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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고 풍경 좋은 곳 찾으려면,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필름사진 여행기] 여유를 가지고, 조금 덜 유명한 포인트로...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

등록 2020.09.19 11:26수정 2020.09.1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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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3박 4일의 강원도 여행을 잡아두었다. 코로나19가 사그라들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며칠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평소 다니는 여정 자체가 워낙 오지 위주의 동선을 갖고 있어서 항상 코로나19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환갑을 진즉 넘기신 부모님과 함께여서 더욱 신중해졌다. 여행 계획을 다시 살펴보면서 사람이 붐빌 만한 장소가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본 기사를 쓰는 것도 상당히 고민스러웠다. <필름사진 여행기>의 특성 상 평소에도 기사를 위한 사진 작업이 2주 가까이 걸려서 기사의 송고가 늦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사진이 완성되었음에도 일주일가량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이 시국에 쓰는 여행기가 과연 공익성이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번 여행기에 하나의 목적을 더했다. 단란한 가족 여행의 즐거움과 강원도 오지 풍경을 필름사진으로 전달하는 것에 더해, '거리두기 여행법'에 대한 요령을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흥정계곡에서 도시락 먹고 태기산 산행

8월 19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아침은 멀미를 안 할 정도로만 간단히 해결했고 점심을 안전히 먹기 위해 24시간 분식집에서 김밥과 돈까스를 포장해서 챙겼다. 출발지인 전주에서 목적지까지는 5시간여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창 성수기였기 때문에 휴게소는 들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화장실은 졸음쉼터를 이용했다. 사람이 없진 않지만 차를 댈 곳이 없으면 멈출 수가 없기 때문에 휴게소보다는 훨씬 한가했다. 다른 이를 위해서 5분 이내로만 머무르고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출발했다. 


흥정계곡은 피서지로서 꽤나 유명하고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정에서 빼지 않은 것은 계곡이 길고 공간의 여유가 많아서 한가한 공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면서 멈출 만한 곳을 찾았다. 

걷는 내내 '눈호강' 했습니다
 

맑고 힘찬 흥정계곡의 흐름 (RDP3)멈출 자리를 찾는 내내 눈이 호강했다. 강원도의 계곡은 역시 규모가 남다르다. ⓒ 안사을

천혜의 레스토랑 (Portra400)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내려오면서 찾은 자리 ⓒ 안사을


계곡 건너편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깔판과 도시락, 카메라를 들고 물을 건넜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발등이 깨질 정도로 차가운 계곡물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물을 건넌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물 밖에만 있었지만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서늘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이동을 하다보니 그새 사람들이 많이 늘어있었다. 깊은 소가 있는 곳이면 산장이나 펜션에 놀러온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놀 만한 곳에는 사람들의 무리가 밀집되어 있었다. 가족끼리야 상관없겠지만 낯선 이와도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여름철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지 않아야만 거리두기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걷더라도, 최고로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한가한 공간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놀 만한 소 (RDP3)매력적인 장소 중 사람이 없는 곳도 종종 있었다. 이런 곳을 찾아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 안사을


계곡을 나서서 태기산으로 향했다. 태기산은 정상 부근 능선에 있는 풍력발전기가 늘어서 있는 곳이다. 겨울이면 눈꽃으로 유명하고, 차로 전망대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어서 좋은 풍경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애초의 계획은 우리 역시 차로 올라가 위쪽에서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이틀 뒤에 갈 함백산 등산을 위한 준비운동이기도 했다. 그런데 차단기가 닫혀 있었다. 블로그에는 7월에도 차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낭패였다. 얼른 위성지도를 켜서 등산로를 찾아보았다.

차로 가려던 길은 볕이 강할 것 같아 다른 등산로를 택해서 올랐다. 오르는 내내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쓰러진 나무가 치워지지 않아 위를 넘고 옆으로 돌아야 했다. 사람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은 곳이었다. 침엽수의 늙은 잎이 바닥에 쌓여 푹신한 융단길이 되어 있었다.  

정상이나 다름없는 곳 (Ektar100)숲을 벗어나 머리 위가 허공이 되니 정상이 가깝다. ⓒ 안사을


정상은 군부대로 인해 접근할 수 없다. 현재 정상 기점 삼거리(무이리로 가는 길과 갈라짐)까지는 길이 선명하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100미터 남짓의 길은 거의 사라져있다. 정상과 다름없는 위치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순식간에 땀을 훔쳐 갔다.

전망대에서 보는 것보다는 풍경의 각도가 좋지 않았지만 숲길을 걸은 후 탁 트인 하늘을 만난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감싸주던 푹신한 땅과 상쾌한 바람, 그리고 아무도 없었던 길이 그지없이 호젓했다.

