후 발레까지 했다.

문득,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라고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라톤 인생이 생각났다. 소중한 백수 라이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기초 체력부터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올해 3월 중순부터 마스크를 쓰고 집 앞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인적이 드물어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론 조용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사색에 잠기기에도 그만이다. 집 주변으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둘러싸여 있어서 도심 속에서도 산림욕이 가능한 동네라는 사실도 새삼 감사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하루 평균 7km씩, 1만 보 걷기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오후에 햇볕을 쬐며 5000보 정도 걷고, 저녁에는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아 놓고 거울을 보며 경직돼 있던 몸을 비튼다. 그런 일상 덕분에 매일 읽고, 쓰고, 생각하며 걷는 삶은 오늘까지도 꾸준히 이어져 자기 검증을 하고 있다.

매일 작은 성취를 통해, 건강은 물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면 일상의 루틴이 된다는 진리까지 체화하고 있다. 몸을 일으켜 읽고, 쓰고, 생각하며 걷기 과정은 물론 자신과 싸움이다. 이로 인해 몹시 괴롭지만, 일단 시작하면 나는 둘도 없는 '내 편'이 된다.

요즘에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한다. 내 글이 기사가 되고, 언론사 메인 탑까지 오르는 놀라운 경험도 하는 중이다. 이제는 백수(白手) 대신 기자라는 호칭까지 이름 석 자 뒤에 공식적으로 따라붙고, 생존에 필요한 돈까지 벌고 있다. 문득, '나는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삶으로 글쓰기 훈련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만큼의 실력은 아닐지라도, 꿈을 향해 매일 걷는 삶의 태도만큼은 나도 이미 위대한 작가다. 그런 생각이 단전에서부터 차오르면 발끝을 바라보던 내 두 눈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빛나는 달과 별을 바라보게 된다.

'백수(白水) 라이터인 내가, 마음의 소리를 따라 어디까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에 또 어떤 기적이 펼쳐질까?'

인간의 미래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꾸준히 하다 보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게 된다고 믿는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불혹'이 된 나의 2020년. 매일 읽고, 쓰고 생각하며 걷는 불혹(不惑)의 백수(白水) 라이터 인생 제2막 도전기는,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은영 기자 브런치와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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