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거칠지 않은 거친오름이라니

잔뜩 겁먹고 올라갔는데... 생각보다 쉬웠던 봉개 거친오름

등록 2020.09.17 10:23수정 2020.09.17 10:2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9월 11일, 금요일에 오름에 올라가는 금오름나그네들이 봉개에 있는 거친오름에 올라갔다. 4부부, 8명 중에 4명만 참여했다. 코로나19의 창궐로 할머니 둘이 손지 돌보러 서울 가서 못 왔고,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으로 일부 날아간 지붕을 하필이면 오늘 수리하기로 날짜가 잡혀 한 부부가 못 왔다. 가시리 슈퍼 앞에서 오후 3시에 만났다. 차 한 대로 출발한다.
 

거친오름 안내도 거친오름 올라가는 사람들은 이 안내도를 자세히 살피고 가야한다. ⓒ 신병철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데로 갔더니, 4.3평화공원 뒷 부분이 목표라며 내리란다. 올라가는 길도 없다. 되돌아간다. 노루생태공원 쪽에 거친오름 올라가는 길이 있는 것을 지도에서 본 게 기억났다. 공원으로 들어갔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표를 끊고 철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된단다. 그러면서 마스크를 꼭 끼라고 신신당부한다.


커다란 안내 지도도 있다. 이 지도를 잘 보고, 도상 연구를 하고, 한 바퀴 도는 코스를 정하고 올라갔어야 했다. 되돌아오고 나서야, 한 바퀴 돌 수 있는 코스를 반바퀴도 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고가 154m나 되고 거칠다고 해서 단단히 맘 먹었다.

철문을 지나니 직원들이 노루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다. 희망하면 노루에게 풀을 나눠줄 수도 있단다. 사람만 보면 도망가는 노루들이 여기서는 아니다. 귀여운 노루들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사슴처럼 눈망울이 겁먹은 듯 하다. 그래서 귀엽다.

철문을 또 하나 통과했다. 거친오름 안내판이 나타났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거친오름 등반이다. 150m 쯤 되면 올라가기 좀 힘든 오름이다. 또 다시 단단히 맘 먹는다. 안내판 글이 재미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글인데, 어쩐지 어색하다. 그냥 편한 경어로 표현하는 게 좋을 듯 하다. 고쳐 본다.
 

거친오름 안내판 글 글 형식이 재미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글인데, 이상하다. ⓒ 신병철

"여기는 제주시 봉개동입니다. 거친오름이라는 이름은 산채가 크고 형세가 험해 거칠어 보인데서 유래했습니다. 해발 높이 618.5m, 둘레 3321m이고, 총면적은 49만 3952입니다. 동, 서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졌는데, 동쪽 봉우리가 주봉입니다. 크고 작은 여러 줄기의 산등성이가 사방으로 뻗어 내리고, 산등성이 사이는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어 매우 복잡합니다. 분화구는 북쪽이 터진 말굽형입니다. 비탈면 전체에는 활엽수를 주종으로 해송과 늘푸른나무가 드문드문 섞인 울창한 자연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거친오름 관찰로 안내판 둘레길 중간에 오름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 신병철

올라가기 시작한다. 왼쪽으로 돌기로 한다. 길은 좋다. 급경사에는 계단을 조성해놓았고, 보통 길은 야자매트를 깔아 놓았다. 걷기 너무나 편안하다. 거친 산세? 험한 산세? 이런 건 없다. 노루생태공원 시설들이 아래자락에 있고, 오름은 위에 있다.

제법 걸었다. 오른쪽으로 거친오름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거친오름 관찰로라 이름 붙여 놓았다. 아, 이제부터 거칠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또 단단히 대비한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짧다. 아무리 올라가도 험한 길은 나타나지 않고 편안하기만 하다.
 

거친오름 전망 거친오름 정상의 전망이 좋다. 멀리 한라산도 가물가물 보인다. ⓒ 신병철

금방 정상에 도달했다. 애걔, 이게 뭐야? 겁을 잔뜩 먹고 거친오름에 도전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정복한(?) 거친 오름 정상에 적잖이 실망한다. 그래도 전망은 좋다. 멀리 한라산이 구름에 가려 가물가물 보인다. 가까이 정상에 거창한 통시시설을 가지고 있는 물장오리오름은 잘 보인다. 저곳도 곧 올라가 봐야지 다짐한다.
  

오름 전망 안내도 거친오름 정상 오름 군락 전망 안내도 ⓒ 신병철

거친오름 오름 전망 거친오름 정상에서 본 주변의 오름들 ⓒ 신병철

오름 군락 전망도를 내걸어 놓았다. 앞에 보이는 오름들을 전망도를 보고 확인해 본다. 우리가 올라간 오름이 나타나면 반갑다. 저 멀리 송당의 오름들인 높은오름, 다랑쉬오름도 보인다. 큰지거리오름, 바농오름 등은 아직 못 올라가본 오름들이다. '기다려다, 곧 우리가 갈 거다' 속으로 내질러 본다.

정상에 두 개의 길이 나 있다. 정상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한 길로 들어가서 돌아오면 다른 길로 나오게 되어 있다. 당연히 돈다. 거칠고 거친(?) 오름 정상의 한 바퀴 도는 길은 그야말로 안전하기 짝이 없고 편안하다. 잡목이 우거져 만들어진 나무 터널 길도 있다. 그것도 금방이다. 우리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물봉선 오름 정상에 핀 가을 꽃 ⓒ 신병철

조금 내려가자 양 갈래 길이 나타났다. 어? 우리가 어느 쪽으로 올라왔지? 나이깨나 먹은 우리들은 모두 헷갈린다. 거칠고 거칠기 짝이 없는 이 거친오름에서 길을 잃으면 큰일이다. 핸드폰을 켜서 방향을 잡고 길을 찾아 올라온 길을 겨우 찾아 내려간다.


그런데, 이게 잘못이었다. 오름을 등반한 후에 나타난 양 갈래 길은 오름 아래자락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이었다. 올라왔던 길로 내려갈 게 아니었다. 그 반대로 가야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 내려와서 안내도를 다시 본 다음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길가에 발그무레한 꽃이 피었다. 이쁘다. 물봉선꽃이다. 거친오름이라 잔뜩 겁먹고 올라왔지만, 어느 오름보다 더 안전하고 편안한 오름임을 알아차리고 약간 실망한 우리들에게 발그스레 짓는 미소로 위로하고 있다.

그래서 용서해버리고 말았다. 전혀 거칠지 않아 거친오름이 아니라 '안 거친오름'인 거친오름을 그냥 거친오름이라 부르기로 한다. 

힘들지 않게 거친오름을 정복한(?) 우리들은 오름 등반 후에 함께 먹는 저녁 회식으로 우리동네 돼지고기 구이집으로 가기로 했다. 이유는 지붕 수리한 나그네집에서 가장 가깝고, 통을 돌려 고기를 구워주기 때문에 힘들어 지친 우리가 요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착각과 실수로 얼룩진 거친오름 등반이었지만 그래도 보람찬 하루였다.  
#거친오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