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운전, 코로나19를 뚫고 병원 다녀온 사연

[병원원정기] 경북에서 서울까지... 천식 진단 받은 아내를 위해 병원에 다녀왔다

등록 2020.09.12 17:31수정 2020.09.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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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에 들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모를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눈도 안 떠지는데 귀는 시끄러워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더듬더듬 휴대폰을 잡아 알람을 끈다. 억지로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현실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작년 봄, 아내는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다며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해 응급실에 내원했었다. 천식 진단을 받았다. 매일 약을 먹고, 흡입치료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찾아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서울에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자 싶어 아내와 서울대병원에 갔다. 그렇게 3개월에 한 번씩 서울대병원으로 바람을 쐴 겸 다닌 지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그사이 코로나19가 나타났고 확산세로 바뀌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어 정기 검진을 받기로 했다. 혼자 보내려니 왠지 마음이 걸려서 같이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 평소에는 사무실에서 휴가를 잘 쓰지 않는다. 일 년에 보통 3일 정도 휴가를 쓰면 많이 쓸 정도로 웬만해서는 사무실을 잘 안 비우는 편이다. 그런데 아내가 서울대 병원에 진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휴가를 계속 쓰게 된다. 혼자 보낼까 하다가 코로나도 그렇고 아내가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동행해 주마고 약속을 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생필품으로 자리 잡게 될 마스크와 손소독제. 코로나도 사람들이 함께 가야 할 질병 중 하나라고 한다. ⓒ 노인환

 
3일 전, 바쁜 일정이 있음에도 사무실에 휴가계를 제출했다. 휴가는 금요일 하루다. 사무실에는 그동안 별다른 말을 해놓지 않아서, 휴가를 쓰는 사유에 뭐라 적을지 고민을 했다. 마땅히 생각나는 사유가 없어 직원보고 아무거나 적어서 결재를 올려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근처에 고객 상담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말하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여전히 빨간 등에 배불뚝이 그림이 계기판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접촉사고도 없고, 그렇다고 배터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에어백 경고등이 신경을 쓰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고객님한테 전화를 건다.

"사장님 접니다."
"네, 언제 오시나요?"
"지금 출발하는데요. 자동차 계기판에 배불뚝이가 나타나더니 안 없어집니다."
"하하하, 배불뚝이요?"
"네, 저 빨간색 그림에 배가 나온 그림요."
"하하하, 에어백 경고등이 들어왔나 보네요."
"네~ 하하하. 운행하는데 아무 문제 없는 거 맞죠?"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고 나면 에어백이 안 터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네, 안전하게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상담하는 시간이면 수리가 가능할까요?"
"조금 더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니 수리하고 가시는 게 좋죠."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정비업체 사장님은 10년 전부터 잘 알고 있는 분이다. 친분도 있고 거래도 많이 해주시고 하시니 나에게는 VIP 고객님이시다. 그런 분이 바빠서 사무실로 나올 시간이 없으시다고 잠깐 와줄 수 있냐고 하는데 못 나간다고 할 수 없어서 찾아가는 길이다. 일이 잘 풀리려 그런 건지 아니면 안 풀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아침에 에어백 경고 등에 불이 들어오더니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잘됐다 싶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상담하고 나서 많이 기다려야 하면 택시 타고 들어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출발한 것이다. 사무실과는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정비소에 도착해서 기사님한테 차를 넘겨주고, 사무실로 들어가 사장님과 상담을 했다.


상담내용은 알고 보면 별로 어렵지도 않은 것인데 금융 쪽을 잘 모르시니 답답해서 부르신 거였다. 본인 토지가 국가에 수용되는데 보상 관련 문제와 인허가가 살짝 얽혀있어 감정평가사 감정금액으로 보상될 경우 본인은 손해가 좀 크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대략 아는 대로 잘 설명해 드리고 자료를 준비해서 재감정 요청을 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드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담이 일찍 끝나버렸다. 정비하는 곳에 가보니 내 자동차 헨들이 분리돼 속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얼마나 더 걸리냐 하니 30분쯤 더 걸린단다. 사장님한테 나중에 찾으러 오겠다고 하니까 굳이 본인이 차를 태워준다며 사무실까지 태워준다.

이상하게 뭔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휴가계도 제출하고, 자동차도 수리 겸 점검까지 받기로 했으니 장거리 운전에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시간을 들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절약되며 일이 마무리된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왠지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어젯밤에 일어나고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데 잠이 오지를 않는 것이다.

더구나 전날에도 잠을 오래 못 자서 피곤했었는데도 잠이 안 와,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새벽 3시쯤에야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러니 새벽 5시에 일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깊이 잠드는 것 같았기에 더 자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병원 가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서울에 오전 9시 30분까지 가려면 6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혹시 출근시간 때문에 정체되는 걸 감안해서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했는데도 정신이 비몽사몽이다.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 시간에 버스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출발한다. 정 힘들면 졸음쉼터에서 잠깐 눈 좀 붙이고 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출발하고 나니 잠이 달아났다. 30분 정도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갔는데 어느 순간 아내가 조용해져서 돌아보니 잠이 들어 있었다.

잠든 아내가 깰까 싶어 휴게소도 안 거치고 달렸다. 도착하니 9시 5분이다. 그제야 아내는 부스스 눈을 뜨며 벌써 도착했냐고 묻는다. 휴게소도 안 들르고 바로 와서 일찍 도착했다고 대답했지만, 한편으로는 차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아내에게 샘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못했다. 사전 검사도 있으니 서두르자며 아내를 데리고 접수를 하고 검사를 받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기관지에 가장 취약한 아내인데, 어디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몰라 아내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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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세가 이어진 지난 8월24일, 대전시 한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시설을 방역하는 모습. ⓒ 연합뉴스

 
접수번호가 호출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자리를 권하며 담당의사가 안부를 묻는다.

"날씨도 덥고, 코로나로 힘드셨을 텐데 잘 지내셨나요?"
"네, 잘 지냈습니다. 선생님은 많이 힘드셨겠어요."


아내의 질문에 담당 의사는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이야기한다.

의사: "검사 결과는 지난번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지난번에는 89가 나왔는데 오늘은 86으로 수치가 낮아졌습니다."
아내: "수치가 낮아졌다면 좋아진 건가요?"
의사: "폐 기능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낮아졌다는 것은 안 좋아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수치는 유의미한 수는 아니고요, 지난번과 차이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내: "네..."


담당 의사는 아내의 등에 청진기를 대고 호흡을 체크한 후 숨소리는 깨끗하다며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곤 처방 약의 종류와 설명을 하나씩 자세히 해준다. 3개월 후 재방문 예약을 하고 혹시 중간에 악화되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는 담당 의사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검사하고 상담하고 처방까지 받았는데도 30분 만에 끝나버렸다. 허무했다. 밤잠 못 자며 3시간을 달렸는데 고작 30분이라니 말이다.

그래도 병원에 오래 머물러 있기가 싫었다. 서둘러 지하로 내려와 마스크를 벗어 비닐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린 뒤 새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일까 싶어서다. 아내의 천식이 생긴 게, 혹시 나 때문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미안해진다.

어쨌든 병원은 안 가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더구나 코로나가 재확산되는 이 시점에 서울대 병원에 간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폐가 안 좋은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이 꼭 다친 환자를 데리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코로나도 사람들이 함께 가야 할 질병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아내는 이미 천식이라는 병과 동행하기로 계약이 돼 있다. 아내에겐 둘과 동시에 동행하는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코로나가 오지 말든지, 아니면 천식과의 계약을 파기한 후에나 오든지 할 것이지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한꺼번에 덤비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코로나 19 #천식 #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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