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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퇴직한 아버지에게 건네는 딸의 위로

'가족의 세계: 가족관계증명의 기술' 전시, 오는 15일까지 수원 예술공간봄에서 개최

등록 2020.09.14 14:35수정 2020.09.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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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일상 가까이 가족이 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주말 내내 가족과 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서 일까? 가족구성원이 많은 대가족부터 반려 동식물과 사는 1인 가구까지, 사람들은 가구유형별로 '같이' 또는 '혼자'라는 조건에서 나름의 가족 문화를 경험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한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누군가 그의 가족구성원과 더 자주 부딪히며 갈등을 느끼는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 간에 갈등을 발생시키는 어느 작은 불씨는 우울증과 무기력함이 커져가는 코로나 블루의 일상 속에서 괜히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괜한 불씨가 번지지 않도록, 전시 '가족의 세계: 가족관계증명의 기술'(아래 '가족의 세계')는 가족과의 시간이 증대한 시민들에게 각자의 가족을 새롭게 인식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코로나블루가 불러온 또 다른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전시는 정치적 성향, 사회적 위치, 문화적 배경 등 삶을 움직이는 조건이 각기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어떻게 가족의 유대관계가 지속되는지 되돌아본다.

전시 '가족의 세계'는 수원 행궁동 벽화골목 입구에 위치한 '예술공간봄'에서 오는 15일까지 열린다. 문지영, 박가인, 정두희 여성작가 3명이 참여하며,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에서 후원한다. 
 

문지영作 '가장 보통의 존재'(2015)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 문지영

 
문지영 작가의 작업 '가장 보통의 존재'는 작가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그린 회화 연작이다. 작업에서 욕조 안 나체의 두 여성-유방 절개 수술을 받은 어머니와 시각장애와 정신장애를 지닌 동생은 그들의 스스럼없는 시선을 관람자에게 던지고 있다. 또 다른 작업은 모녀가 한 이불을 덮고 있는 장면에서 성인 딸이 어머니에게 달라붙자 어머니의 얼굴에 떠오른 솔직한 표정을 담고 있다.
 
작업 '가장 보통의 존재'의 제목은 우리 사회에서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작가 가족을 역설적으로 부르는 표현에서 나아가, 그들을 구분되고 격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닌, 늘 함께 있는 사람들로 선언하고자 한다. 문 작가는 장애인 가족의 일상이 보이는 그대로 투영된 작업의 목적 중 하나가 "사회가 이들에게 보내는 시선들을 그대로 돌려주려는 것"이라 밝혔다.
 

박가인作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2017~2020) 인스타그램(@whythereisnofuninmylife)을 이용한 사진전시 ⓒ 박가인

 
박가인과 그의 아버지는 작가이자 모델로서, 부녀지간을 넘어 세대와 세대, 진보와 보수 등 대립적 관계를 드러내는 예술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박 작가는 작업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2017~)에서 중년 남성-아버지의 벌거벗은 상체를 몰래 찍듯 촬영을 하고, 그 결과물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시했다.

집 안의 단조로운 배경에서 촬영방법을 미묘하게 변주하며 인물의 다양한 표정을 사진 200여 장에 옮겨왔다. 박 작가는 "직장에서 퇴직한 아버지가 느낄 삶의 무료함을 달래는 위로"라고 이 작업의 출발을 밝혔다. 아버지를 마치 관음하는 듯한 시선을 관람자와 공유하는 박 작가의 작업은 가부장적 문화에 도전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위트 있게 풀어간다.
 
박가인의 또 다른 작업 '○○○과 ○○'(2020)은 휴대폰 채팅에서 작가와 아버지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의도된 연출없이 부녀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표면적으로 다른 가치관과 정치적 성향 때문에 일어난 갈등 속에서 서로를 향한 비속어가 난무했지만, 실상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며 유대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부녀의 노력이 엿보인다.
 

정두희作 '부부'(2019) 비단에 채색, 75x86cm ⓒ 정두희

 
정두희 작가는 전통회화 매체 및 기법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고미술품 복원 및 모사본 제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왔다. 미국인 남성과 결혼한 정 작가는 앞서 미국인 시가 식구들을 그린 초상 작업 '플로리다 가계도'부터 최근 부부의 초상까지 전통문화의 요소가 접목된 창작을 이어왔다. 그의 작업은 다른 문화권의 시가 식구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드러내고, 그것을 매개로 서로 다른 문화권 가족들과 소통하는 과정으로 읽혀진다.

같은 맥락에서 정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삼시세끼'는 작가와 그의 남편 각자의 앞에 놓인 음식을 그렸다. 둘의 음식은 언뜻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식기의 배치와 쌀밥의 있고 없음, 같은 재료의 다른 조리법 등으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부부가 서로의 문화적 배경 및 취향을 존중하는 모습은, 스스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공동체'라 말하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예술공간봄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76-1
#가족의세계 #수원시 #수원문화재단 #백필균 #코로나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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