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가 되려면 올라가야 하는 오름이 있다고?

능선에 시원한 초원의 길을 지니고 있는 봉개 민오름

등록 2020.09.14 10:22수정 2020.09.1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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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금요일, 예외 없이 금요일만 되면 오름 올라가는 금오름나그네가 봉개에 있는 민오름에 올라갔다. 오후 3시 가시리 슈퍼 앞에서 8명 중 5명이 만났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손자를 봐주러 간 할머니와 육지에 문상 간 부부가 빠졌다. 차 한 대로 봉개로 출발했다.    
 

민오름 능선이 길고 전망이 좋은 민오름 ⓒ 신병철

정석비행장이 있어 길 이름이 정석로가 된 멋진 길을 달린다. 가을 냄새가 제법 풍긴다. 비자림로를 만나 왼쪽으로 돈다. 교래리 사거리를 지나 한참을 가다 명도암 쪽으로 돈다. 절물휴양림 쪽으로 조금 가는데, 길가에 표지판이 있다. 어라! 민오름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아닌데? 민오름은 좀 더 가야 하는데? 의문이 들지만,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나칠 수 없다. 출발한다. 사려니숲길이면서 민오름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많다. 야자매트를 깔아 놓아서 걷기에 너무 좋다. 저만치 민오름이 보인다. 
 

민오름 올라가는 길 사려니숲길 끝나고 주차장을 지니서 나타나는 오르막길 ⓒ 신병철

사려니숲길이 끝나고 주차장이 나타났다. 사려니숲길 주차장이다. 사려니숲길은 제주도에서 인기있는 숲길이다. 얼마 전까지 사려니숲길 시작하는 도로 주변에 차를 많이 주차했다. 항상 그 길이 혼잡했다. 그러자 사려니숲길 주차장을 마련하고 도로 주차를 금지했다. 참으로 잘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주차장이 어디 갔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알았다. 민오름이 목표인 우리들은 덤으로 사려니숲길 일부를 걸었다.

곧 민오름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급경사라 널판지로 계단과 줄을 이용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줄을 잡아 당기면서 올라가면 부담이 줄어든다. 고마운 일이다. 해발 651m, 비고가 136m나 되기에 힘이 제법 든다. 초가을이라기보다 늦여름 오후에 60~70대 여럿이 힘을 꽤나 쓰면서 올라간다.   다 올라왔다. 멋있는 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앉아서 간식을 꺼내 먹으면서 쉰다. 올라올 때 힘들었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너무 금세 잊어버린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두 나무가 만들어 주는 배경이 멋지다. 멀리 절물오름이 보이고 그 너머에도 수많은 오름들이 보인다. 오름 탐방에 속도가 붙은 나그네들이 오름 맞추기 경쟁을 했다. 오름을 올라가면 주로 오름 이야기만 한다. 그것도 신기하다.

능선이 제법 길다. 사방이 뻥 뚫려 있고 나무가 별로 없어 초원을 걷는 것 같다. 원래 민둥산이어서 민오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진짜 정상인 곳이 나타났다. 긴 의자가 놓여 있다. 안내판도 있다. 안내판글을 뚫어지게 바라 본다. 좀 고쳤으면 좋겠다. 

"북동쪽으로 터진 말굽형 화구를 가지고 있다. 말굽형 화구 침식부는 잘 보존된 소위 혀 내민 모양(Tongue type)을 하고 있다. 말굽형 화구 상단부, 즉 주봉의 안쪽 사면에는 깊이가 약 70m쯤 되는 깔데기형 화구의 OO 보여주고 있다. (OO은 사진을 잘 못찍어 보이지 않은 부분) 말굽형 화구 안에는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오름 전사면은 울창한 자연림을 이루고 있다.


오름에 나무가 없다는데서 '민오름'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현재는 자연림이 빽빽이 차 있다. 달리 '무녜오름'이라고 부른 것은 세모진 산머리가 '송낙'같다는데 연유한다고 하며, '민악(敏岳)'은 '민오름'의 한자(사진에서 보이지 않은 부분). '송낙'은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의 모자로, 제주 무당들이 쓰는 고깔을 말한다."


이렇게 말이다. 

"민오름은 북동쪽으로 터진 말굽형 화구를 가지고 있다. 화구의 침식부는 혀 내민 모양을 하고 있다. 화구는 깔데기 모양인데, 그 깊이가 가장 높은 곳에서 70m쯤 된다. 오름 전 지역이 자연림으로 나무가 울창하다. 화구 안에도 수풀이 우거져 있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어서 '민오름'이라고 불렀다는 유래도 있으나, 현재는 자연림이 빽빽하다.

'민악(敏岳)'은 민오름의 한자식 표기이다. 달리 '무녜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오름 꼭대기의 세모진 모양이 '송낙'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송낙'은 소나무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의 고깔인데, 제주 무당(무녀)들이 많이 썼다고 한다. 무녜의 고깔과 같은 오름이란 뜻이다."   

 

민오름 내려가는 길 반대로 내려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 억새로 뒤덮힌 길 ⓒ 신병철

정상에서 안내판을 통해 민오름의 모든 것을 연구하고 토론한 뒤, 우리는 반대편으로 내려간다. 길이 험악하다. 사람들이 올라 왔다가 대부분 올라온 길로 되돌아가나 보다. 우리는 그럴 수는 없다. 길이 희미하긴 하나, 줄 난간까지 있다. 억새가 길을 다 덮었다. 반바지 입고는 못내려갈 것 같다. 저 앞에 큰지거리오름이 버티고 있다.

곧 억새 길은 끝나고 조릿대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잡목숲길이다. 산능선길과 산비탈길과 산자락길 모습이 각각 특징이 있다. 재미있다. 끼리끼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는다. 다 내려 왔다. 큰 길이 좌우로 펼쳐진다. 어디로 가야 주차한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이럴 땐 절대 감각을 따르면 안된다. 지도앱을 가동시켜 방향을 잡고 가야 한다. 오름 올라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낭패를 당해 본 사람들이 터득한 노하우다.
 

방울꽃 ⓒ 신병철

사려니숲길 주차장에서 또 다시 사려니숲길을 걷는다. 길 가에 파르스름한 꽃이 피었다. 방울꽃이다. 홀로 또는 둘이서 찔끔 찔끔식 피어있다. 아무도 몰라준다. 그렇거나 말았거나 그냥 피어 있다. 자세히 보면 이쁘다. 몰려 피지 않아서 주목을 받지 못해도 자신의 할 일을 다 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서운해 하지) 않으면,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人不知己 不慍, 不亦君子乎)는 공자의 말을 실천하고 있는 꽃 같다. 그래서 우리들은 방울꽃의 뜻을 이어받아 저녁으로 오리백숙을 먹었다. 문상 갔던 나그네도 합류했다. 방울꽃과 오리백숙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비밀이다.

능선에 초원의 길을 가지고 있는 민오름에 올라 우리는 군자가 되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의 할 일인 오름 올라가기를 했으니, 군자가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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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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