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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잠에 입학전형까지... 내년엔 이거 어떠세요?

[스팟인터뷰] 펀딩 성공한 '학벌 없는 과잠'... 황법량 활동가 "과잠 공동체, 태생부터 차별"

등록 2020.09.15 17:14수정 2020.09.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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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이 최근 펀딩에 성공한 '학벌 없는 과잠'의 시안. ⓒ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요즘 과잠엔 고등학교는 물론 입학 전형까지 들어간다고 한다. 청년 세대의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이런 것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특별한 '과잠'을 만들기 위한 펀딩이 목표 금액을 달성에 성공했다. 지난 8월 13일 시작된 이 펀딩(텀블벅)은 9월 초 목표 금액인 300만 원을 달성했고, 총 354만 8000원을 기록하며 9월 13일 최종 마감됐다. 

과잠은 학과 잠바(점퍼)의 줄임말로, 2000년대 이후 유행해 일종의 대학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학벌주의를 상징·강화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번에 펀딩에 성공한 과잠의 이름은 '학벌 없는 과잠'이다. 일반적인 과잠엔 학교와 학과가 적혀 있다. 최근엔 출신 고등학교와 자신의 입시 전형까지 적는 과잠도 등장해 학벌주의, 성적만능주의가 더 강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학벌 없는 과잠의 경우 대학명이 들어갈 곳에 'EQUALITY(평등)'이란 단어가 새겨져 있다. 바로 밑엔 전구 그림과 함께 'SOCIETY WITHOUT DISCRIMINATION(차별 없는 사회)'이란 문구도 담겨 있다. 이렇게 제작된 과잠은 티셔츠, 배지 등과 함께 이번 펀딩에 참여한 61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 펀딩을 진행한 곳은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이란 시민단체다. 이곳의 황법량 활동가는 1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도, 토론도 없다 보니 이상한 걸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며 "수능 성적에 의해 맺어진 공동체는 태생부터 차별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잠은 그동안 학벌주의 강화의 상징으로 작용했는데 이를 이용해 반성해보자는 화제를 던질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며 "내년 신입생들이 스스로 이 과잠을 만들고 입어준다면 정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황 활동가와 한 인터뷰를 요약한 것이다.
 

황법량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활동가. ⓒ 황법량

 
"코로나 시대, 학교에 안 가도 과잠은 만들어지더라"

- 학벌 없는 과잠이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지난해 (학벌없는사회) 회원 한 분이 '친구들과 시도했다가 최소 제작 수량 등 제약이 있어 만들지 못했다'며 아이디어를 주셨다. 그래서 올해 2월 20일 학벌없는사회 총회에서 논의했고 제작을 결정했다. 처음이니 우선 만드는 것에 의의를 두고 진행했다."

- 이번 펀딩엔 과잠 문화를 향한 비판의 의도가 강하게 담긴 것 같다.
"청년 세대를 향해 '어딘가 소속되기 싫어한다'라는 편견이 있다. 그런데 과잠을 만드는 건 교수도, 부모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대학에 진학한 청년 세대가 스스로 선택한 문화다. 하지만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순 없다.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도, 토론도 없다 보니 이상한 거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요즘엔 과잠에 학교와 학과를 써넣는 것을 넘어 고등학교명까지 넣는다고 한다. 더 악질적인 건 입학 전형까지 들어간 과잠도 나온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역인재 전형이나 사회적 배려 전형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단 의도다. 청년 세대의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이런 것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 과잠 문화가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 이른바 '명문대'에 다니지 않는 학생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과잠으로 묶이는 공동체는 보편적 공동체일 수 없다. 누구나 원한다고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수능 성적이라고 하는 굉장히 지엽적인 것으로 묶여 있다. 수능 성적은 전문성, 스스로 선택한 신념, 정체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때문에 이를 통해 맺어진 공동체는 태생부터 차별적이다.

- 한편에선 과잠이 소속감을 주는 대학 문화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도 있다.
"그만큼 청년 세대가 소속감을 느낄 만한 곳이 없는 것이다. 청년 세대라고 공동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인권이 보장되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그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같은 학과로 묶인 사람들끼리라도 소속감을 느끼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과잠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지금의 청년 세대가 가진 결핍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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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의 일부 학생들이 만든 과잠(학과 점포). 대학 이름(모자이크)과 함께 'SAT ELIT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SAT는 미국의 대학 입학 시험(Scholastic Aptitude Test)을 의미한다. 이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쓴이는 "○○○○(대학명) 수능우수자전형 등록하실 분들께"라고 썼다. ⓒ 인터넷 커뮤니티

 
-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생들도 학교에 거의 나가지 않는 상황인데 과잠을 제작하는 곳이 있었던 모양이다.
"구체적으로 조사한 건 아니지만 올해 3월 펀딩 준비, 최근 제작 준비를 위해 업체들과 접촉했을 때 '성수기라서 소량 제작이 안 된다'는 공지를 여럿 들었다. '여전히 과잠은 만들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대학의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의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온라인 강의를 통해 곳곳에서 드러나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과잠이란 껍데기만 남은 대학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과잠에 'EQUALITY(평등)'과 함께 전구 그림을 새겨 넣었다. 어떤 의미인가.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다. 횃불, 촛불 등을 떠올려봤지만 탐구의 공간으로서 대학을 생각하며 전구 그림을 넣기로 했다."

- 결과적으로 펀딩에 성공했다.
"지난 2월 총회에서 처음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성공할 수 있을지 아리송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점을 각인시키기만 해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호응해주셨다. 과잠은 그동안 학벌주의 강화의 상징으로 작용했는데 이를 이용해 반성해보자는 화제를 던질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 펀딩을 통해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
"학우라는 말이 규정하는 담장을 생각해봤다. 학우란 말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예전에야 대학 안과 대학 밖이 정말 달랐고 이러한 점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이 사회의 상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의사, 검사, 관료 등 논란이 되는 집단을 보면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자신들만의 좁은 정체성으로 사회 공익과 배치되는 주장을 이어간다. 대학도 담장을 허물과 학우가 아닌 시민 대 시민으로 대학 밖과 만나야 한다."

- 이러한 과잠 제작을 계속 이어갈 예정인가.
"이번엔 만드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둬서 이후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이를 확산시킬지 생각해보겠다. 내년 신입생들이 스스로 이 과잠을 만들고 입어준다면 정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고민해보겠다."
#과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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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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