산에서 내려오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봉평 읍내로 들어서니 마을 전체가 하나의 '이효석 테마파크' 같았다.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인 그를 기리는 구조물과 공원이 곳곳에 있었다. 

마을은 평일 저녁이어서인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막국수 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단체예약이 가능하냐고 묻자, 주인장은 평소 100명이 넘는 손님들도 자주 받았다고 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없다고.
 

가산공원 (Ektar100)꼭 학생들과 함께 교육적 테마기행을 오기로 결심한 곳. 잠자리를 잡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낯설었다. ⓒ 안사을


함백산, 야생화 축제는 열지리 않았지만

여행의 첫날은 이동, 계곡, 등산 세 가지 활동을 알차게 진행했다. 두 번째 날은 동강의 지류부터 본류까지를 탐방했는데 후속 기사에 다룰 예정이다. 세 번째 날 우리는 함백산으로 향했다. 인제의 곰배령과 더불어 '야생화 천국'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만항재에서는 해마다 야생화 축제를 열기도 한다.

만항재는 우리나라 자동차 도로로 분류된 곳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만항재쉼터에서 태백선수촌 방향으로 좀 더 올라가면 방송국 중계소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그곳에서 출발하면 정상까지 1킬로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에 딱 적당한 코스이다.  

보통 7~8월이 되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야생화가 가장 많이 피어오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기온도 20도 이내일 때가 많기 때문에 서늘한 산공기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올해에는 야생화 축제를 열지 않았다. 당연히 코로나19 때문이다. 하지만 축제의 유무와는 전혀 상관없이 야생화는 산허리 어디든 있었다.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꽃들이 더욱 빛났다. 
     

각시취 (Ektar100)가장 눈이 많이 갔던 꽃. 마치 작은 왕관들 같았다. ⓒ 안사을

엉겅퀴와 나비 (Ektar100) ⓒ 안사을


정상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파란 하늘이었다가 구름 속이었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4년 전 왔을 때와는 길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나무 통로가 재정비되어 길이 편했고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못 가게 하는 한계가 되어 주었다. 아무래도 야생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많다보니 등산로를 벗어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중요한 측면이다.

정상에 도착하자 사방이 뻥 뚫렸다. 지난 겨울, 일출 눈꽃산행을 했던 태백산이 한 눈에 보였고 그 반대편으로도 수많은 능선들이 발 아래 있었다. 미세먼지가 꽤 있었지만 해발 1572미터의 하늘은 매우 선명했다.
 

엄마의 대단한 발걸음 (Ektar100)힘들어도 천천히, 끝까지. ⓒ 안사을

함백산 정상 (Ektar100)너무 쉽게 오게 되어 산에게 조금은 민망했다. ⓒ 안사을


정상에서 1시간이 넘게 머물렀다. 올라오면서 보았던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없었고 짙은 구름떼가 시야를 덮었는데, 바람이 많고 구름이 계속 이동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청명한 하늘이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덕분에 바로 위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기다리는 와중에 만난 사람은 단 네 명이었다. 여름에 사람을 피하면서도 좋은 풍경을 만나려면 산으로 가면 된다. 주말에는 더 붐비겠지만 사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언제든 있다. 조금 덜 유명한 포인트로 가면 되고 그곳에서의 시간과 공기를 즐기면 된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반대 방향으로 잡았다. 조금 길지만 완만한 코스로, 중계소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좀 더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었고 천천히 안전하게 내려갔다.
 

참당귀 (Ektar100) ⓒ 안사을

흰숙은노루오줌 (Ektar100)구린내가 난다는데, 여기저기서 갖가지 곤충들이 작은 꽃들을 헤집고 있었다. ⓒ 안사을

이름모를 식물 (Ektar100)보드라운 솜털 안에 여러 굴곡을 품고있는 동그란 모양을 만났다. ⓒ 안사을


요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를 피해 실외 활동을 택한다. 해외여행도 어려워졌으니 조금이라도 유명한 국내의 여행지가 오히려 붐비는 형국이다. 수도권의 경우 야영장을 예약하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실내와 사람을 피해 정한 장소가 오히려 붐비는 상황이 예상되면 과감히 그 여행을 포기하거나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블로그 검색 등을 통해 사전조사를 하면 얼마든지 사람이 몰릴 상황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풍경을 욕심내지 말고 움직이는 것, 걷는 것, 바람 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보자. 소박한 '여행습관'이 만들어지면 걸음 하나 하나가 행복해진다. 가족주의와 소박한 삶은 코로나19의 해답 중 하나일 것이다. 산악회 등의 대규모 이동을 지양하고 가족과 함께 한적한 곳을 찾아 평소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이 어떨까.
#여행 #필름사진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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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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