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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경제를 알려면 갈라타 다리로 가라?

[터키에 가다7] 원경도 근경도 아름다운 나라

등록 2020.09.11 13:52수정 2020.09.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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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겨울 동안 이스탄불을 베이스캠프 삼아 터키를 여행했던 이야기입니다.[기자말]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 차노휘

 
여행을 하다 보면 풍경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풍경이 되는 경우가 있다. 터키에서는 더욱 그랬다.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했다.

이스탄불 신시가지에 숙소가 있는 나는 아침마다 첫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로 향했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갈라타 다리를 지나가야 했다. 다리 아래에는 통근용 유람선이 지나다니고 다리 인근에는 시장, 모스크, 선착장 등이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던 날, 나는 '카라쾨이(karaköy)' 부두가 있는 정거장에서 충동적으로 내렸다. 파란색과 흰색 바둑판무늬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이스탄불 겨울비는 밤부터 비가 내리더라도 해가 뜨면 그치곤 한다. 빗줄기가 굵지도 않고 종일 내리지도 않지만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뿌린다. 굳이 이곳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다.
 

먹구름과 동트기 시작하는 수평선이 있는 골든혼. ⓒ 차노휘

 
나를 갈라타 다리에서 멈추게 한 것은 밤새 비를 내리게 했던 구름이 압축형 떡판 보이차처럼 수면 위로 낮게 드리워져 언제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무게감을 연출해서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구시가지 언덕 위에는 쉴레이마니예 모스크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신시가지 카라쾨이 부두 위에서는 분홍빛 갈라타 타워가 등대처럼 서 있었다. 골든혼과 보스포루스 해협이 만나는 수평선에서는 햇무리가 엷게 번지고 있었다.

나는 곧 나를 집어삼킬 듯한 먹구름과 숨바꼭질하듯 다리 위를 서둘러 걸었다. 양쪽 다리 난간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었다.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의 숫자로 터키 경제를 알 수 있다고 말이다.

터키의 경제를 알 수 있는 낚시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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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타 다리 인근 애미뇌뉘 선착장 풍경 ⓒ 차노휘

   
터키 경제는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관광 수입이 압도적이다. 보스포루스, 흑해, 마르마라해, 지중해, 에게해를 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서 8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리스·로마시대 유적지에 이슬람교 건축물이 들어서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다. 정치적으로도 개방 정책을 펼쳐 접근이 쉽다.

두 번째 경제 수입은 농업이다. 세계 농업 자급자족 7개국 안에 들어간다. 터키 중부 지역 악사라이 평원을 달리다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을 볼 수 있다. 밀뿐만 아니라 감자, 옥수수와 같은 구황 작물이 잘 자란다. 4모작도 가능하다. 빵 인심도 좋아 식당에서 공짜로 나온 빵을 먹고 싶을 만큼 먹어도 된다.

하지만 물은 돈 주고 사 마셔야 한다. 서쪽 에게해에는 과일 농사가 잘 된다. 올리브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품질이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지 않아도 제철 과일만으로도 충분하다. 북쪽 흑해 지역에는 견과류가 잘 자란다. 비가 적어 꿀 품질도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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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코니아 악사라이 평원 ⓒ 차노휘

 
세 번째는 철강 산업이다. 크롬 철광 주요 생산국이다. 마르마라 해를 따라 철강과 자동차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민 목사 석방을 압박하면서 철강 관세를 2배로 올린 적이 있다. 그때 리라 42%가 급 폭락한 것도 철강 산업이 터키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무역 전쟁으로 리라가 폭락해도 지금껏 견뎌내고 있는 것은(카타르에서 160조 긴급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농업과 관광 산업이 건재해서이다. 소위 먹거리가 풍부해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 환율이 낮아지면 관광객이 더 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아 물가상승은 피할 수가 없다. 환율이 낮고 불안정해서 환전이 비교적 쉽다. 석유 생산국이 아니다.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상당한 돈을 지출한다.
 

갈라타 다리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쉴레이마니예 모스크가 있는 풍경. ⓒ 차노휘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를 잠재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로 보는 것은 지리적 여건이 좋은 광활한 땅과 역사·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유적지가 많기 때문이다. 싼 인력도 비교적 풍부하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갈라타 다리에서 바라본 신시가지 갈라타 타워(분홍빛 조명)가 있는 풍경. ⓒ 차노휘

   
비교적 싼 인력이 많아서일까.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실업자가 많다고 했는데,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에도 많은 낚시꾼들이 다리 난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표정은 밝았다. 내가 다가가자 미소를 보냈다. 다리 중앙에 다다랐을 때는 입구에서 불을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던 몇몇 젊은이들이 내게 커피를 권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향했다.

갈라타 다리는 2중 구조로 되어있다. 보행로와 차량 통행로가 있는 2층과 달리 1층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다양한 생선 요리와 커피 및 나르길라(물담배)를 맛볼 수 있고 밤에는 가게 홀이 댄스 스테이지로 바뀐다. 맥주 판매는 기본이다. 무엇보다 바게트 빵 사이에 구운 고등어 한 마리와 양파, 양배추 등을 끼워 넣고 레몬 소스를 뿌린 '바르크 에크맥(고등어 생선 빵)'이 유명하다. 하지만 해뜨기 전부터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는 없다.
 

2중 구조로 되어 있는 총 길이 490m, 폭 42m인 갈라타 다리. ⓒ 차노휘

 
조용한 레스토랑 가를 지나서 베란다처럼 아치형으로 돌출된 전망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낮게 드리운 잿빛 뭉치 구름과 수평선에서 엷게 퍼지는 햇무리가 조용하게 영역 다툼을 하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너무 집중했던 것일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30분이 지났을 때 내게 다가온 남자는 경찰이었다. 그는 통상적인 질문을 내게 던졌지만 그의 얼굴에서 '혹시, 이 여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를 읽었다. 그는 내게 담배가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되레 유람선이 떠 있는 바다를 가리키며 아름답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씩, 웃고는 자리를 떠났다.

내가 다시 다리 위로 올라가려고 할 때는 전망대 바로 뒤, Fish Point 레스토랑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내게 사진을 찍어주겠노라고 했지만 실은 나를 붙들고 수다를 떨고 싶은 듯했다. 아직 내부 수리가 끝나지 않은 가게 안에서 제일 전망 좋은 자리로 안내하더니 종업원에서 터키 커피를 내오게 했다.

일주일 뒤에 가게를 오픈한다고 입을 뗀 뒤 자신의 딸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내가 커피를 다 마시자 이번에는 애플 티를 내오게 했다. 잠깐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그가 느닷없이 자신의 아버지가 오래전에 죽었다고 했다. 한국 전쟁 때문이었다.
 

Fish Point 레스토랑 주인과 함께. ⓒ 차노휘

 
한국 전쟁이 일어난 땅에서 온 여행객에게 그는 그리운 듯 아버지 이야기를 했고 마침 유리 너머 수평선에서 만개한 꽃처럼 빛을 발하는 아침 해에 눈이 부신 나는 눈을 감아야 했다. 수면 위로 물드는 빛이 금빛이라고 해서 이곳 '만(灣)'을 골든혼이라고 했던가. 멀리서 보면 수려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삶의 주름이 보이기 마련인데 터키는 원경도 근경도 아름다웠다.

내가 터키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현지인 세 명 중의 한 사람은 한국 전쟁에 참전한 직계가족이 있거나 친척이 있었다. 내가 가진 약간의 원죄 의식이 그들의 풍경을 더욱 숭고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갈라타 #터키 #이스탄불 #여행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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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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